피할 수 없는 정년 연장의 길, 앞서 안착한 日 사례 바탕 삼아야
생산가능인구 감소율 ↑, 연금 재정 악화 등 문제 뒤따라 정년 연장 먼저 시행한 日, 韓에 ‘이정표’ 될 수 있을 듯 고령층 취업-청년 취업의 밸런스 잘 잡아야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성장잠재력 저하 등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정년 연장 또는 폐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고령자 고용을 촉진함으로써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처하겠단 취지인데, 긍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고용의 질적 측면에서 회의적인 입장도 적지 않다.
급격한 고령화 직면한 韓, 정년 연장·폐지 논의 시급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에 시름을 앓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인구의 17.5%에 달하는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그 비중이 점차 증가해 2025년엔 20.6%, 2035년엔 30.1%, 2050년엔 4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72.1%에서 2050년 5.1%까지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성장잠재력 약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과 외국인 노동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고령자의 고용을 촉진하겠단 입장이다. 고령자의 경우 노사가 지금처럼 자율적으로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하도록 유도하되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해 정년 연장 또는 폐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정년 연장 또는 페지 문제는 인구 고령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안이다. 이미 해외 선진국의 경우엔 정년을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방식으로 연금 재정 악화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日 정년 제도 안정적, 日 정책 바탕으로 삼아야”
특히 일본의 경우 ‘고연령자 등의 고용의 안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안정법)을 통해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고 있다. 고령자고용안정법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하로 할 수 없도록 ’60세 정년제’를 규정하는 한편, 계속고용을 희망하는 근로자에 대해선 65세까지 고용이 확보될 수 있도록 사업주에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실상 ’65세 정년제’를 규정했다. 최근엔 70세까지 ‘취업기회확보 노력 의무화’를 규정함으로써 단계적인 정년 연장을 이뤄나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지난달 31일 발간한 ‘일본 정년 제도의 변화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정년 제도를 안정적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고령자 취업률을 살펴보면 60~64세 고령층의 경우 2012년 57.7%에서 2022년 73.0%로 그 비율이 상승했다. 65~69세 고령층의 경우에도 2012년 57.7%에서 2022년 73.0%로 비율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입법처는 “일본의 각 단계별 정년 연장 조치는 외형적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며 연공성 임금체계 및 기업별 노사관계 등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부분이 많은 일본의 정책을 바탕으로 정년 연장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입법처는 또 일본의 ‘단계별’ 정년 연장 정책에 집중했다. 먼저 ‘노력 규정’을 의무화한 후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충분한 사전 준비와 함께 고용 연장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방식을 우리도 취사선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금 체계 및 인사제도 개편 등 정년 연장과 관련해 첨예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 일본의 노력도 높이 평가했다. 입법처는 “각종 제도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선행하지 않는다면 정년 연장에 따른 파급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합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본의 고령자 고용연장 정책에 대한 한계점도 함께 파악한 만큼 일본의 정책을 바탕으로 하되 일부 개선안도 함께 고심해 봐야 한다고도 했다. 입법처는 “65세까지 고용의무화 조치의 경우 외형적으로 60~64세 고령자의 고용률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면서도 “‘계약직 재고용’ 형태가 주를 이루는 계속고용제도의 선호는 고령자의 근로조건 악화와 함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도입된 ‘취업기회확보’ 조치의 경우에도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고령 근로자를 개인사업주화 또는 프리랜서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령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안정적인 생활환경 조성에는 미흡한 조치였다고 부연했다.
“고령층 취업에 매몰되면 고용의 질 하락할 우려 있어”
우리나라는 현재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정책을 통해 정년 연장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은 60세 이상 근로자의 고용연장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도입한 제도로, 노사 합의를 통해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한 중소·중견기업이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경우 1인당 분기에 90만원씩 최대 2년간 지원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계속고용장려금 정책에 따른 실질적 고용 효과는 다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주춧돌 세우기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022년도 고용영향평가 결과발표회’에서 이승호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해당 정책을 통해 사업장의 60-64세 근로자 비율이 5.8%p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규모가 작은 사업체일수록 고용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으나, 정년 연장을 위한 기틀이 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밝혔다.
‘돈 뿌리기’식 정책으로 인한 고용의 질 하락 현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취업자 수는 총 2,843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5만4,000명 증가했다. 고용률 62.7%, 경제활동참가율 64.4%, 실업률 2.8%로 고용흐름 자체는 양호한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고용의 질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를 보였다. 4월 늘어난 취업자 수는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층이었고, 청년층 취업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특히 60세 이상을 제외하면 취업자수는 오히려 8만8,000명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2030 취업자는 13만7,000명 줄어 6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고, 감소폭도 2021년 2월(14만2,000명) 이후 가장 컸다.
주요 선진국 중 노동관계법령에 민간 부문 종사자에 대한 별도의 정년 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유일하다. 급격한 고령화 속도와 이로 인해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미래세대의 부담 등을 고려하면 정년 연장 또는 폐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쫓기듯 진행되는 정년 연장은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만큼 면밀하고도 안정적인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청년 실업률도 백안시해선 안 된다. 고령층 취업 및 계속고용에 매몰돼 미래세대의 성장을 억제하는 결과가 초래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정책을 바탕으로 정년 연장을 세심히 논의하되 청년 취업률과 고령층 취업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 것이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