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회계 공시’ 본격화에 양대노총도 긴장, ‘MZ 눈치 보기’도 가속화

노조 회계 공시 시작, 양대노총 산하 조직 이탈 가능성 가시화 세대 갈등 아래 위기 처한 노조, MZ 끌어들이기 시도하곤 있지만 MZ세대 미운털 박힌 기성 노조들, 회계 공시로 투명성 제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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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불합리한 노동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노조의 불합리한 관행이 합리적 노사관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사진=고용노동부

이번 달부터 자율에 기반을 둔 노동조합 회계 공시가 시작됐다. 노사 법치주의 원칙 아래 조합원의 권리 신장 및 노조에 대한 국민 신뢰 향상이 그 취지다.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조합비에 대한 세액공제가 이뤄지는 만큼 노조의 회계 투명성이 제고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강대강 대치 상황에 놓인 노정 관계 아래서 양대노총의 공시 참여가 앞으로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 회계 공시, 韓 노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것”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회계 공시 관련 브리핑을 열고 “노조 회계 공시 제도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장차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획기적인 이정표가 됨으로써 우리나라 노동조합 제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노조 회계 공시는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회계 공시를 희망하는 노조와 산하 조직은 올해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노동행정 종합정보망 ‘노동포털’ 내에 마련된 노동조합 회계 공시시스템을 통해 2022년도 결산결과를 공시할 수 있다.

노조의 회계 공시는 어디까지나 자율의 영역이다. 그러나 향후 공시하지 않으면 조합비를 낸 근로자는 기부금의 15%를 세액공제 받을 수 없게 돼 노조 사이에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올해 1월부터 9월 납부분은 기존대로 세액공제 대상이나 공시 제도가 시작된 10월에서 12월분은 노조가 회계를 공시해야 공제받을 수 있지만,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노조와 산하 조직은 내달 30일까지 2022년도 결산 결과를 시스템에 공시해야만 조합원이 내년 1월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 예외로 1,000명 미만 노조의 경우 공시 없이 기존대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유예 기간을 두되 시범 사업 성격으로 이달 1일부터 공시 시스템을 신속히 가동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노조 간부들의 횡령, 비리 등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니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노동 개혁의 성과 중에 가장 시급한 것 중의 하나가 회계 투명성이었다”며 “중요성과 시급성 측면에서 일단 공시 제도를 시급히 하게 됐으며, 국민들이 개혁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회계 공시에 부정적인 양대노총, 하지만?

실질적으로 회계 공시의 대상이 되는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노조와 산하 조직은 총 673곳으로, 한국노총 및 가맹 노조와 산하 조직이 303곳, 민주노총 및 가맹 노조와 산하 조직이 249곳이다.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면 산하 조직은 세액공제 대상이 되지만 강대강 국면의 노정 관계에서 양대노총의 자율적 참여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상급단체의 선택이 산하 조직까지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만큼 상급단체 탈퇴 유도와 ‘연좌제’ 방식이라는 비판의 소지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노조 탈퇴를 유도한다는 건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며 “노조가 조합원을 위한 민주적인 조직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상급단체가 공시를 할 것이고, 조합원들 또한 상급단체로 하여금 공시를 하도록 요청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동안 강력 반발하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서 회계 공시에 참여하는 노조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에 따르면 이날 한국노총 전국공공노조연맹 소속 김포도시공사노조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연맹 소속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는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노조 회계를 등록했다. 이 장관은 “그간 현장의 많은 노조 관계자와 조합원들이 총연합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결국 조합원이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총연합단체가 공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해왔다”며 양대노총의 동참을 주문하기도 했다.

다만 개별 노조 차원에서 회계 공시를 하더라도 이들이 소속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 상급단체가 회계 공시 시스템에 등록하지 않으면 개별 노조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더욱이 이번 공시등록대상 노조 중 양대노총이 차지하는 비중은 82%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양대노총의 회계 공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점은 정부가 타파해 나가야 할 숙제로 남았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지금의 정부 방식은 노동조합을 회계 비리가 있는 집단으로 매도해 노조 혐오를 조장하고 노동개악을 추진하기 위한 요식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민주노총 또한 “노조법 개정을 우회하고 소득세법 시행령을 연계한 노동조합 통제·산별노조운동 탄압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하 노조 사이에서 회계 공시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금 공제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선 회계 공시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대노총 사이에서도 산하 노조의 이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노총 간부는 “노총이 정부 입장에 반대인 것은 변함없지만 소속 노조의 이탈 가능성도 있다”며 “각 조합원들의 돈과 연결이 되는 문제다 보니 내부적으로 토론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동조합이 노조 회계 시스템에 기재한 회계 자료 화면의 일부/출처=고용노동부

“회계 공시, 오히려 ‘탈출구’ 될 수도”

일각에선 회계 공시가 오히려 노조들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래의 중추가 될 MZ세대 사이에서 노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회계 공시를 통한 투명성 제고는 외려 ‘노조를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MZ세대의 시선에서 볼 때 기성 노조의 모습은 다소 불합리하다. 특히 기성 노조들의 불법, 폭력 시위 등에 대한 누적된 비판과 불만은 MZ세대의 노조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틀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한 누리꾼은 “시위의 본질은 단체행동권을 통해 부당함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그러나 기성 노조의 시위는 정치 구호와 불법·폭력으로 점철된 경우가 잦아 대중적 인식이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노조 차원에서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엔 ‘2023년 노동단체 지원사업’ 대상으로 채택된 노조들이 대거 청년 교육, MZ세대 연구 등을 명목으로 지원금을 신청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노조들이 추후 사회의 중추가 될 MZ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한 ‘생존 방안’ 모색에 골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지난해 ‘청년’을 내걸고 보조금을 수령한 사업이 2건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변화다. 특히 보조금 수령 경험이 있고 MZ 노조로 분류되지 않던 기존 노조들이 MZ와 청년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보인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MZ세대의 시선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 자체가 변화에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계 공시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이 표출되는 건 이 부분과도 관련이 깊다. 노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노조의 투명성이 제고될 필요가 있다. 노조 불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불투명한 재정’을 우선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계 공시로 인해 MZ세대의 뇌리에 박힌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씻어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노조원 확보 차원에서 회계 공시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란 게 대체적인 시선이다. 극심한 세대 갈등 아래 존폐의 기로에 놓인 노조가 마지막 동아줄을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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