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청 조정위 결론 없이 종료, 사공이 많으면 ‘로켓’도 산으로 간다
국회 과방위 안건조정위원회, 90일 내내 '정쟁' 이어가다 허무하게 막 내려 우주청 R&D 집행 여부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 여야, 결국 끝까지 결론 없었다 '미래 먹거리' 우주산업에 눈 밝히는 세계, 컨트롤타워 없는 韓 '지지부진'
우주항공청 설립에 필요한 특별법 등을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가 지난 23일 성과 없이 종료됐다. 90일의 논의 기간 내내 이어진 여야 간 ‘정쟁’으로 이렇다 할 결론이 도출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우주항공청특별법은 다시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어가게 됐으며, 정부·여당이 목표하던 연내 우주청 출범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마지막 토론회에서도 이견 못 좁혔다
23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우주항공청 조기개청 토론회’와 ‘제대로된 우주정책 전담기관 설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여당 의원 13명이 공동 주최한 우주청 조기개청 토론회에는 여당 의원을 포함해 4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우주청 설립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힘은 이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주청으로 일단 출범해 글로벌 우주산업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반면 조승래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야당 의원들이 개최한 우주정책 전담기관 설립 토론회에서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우주청은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의견을 부각하고자 정부가 제출한 관련 법안에서 명시된 ‘우주항공청’ 대신 ‘우주 정책 전담 기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천문연구원 기관장을 비롯한 연구진 80여 명이 모였다.
조승래 의원은 지난 7월 안조위 조직 이후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과기정통부 산하 우주청’을 수용한 바 있다. 우주청이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직속의 거버넌스 형태로 출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접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우주청의 직접 R&D 수행’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은 끝까지 꺾지 않았다. 항우연·천문연이 그동안 수행해 온 R&D를 우주청이 수행하는 것은 업무 중복이며, 우주청은 이를 뛰어넘는 범부처 정책을 기획·조정·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주청 관련 안조위에는 박성중·윤두현 국민의힘 의원, 여권 성향 하영제 무소속 의원, 조승래·변재일·이정문 민주당 의원 등이 소속돼 있다. 안조위에 속한 조정위원 6명은 90일간 관련 법안을 숙의하게 되며, 이 중 4명(3분의 2)이 동의하면 법안이 의결된다. 하지만 여야는 끝까지 우주청의 직접 R&D 수행에 대한 각자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안조위는 이렇다 할 법안 의결 없이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우주청 R&D 집행 ‘옥상옥’ 논쟁
여당은 연구기획·조정과 집행, R&D 수행 등의 업무가 우주청 내에서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반면 야당은 현존하는 R&D 수행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천문연구원 등과 우주청의 업무 중복, 즉 ‘옥상옥’을 우려했다. 조승래 의원은 “우주항공청은 R&D 과제 설계나 집행만 하더라도 옥상옥이라고 받아들여지는데, R&D 기능까지 하게 되면 옥상옥이 2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우주항공청이 직접 R&D를 한다면 항우연·천문연과 중복이고, 경우에 따라 연구기관이 가지고 있던 성취가 유실될 수 있다고 현장은 걱정한다”고 밝혔다.
조성경 과기정통부 1차관은 우주청의 R&D 수행이 옥상옥이 아니라고 맞섰다. 조 차관은 “R&D는 항우연·천문연이 하는 걸 겹쳐서 하겠다는 게 아니다. 새로운 분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만큼) 산업과의 연계, 산업으로의 확산 등을 위한 개념 설계와 같은 기초적인 기본 프레임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항우연·천문연 외에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대학이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다양한 연구소와 융합해 같이 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여야 간 의견 대립이 단순 ‘이견’ 때문이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 의원은 “지난해 항우연과 천문연, 카이스트 등 연구·교육 기능을 갖춘 대전을 배제하고 우주 산업클러스터를 지정한다고 했을 때부터 항공 R&D 등을 모두 대통령 공약사항이던 경남 사천으로 들고 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며 “본질적으로는 입지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사실상 정쟁 성격을 띠는 ‘샅바 싸움’이 논의를 좌초시켰다는 분석이다.
떠오르는 우주산업, 멈춰 선 대한민국
세계 각국의 ‘우주산업’ 개척에 속도가 붙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은 국가 주도의 정책이나 자금 지원을 넘어 민간 기업들이 우주 개발을 추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이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우주 경제 규모가 2020년 3,850억 달러(약 510조원)에서 오는 2040년 1조1,000억 달러(약 1456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올 상반기 누리호 3차 발사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역시 ‘우주 경제’를 향한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의 주요 목표였던 ‘연내 우주청 설립’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로 전락했다. 미래 전망이 밝은 우주산업 선점을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컨트롤타워 설립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인재 이탈’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이번 우주청 안조위가 ‘정쟁’에 중점을 두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만큼, 국내 우주·항공 인재들의 불안감이 가중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우주·항공 인력이 민간 기업, 외국 기업·대학 등 안정적인 조건을 찾아 이탈할 경우 국내 우주 산업 발전은 한층 더뎌질 수밖에 없다.
우주청 설립의 근본적인 목적은 다가오는 우주 경제 시대에 대한 선제 대응이다. 수많은 사공이 정당의 이익을 내세우며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할 경우, 우리나라가 쏘아 올릴 로켓은 ‘우주’가 아닌 ‘산’으로 향하고 만다. 이후 진행될 여야 간 논의에서는 부디 정당이 아닌 ‘국가’를 위한 생산적인 결론이 도출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