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목전에 둔 韓 경제? 부동산 버블 붕괴되면 장기 불황 올 수도
현재의 한국과 30년 전 일본의 유사한 움직임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에도 수도권-지방 양극화 심화하는 이유는? 지자체 세입 50%가 '부동산 관련 조세', 재정 악화 부추기는 양극화
최근 정부가 부동산 경기 침체로 급감한 주택 공급 물량을 회복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30년’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990년대 버블이 붕괴되면서 장기 침체로 접어들 당시 일본이 겪었던 고령화, 저출산, 과잉 부채,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징후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급격히 상승한 국내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경우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고령화, 과잉 부채 등 일본과 많이 닮아 있어
우리나라는 현재 30년 전의 일본처럼 고령화로 인해 총부양률이 높아지면서 생산가능인구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노동력이 성장을 견인하던 인구 보너스 시대가 저물고 부양부담 증가로 소비가 침체되는 인구 오너스(Onus)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2013년 아베 정권 당시 인구 오너스를 늦추기 위해 여성과 은퇴자의 경제활동을 이끌어냈음에도 소비 침체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해 실패로 돌아간 바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인해 서비스업이 취약하다는 점도 닮은 꼴이다. 일본은 제조업이 성장을 이끌 동안 서비스업 생산성 개선 노력이 미흡했고, 이에 저성장 국면 동안 서비스업 생산성이 빠르게 저하했다. 우리나라도 서비스업 생산성이 제조업의 절반 수준으로, 주요국 대비 낮아 외수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잉부채로 인한 경기침체도 유사점으로 꼽힌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소비와 투자가 제약 되는 임계수준(GDP대비 80%, BIS기준)을 훨씬 초과해 우려가 더욱 크다. 지난달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9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가계부채) 비율은 101.7%로 집계됐는데, 이는 세계 4위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73.4%) 및 신흥국(48.4%) 평균을 크게 웃도는 데다 1995년 일본의 부동산 버블 정점 시기(70%)보다도 높다. 6년 전과 비교하면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2017년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92%로, 6년 사이 16.1%p나 증가했다.
국내 가계부채 증가 원인
이같은 가계대출 증가에는 정부가 추진한 대출 규제 완화와 정책금융 상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투기·투기과열지구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했고, 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도 50%로 일원화했다. 여기에 정부는 올해 1월 말 소득에 상관없이 최대 9억원의 주택을 담보로 5억원까지 대출할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도 출시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받지 않는 특례보금자리론은 출시 당시에도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7월에는 주택담보대출 만기 50년짜리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만기가 길어지는 만큼 차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다.
이로 인한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최근에서야 정책금융 상품 제한을 통해 가계대출 억제에 나섰지만, 오히려 “더 늦기 전에 집 사자”는 수요를 자극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일본의 버블 붕괴를 연상시킨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약 5년 동안 3배 이상 급등한 뒤 1991년 가을부터 20년 넘게 장기 하락이 이어졌다.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긴 불황의 터널에 빠졌다.
양극화 심화, 결국 지방 소멸 부른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1억 인구 모두가 중산층이라는 ‘1억총중류’ 신화를 무너뜨리며 본격적인 양극화의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정권 당시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가격 격차는 2배 이상 커졌는데, 주범으로는 징벌적 과세가 지목된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진원을 다주택자로 몰아 가격이 아닌 보유 수에 따라 세금을 매긴 게 패착이 된 것이다.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지방의 여러 채를 사느니 차라리 수도권에 집 한 채를 사는 게 낫다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붐도 이때 나왔다. 이에 지방의 수요는 점점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수도권 집값을 끌어올리며 양극화를 더욱 부추겼다.
이에 윤석열 정부 들어 시장에 혼란을 줬던 각종 규제들을 차츰 풀어나가고 있지만,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집값 하락기에 관망하던 아파트 대기수요가 올 초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해제를 기점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영향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아파트값 격차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청약시장에서도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올해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은 서울의 경우 54.05대 1로 지난해 부진을 만회했으나, 지방은 경남을 제외한 12개 시도가 한 자릿수 경쟁률에 그치거나 미달로 나타났다. 경북의 경우 올해 1순위 청약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와중에 대구, 포항, 경주 등 대구경북권은 무분별한 아파트 건축허가로 인해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터져 부동산 시장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이에 한 부동산 관계자는 “공급대비 수요층이 두터운 수도권과 달리 지방 도시는 미분양이나 수요 위축 등의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며 “시장 회복의 지역 간 양극화는 당분간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양극화는 결국 지방정부의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가 더욱 크다. 지방자치단체 세입의 절반가량이 부동산 관련 조세인 만큼, 거래 위축이 발생하면 지자체의 재정 운용이 나빠질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지방 소멸 시나리오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