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추심’에 드디어 칼 빼든 정부 “중심 잘 잡아야, ‘유죄추정’ 악몽 재현될라”
한동훈 "불법 추심 엄정 대응, 악질 범죄 근절할 것" 결국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 불법사금융 구속률 1%대 '근절'도 중요하지만, 적법한 기준 마련이 우선돼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공포감을 조성하는 빚 독촉에 대해 스토킹처벌법을 적극 적용해 처벌할 것을 검찰에 주문했다. 최근 성 착취나 가족·지인 등 사회적 관계를 악용한 추심 수법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근절하겠단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지나친 추심 제한은 오히려 채권자의 정당한 추심 권리조차 부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정부 차원에서 적당한 기준을 잡고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불법 추심, 스토킹처벌법 적용할 것”
9일 대통령 주재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한 장관은 불법 채권 추심 피해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사채업자 등의 불법 채권 추심 행위로 인해 일상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았다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대검찰청에 ‘불법 채권 추심 행위 엄정 대응 및 피해자 보호’를 지시했다. 한 장관은 “피해자와 가족 등에 상대로 한 불법 채권 추심으로 피해자의 일상이 파괴되고 더 나아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등 그 피해가 심각하다”며 “철저히 수사해 엄중 처벌하고 사건처리기준(구형) 상향도 적극 검토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촉 과정에서 피해자와 동거인, 가족에게 지속적·반복적으로 불안감과 공포감을 주면 채권추심법뿐만 아니라 스토킹처벌법도 적극 적용하라”고 덧붙였다.
불법 추심 행위에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되면 해당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가해자에 대한 ▲서면 경고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 접근 금지 ▲전자장치 부착 청구 등 잠정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한 장관은 “채권자들이 취득한 불법 수익도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유관기관과 협업해 끝까지 추적하라”면서 “은닉 재산을 파악해 몰수·추징보전 조치를 하는 등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하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처럼 법무부 차원에서 불법 추심 행위 근절에 목소리를 높인 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깊이 내재된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을 만난 뒤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자들이 죄를 평생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처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사채업자와 조직폭력배 등의 협박·공갈에 대한 스토킹처벌법 활용도 윤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불법 추심 ‘근절’ 시사한 정부, 다만
미등록(불법) 대부업체의 불법 채권 추심 행위는 채무자의 삶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특히 최근엔 성 착취나 가족·지인 등 사회적 관계를 악용한 ‘신종 추심’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부업체 등의 추심 행위는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돼 있다. 2009년 제정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은 ‘채권자는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추심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외 시간에는 전화·메시지 등 연락도 금지된다. 또 제3자에게 채무자의 채무 사실을 알리거나 협박·공포심·불안감을 유발하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법 규정은 현장에서 사실상 무력하다. 불법 사채업자를 검거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범행에 대포폰이 이용되고 추심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이나 텔레그램 등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피의자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는 게 검경 측의 입장이다. 이렇다 보니 추심 피해는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올해 1~2월 접수된 불법 추심 관련 피해 상담 건수는 총 271건으로, 전년 동기간 대비 배나 증가했다. 가족·지인을 통한 불법 추심도 64%로 전년 동기(53%)보다 늘어났다. 더군다나 불법 사채업자의 혐의가 일부 입증되더라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 불법사금융 관련 구속률은 2017년 1.8%, 2018년 1.2%, 2019년 1.1%, 2020년 1.1%, 2021년 1.2% 등 매년 1%대에 머무는 상황이다.
지난 10월에는 사회 취약계층 청년에게 대출을 해주고 연 3,000%의 비정상적인 이자와 함께 나체 사진을 요구하는 성 착취 추심을 한 불법 대부 업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에게 돈을 빌렸다 불법 추심을 당한 피해자는 83명에 달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7월까지 소액 대출 홍보 사이트를 개설해 ‘30·50 대출’로 돈을 빌려줬다. 대출 과정에서 주민등록등본 및 통장, 지인 10여 명의 연락처를 담보로 받았고, 이후 협박을 통해 나체 사진을 요구했다. 돈을 제때 갚지 않을 경우 채무 이자는 연 3,000%에 달할 정도로 계속 불어났다. 일당은 피해자를 협박해 받아 둔 나체 사진을 피해자 가족과 지인에게 전송하며 대신 돈을 갚으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피해자의 어머니나 여동생 등 여성 가족 얼굴 사진을 구해 나체 사진으로 합성한 뒤 또 다른 피해자의 지인에게 유포하며 조롱과 협박을 일삼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 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자 언론 등지에선 성 착취 추심, 스토커 추심 등 신종 추심 수법에 대해 일반 추심 관련 법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규정한 법을 적용하거나 새로운 처벌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추심 행위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다만 문제는 무작정 근절만 강조하다간 정당한 추심 행위마저 가로막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법은 지나치게 한 쪽으로 매몰돼선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이미 ‘기울어진 법체계’의 말로를 목격한 바 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유죄추정’은 적잖은 무고 피해자를 낳았고, 이들은 적정한 피해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불법 추심 문제에 대해서도 지나친 언더도그마는 지양해야 하는 만큼, 정부와 국회는 법조계와의 논의를 거쳐 불법 추심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