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 ‘문어발 M&A’ 막겠다” 반독점 칼 빼든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 거대 플랫폼 겨냥한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안 행정예고 기업결합의 시장 영향에 초점 맞춰, M&A 활용한 문어발 사업 확장 막는다 CVC 규제 될 경우 투자 제한 우려, 시장 획정 역량에 대한 의문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수합병(M&A)을 통한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방지 정책을 강화한다. 공정위는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방지를 위한 경쟁 제한성 평가 기준 개정 등을 골자로 한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안을 15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시작된 독과점 규제 흐름이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춰가는 양상이다.
거대 플랫폼 M&A 심사 기준 개정
공정위는 우선 개정안을 통해 기업결합 일반심사 기준을 확실히 했다. 현행 기준상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기업결합은 사실관계 확인 수준에 그치는 간이심사를 받게 된다. 그간 업계에서는 이 같은 느슨한 M&A 심사가 플랫폼의 ‘문어발 확장’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에 공정위는 개정안을 통해 인수되는 사업자가 △월평균 500만 명 이상에게 상품·서비스를 공급하는 경우 △연간 연구개발비로 300억원 이상을 지출하는 경우에 한해 간이심사 대신 일반심사를 받도록 했다.
M&A가 시장 전반에 미치는 여파도 차후 심사에 반영될 예정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이 업계 점유율이 높은 기업과 M&A를 단행할 경우,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 수와 보유 데이터양이 급증하며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이 독과점 체계를 악용해 가격을 인상하는 등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위험도 크다. 이에 공정위는 경쟁제한 우려 평가 시 해당 서비스에 추가 수요를 유발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고려하도록 했다.
M&A 심사의 첫 단계인 ‘시장 획정’ 기준도 명확히 했다. 광고 시청 등으로 서비스 대가를 받는 ‘명목상 무료 서비스’ 제공 기업의 경우, 매출액에 따라 점유율을 산정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공정위는 개정안을 통해 서비스 이용자 수, 이용 빈도 등 대체 변수를 활용해 기업의 점유율을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무료 서비스 제공 사업자 간 결합의 경우에는 서비스 질 하락 등 비가격적 폐해 우려를 중심으로 경쟁 제한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혼합결합(다른 업종 간의 결합)의 경우 결합 기업이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을 끼워팔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상품의 지배력이 비교적 미진한 시장에 전이, 양쪽 시장의 경쟁 사업자들이 배제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기업결합 심사 시 이 같은 ‘끼워팔기’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됐다.
‘카카오 먹통’ 사태에서 시작된 플랫폼 독점 견제
공정위는 올 초부터 지배력 확장 우려가 큰 빅테크 기업의 M&A 신고 기준을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소규모 회사를 인수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대규모 플랫폼 사업자를 제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일반 기업 대상으로 기업결합 신고 면제를 확대하고, 자진 시정 방안 제출 제도 등을 도입한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계기는 ‘카카오 먹통’ 사태였다. 지난해 10월 15일 발생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는 수많은 카카오 플랫폼을 먹통으로 만들었다. 카카오톡 채널이 마비되자 해당 서비스를 통해 예약 및 구매 주문을 받던 업체들의 소통로가 차단됐고, 고객 호출을 받지 못한 택시업계는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이후 국내에 ‘거대 플랫폼 독점’에 대한 경계심이 싹텄다. 원론적인 기준만 따르며 무작정 M&A를 허용하면 플랫폼 기업 독과점을 막을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번 개정안은 이 같은 시장 우려에 발맞춰 등장한 공정위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M&A가 실제 시장에 미칠 여파에 초점을 맞춘 ‘독과점 브레이크’라는 평이 나온다.
CVC 사업자는 모기업과 시너지 고려해 투자, 피해자 없도록 규정 상세히 살펴야
그러나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사업자들은 모기업과의 시너지를 고려해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다, 일부의 투자의 경우 모기업이 실제로 기업을 인수하게 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만큼, 자칫 CVC가 M&A를 못하도록 막는 절차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벤처 업계의 한 전문가는 “그간 CVC가 규제 철폐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단순히 시장 진입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업 확장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에 따른 시장 제한 때문이었던 것”이라며 “시장 획정 기준이 네트워크 효과까지 고려하게 될 경우 CVC는 M&A를 통한 모기업 인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 효과를 고려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벤처 업계 관계자는 “수학자들도 어려워하는 것이 네트워크 효과 계산”이라며 “SNS를 가진 회사의 인수·합병이 자칫 ‘목에 걸면 목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방식으로 네트워크 효과 계산 결과에 따라갈 수도 있다”는 주의를 내놓기도 했다. 이어 “네트워크가 실제로 사업 확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기업들의 상황과 업무 방향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만큼, 공정위의 법 전문가들이 수학 및 사업 지식 없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