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차는 하루에 2만원 내라”, 런던시 ULEZ 규제 전 지역으로 확대

Euro 기준 미달 노후차량, 혼잡요금구역 진입 시 통행료 납부해야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반발 거세 7월 보궐선거 패배 원인으로도 지목되는 ULEZ 규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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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EZ 표지판/사진=런던교통국(Transport for London)

영국 런던시는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배기가스를 많이 내뿜는 노후 공해 차량에 한해 일종의 통행세를 물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에는 런던 일부 도심에 한정했던 규제를 런던 전역으로 확대했는데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하다. 특히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에 신음하는 빈곤층의 반발이 거세다. 여기에 이를 정쟁에 활용하려는 정치인들까지 가세하며 논란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통행료 안 내면 범칙금 30만원

지난달 30일 발간된 한국은행 런던사무소 보고서에 따르면 런던시는 일부 지역에 한정적으로 적용하던 초저배출구역(Ultra Low Emission Zone·ULEZ) 규제를 지난달 29일(현지 시각)부터 런던 전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ULEZ는 런던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 2019년 처음 시행한 규제로, 배기가스 배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차량에 한해 비용을 부과한다.

런던시가 지정한 혼잡요금 구역에 집입하기 위해서는 오토바이는 Euro 3 기준(2007년 이전 차량), 휘발유 승용·승합차는 Euro 4 기준(2006년 이전 차량), 경유 승용·승합차는 Euro 6 기준(2015년 이전 차량)을 충족해야 한다.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 차량에 대해서는 하루 12.5파운드(약 2만원)의 통행료가 부과되며, 통행료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180파운드(약 30만원)의 범칙금이 추가로 부과된다.

ULEZ 규제 배경

1952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4일간 발생한 런던 그레이트 스모그(The Great London smog)로 인해 한 달 동안 무려 4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석연료 소비가 부른 가시적이고도 충격적인 재앙이었다. 당시 스모그의 수준이 종전의 스모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농도와 유독성, 그리고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로 인해 그레이트 스모그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이듬해 영국 의회는 비버위원회를 설립해 대기오염 실태를 조사했고, 1956년에는 런던 내 산업시설 발생 연기배출 통제를 골자로 하는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을 제정했다. 2001년에는 LEZ관계법을 제정해 2008년 2월부터 LEZ 제도를 시행했으며, 2012년 1월부터는 연료의 종류와 관계없이 차량의 중량에 따라 런던 시내 운행을 제한했다.

2014년 보리스 존슨 당시 시장(전 영국 총리)이 제안한 ULEZ 제도는 2019년 4월 사디크 칸 현 시장에 의해 런던 도심 한정으로 처음 시행됐다. 2019년 일련의 ULEZ 규제 지역 확대 조치는 시민들의 환경 정책에 대한 높은 수용도를 바탕으로 대기질 개선, 기후 변화 대응에 런던시 당국이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로 해석된다.

런던시는 2021년 ULEZ 규제 지역의 1차 확대 이후 1년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및 대기 농도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하는 한편, 금번 2차 확대로 탄소 배출량이 더욱 크게 축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런던시에 따르면 1차 확대 이후 규제 지역의 경우 미규제 지역에 비해 질소산화물 및 PM 2.5 배출량이 각각 23% 및 19% 감소했으며, 대기농도(이산화질소)도 21%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ULEZ 적용 대상 구역/사진=런던교통국(Transport for London)

정쟁으로 번진 ULEZ 확대 시행

다만 이번 ULEZ 2차 확대 시행과 관련해 환경적 측면을 중시하는 찬성 여론이 다소 우세한 것으로 보이나, 규제 지역 확대가 일반 가계, 소상공인 등에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을 우려하는 반대 여론도 적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7월 여론조사업체 레드필드&윈튼 조사에 따르면 런던 시민의 58%는 ULEZ 제도를 지지하지만, 런던 외곽으로 갈수록 찬성 비율이 낮아져 찬성과 반대가 각각 39%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비가 좋은 새 차를 뽑거나 통행료를 낼 돈이 없는 빈곤층이 직격타를 맞은 탓이다.

ULEZ 기준 미충족 차량 소유자의 경우 통행료를 납부하고 계속 운행할 것인지, 또는 폐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어느 경우라도 재무적 압박은 피할 수 없다. 특히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의 반발이 거센데, 외곽은 도심과 달리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차량 운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 런던 시민은 “지금 당장 여유가 없다”며 “매일 외출하는데 연금만으로는 벌금을 감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런던시는 ULEZ 기준 미충족 차량의 폐차 시 최대 2,000파운드(약 335만원)까지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폐차 및 신차 구매 등에 따른 손실에 비해 지원 금액이 크게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브렉시트와 러-우 전쟁으로 인한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많은 시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임에도 제도 발표 및 시행까지 단 9개월의 유예 기간을 부여한 점,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등 사업자 차량에 대한 특별한 예외조항이 없는 점 등도 향후 제도 정착의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ULEZ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쟁점 사항이다. 칸 시장이 소속된 노동당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칸 시장에게 ULEZ 확대를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 7월 런던 서부 옥스브리지에서는 여당인 보수당 소속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파티 게이트’로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당초 노동당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졌지만 보수당이 뜻밖의 승리를 거뒀다. ULEZ 구역 확대 반대를 전면에 내건 보수당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칸 시장은 차량 교체 비용 지원을 늘리는 등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지만,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보수당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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