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력 상실한 ‘균형발전’의 말로, “이젠 효율성 추구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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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수도권 수요 '폭발', 지역 양극화 극대화
지역균형발전의 모순, "잃어버린 160조"
"모든 지역 살리기엔 이미 늦어, 효율적인 예산 책정 필요"
‘서울에 사는 초등학생이 그린 우리나라 지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림/사진=디시인사이드 캡처

20대 청년의 수도권 살이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양극화가 그새 더욱 벌어진 탓이다. 그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목하에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그 결과는 ‘수도권 집중화 가속’이었다. 수십 년의 균형발전 정책에도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멈추지 않자 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회의론적 시각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균형발전’에 집중하면서 예산의 효율적인 분배를 놓친 게 문제 아니었냐는 의견도 속속 나왔다.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던 ‘서울-시골 이분론’이 틀린 말이 아니었단 목소리도 쏟아진다.

수도권 이동 20대 59만 명, ‘수도권 쏠림 현상’ 심화

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13∼2022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20대 순이동 인구는 59만 1,000명에 달했다. 순이동 인구는 지역의 전입 인구에서 전출 인구를 뺀 수치다. 같은 기간 수도권으로 순유입된 전체 인구는 27만9,000명이었다. 20대를 제외한 연령대에선 오히려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인구가 빠져나간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 셈이다. 지난 10년간 서울로 순유입된 20대는 34만1,000명으로, 인천으로 유입된 20대가 1만5,000명, 경기가 23만5,000명 선임을 고려하면 서울로의 청년세대 유입이 매우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에선 청년세대의 유출이 더 높게 일어났다. 경남에선 20대 10만5,000명이 순유출됐는데, 이는 17개 시도 중 가장 많은 수치다. 그 뒤는 경북 9만 명, 전남 7만6,000명, 전북 7만6,000명 등이 이었다. 대구(-6만6,000명), 부산(-5만5,000명), 광주(-3만4,000명) 등의 다른 광역시에서도 20대 인구는 빠져나가는 모양새만 보였다. 수도권을 제외한 시도 중에선 세종(3만4,000명)만이 유일하게 인구가 순유입됐다. 이 같은 수도권 선호 현상의 배경엔 취업·학업 등의 용이성이 있다. 문화·의료서비스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가 커진 점도 수도권으로 청년이 몰린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밖에 대학 진학 등도 20대 이동의 배경으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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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한국은행 별관에서 인구구조 변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를 주제로 열린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한은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줄여야, ‘거점도시’ 강화 필요”

한국은행의 ‘지역 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요인인 고용률·경제성장률 등이 청년세대의 수도권 유입에 영향을 주고 있다. 2015년 이후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임금·고용률·성장률 격차가 커지면서 청년의 비수도권 유출도 심화된 것이다. 그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공공기관들을 지방 각지로 이전하는 등 20년간 총 16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으나, 오히려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화하기만 했다. 특히 청년세대의 수도권 이동과 기성세대 및 노년층의 비수도권 탈출이 맞물리면서 지방 내 청년세대의 비율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정부는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해 자금을 쏟아부었다. 우리나라에서 균형발전 정책은 2003년 최상위 국정과제로 격상된 이후 4차 계획까지 추진됐고 현재 5차(2023~2027년) 국가균형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세종시 일대에 추진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혁신도시 건설 등이다. 한국전력공사가 전남 나주, 국민연금공단이 전북 전주, 한국주택토지공사(LH)가 경남 진주 등에 자리를 잡게 된 것도 지역균형발전의 일환이었다. 이렇게 투입된 예산만 2022년까지 총 164조2,000억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균형발전’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니 효율적인 예산 책정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는 “행정안전부가 인구 감소 지역 89개를 지정한 뒤 10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지방소멸대응 기금이 사용되는 맥락을 살펴보면 사실상 그냥 나눠주는 수준에 그친다”며 “형평성 중심으로 지역발전 정책이 추진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지역균형발전의 성과가 제대로 도출되지 않다 보니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세금 먹는 귀신’ 프레임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도 포착된다. 이와 관련해 한 누리꾼은 “저출산 정책마냥 돈만 쏟아붓고 있는데, 결국 상황이 나아지긴커녕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게 현실 아니냐”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한은이 지역균형발전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은 최근 지역균형발전의 대체재로 ‘거점도시론’을 내놨다. 무작정 지역 전체의 균형을 맞추기보단 부산, 대구, 광주, 대전과 같은 비수도권의 대도시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는 건 고학력 청년들이 몰리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지방에 있는 대도시들이 인구 결집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예산을 분배할 것이 아니라 거점도시 중심의 효율적인 발전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의 50.2%가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서울 공화국’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서울-시골 이분론’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선 ‘자금력’만으론 부족하다. 현재 우리나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월평균 실질임금 격차는 2015년 34만원에서 2021년 53만원으로 크게 확대된 상태다. 고용률 격차도 3.8%p에서 6.7%p로 벌어졌다. 1만 명당 문화에술활동건수 격차는 0.77건에서 0.86건, 1,000명당 의사 수는 0.31명에서 0.45명으로 확대됐다. 취업 등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나 아팠을 때 병원을 찾을 때도 서울이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하단 의미다. 국가 내 수도의 경쟁 우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건 당연한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핵심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모든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수도권 팽창 견제를 위한 보다 효율적인 예산 책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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