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내연기관→전기차’ 생산시설 전환에 16조원 보조금 지급, 전기차 시장 경쟁 더욱 치열해질 전망

기존 美 자동차 회사의 ‘전기차 공장 전환 및 배터리 산업’까지 지원 전기차 전환 노리는 완성차 업체 늘어날 전망, ‘국내 전기차 업체’ 타격 클 듯 한편 대선 앞둔 바이든 행정부, ‘지지층 달래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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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을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 공장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대규모 정책 자금을 투입한다. 이번 정책으로 전기차 전환을 시도하는 완성차 업체 늘어날 전망인 가운데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전기차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더욱 축소될 거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전기차 생산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이유로 파업을 예고한 전미자동차노조(UAW)를 달래기 위한 유화 정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에너지부, 생산직 노동자에게 지원금 우선 지원하기로

미국 에너지부는 31일(현지 시간) 기존 자동차 공장을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공장으로 바꿀 경우 120억 달러(약 16조원)의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먼저 이 가운데 100억 달러(약 13조1,720억원)는 에너지부의 첨단기술 차량 제조 프로그램에 따라 지급되며, 나머지 20억 달러(약 2조6,344억원)는 지난해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미국 내 제조 전환 보조금’에 해당한다.

에너지부는 단체협약을 유지하거나, 생산직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된 프로젝트에 자금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120억 달러 지원과는 별도로 국내 배터리 제조를 장려하기 위해 35억 달러(약 4조892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바이드노믹스(바이든+이코노믹스)에 근거한 청정에너지 경제 구축은 수십 년간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노조 노동자와 자동차 업체에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면서 “기존 노동자들이 현재 일자리를 지키고 자동차 산업 변화에 따라 만들어지는 좋은 일자리를 먼저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이번 발표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의 노동자 15만 명이 가입된 UAW의 임금협상 진행 중 공개됐다. 이에 따라 이번 발표가 UAW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UAW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정책 등에 대한 불만으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보류 중이다.

현대·기아엔 악재’, 미국 시장 점유율 더 줄어드나

파업을 예고한 UAW를 달래기 위한 이번 정책이 오히려 국내 전기차 업체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존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이번 정책의 혜택을 얻기 위해 전기차 생산 경쟁에 뛰어들 경우 미국 전기차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기아 등 우리나라 전기차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영향으로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하며 점점 시장 점유율을 잃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시장 점유율 총합은 약 7%로, 지난해 10.4%보다 크게 줄었다. 현대차 이이오닉5와 기아 EV6 등 주력 모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선 한계를 보이고 있는 모양새다.

반면 IRA의 수혜를 입은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 전기차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며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기간 모델별 판매량은 테슬라 모델Y와 모델3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고, 현대차 이이오닉5와 기아 EV6가 각각 7·10위에 그쳤다.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IRA에 따라 최대 7,500달러(약 990만원)를 지원하는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차종에 미국 업체들만 선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는 물론 기존 보조금 지급 대상이던 일본과 독일 전기차도 제외됐다.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받기 위해선 북미 내 생산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HMGMA’ 기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

이번 정책 배경은 주요 지지 기반인 UAW’ 달래기

한편 이번 정책이 UAW의 계속되는 반발을 당장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간 UAW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지원 정책에 기존 내연기관차 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의로운 전환’이 결여돼 있다는 점을 비판해 왔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충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미국 정부가 IRA에 따라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산업 육성 정책에 책정한 재정 규모는 3,690억 달러(약 486조6,519억원)에 달한다. 이와 더불어 내연기관차 규제를 강화하며 전기차 산업 육성을 주도하자 포드와 GM 등 기존 완성차 기업들도 자연히 새로운 정책에 맞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내연기관차 제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불리한 근로 환경에 놓이는 등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

결국 바이든 정부를 향한 근로자들의 불만은 정점에 달했고 UAW를 중심으로 대규모 파업이 예고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에 다음 대선에서 연임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 지원 정책과 관련한 딜레마를 안게 됐다. 이전부터 중요한 지지 기반인 UAW의 반발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건 맞지만, 미국 내 전기차 제조업 활성화가 임기 중 최대 성과를 꼽히는 상황에서 노조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책 시행 속도를 조절한다면 IRA 효과가 반감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 수십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두고 있는 UAW는 미국 전체 노동자들의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일각에선 UAW가 가진 영향력을 고려할 때 기존 내연기관차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GM을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해당 산업 노동자들이 소외되도록 방치했다”면서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전기차 관련 정책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에 기존 내연기관차 공장 노동자 고용승계와 같은 대책을 요구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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