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남녀 10명 중 7명 “출산 생각 있어, 다만 아이 낳으려면 경제적 안정이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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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0~69세 남녀 3,000명 대상 조사 결과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해” 지난달 여성 고용률도 역대 최대치 기록
‘낮은 임금, 집값 상승’ 등 일본·중국의 결혼 기피 사유도 국내와 비슷
출처=피앰아이

국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 가운데, 청년들의 출산 의향 자체가 없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에 따른 생존 불안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역시 청년의 생존 문제를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꼽으며 적은 소득으로 자녀 양육 환경이 이뤄질 수 없는 사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 정책이 집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부담’, 출산 기피 사유 1위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가 청년세대의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 20~69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미혼 남녀의 자녀관’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결과, ‘출산 생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77.2%, ‘출산 생각이 없다’고 답한 사람은 22.8%였다. 성별 응답을 살펴보면 여성의 ‘출산 생각 없다’의 비율(30.4%)이 남성보다 13.2%p 높았다.

출산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경제적인 부담(38.9%)’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이어 건강 상태(16.6%)’ ‘배우자와의 둘만의 행복 추구(15.9%)’ 순으로 나타났으며, 이외에도 ‘일/학업 등 경력 단절에 대한 부담감(8.3%)’과 ‘관련 국가 정책 및 제도 미흡(7.5%)’ 등도 유의미한 비율을 차지했다.

미혼 남녀가 출산을 위해 가장 고려해야 할 요인에서도 ‘경제적 안정’(70.3%)이 1위로 나타났다. 출산과 육아를 위한 안정적인 경제 기반과 그를 통한 부양의 책임이 가장 큰 고민 요소인 셈이다. 그 밖에도 ‘건강 상태’(11.4%), ‘배우자와의 관계’(9.6%) 등이 뒤를 이었다.

피앰아이 조민희 대표는 “현세대의 가장 큰 출산 기피 이유는 경제적인 부담 때문”이라며 “경제 불황, 고용 불안정, 치솟는 물가와 같이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경제적 상황이 (출산 결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의 원인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면서 “지금까지의 저출산 정책을 다각도로 점검하고, 미래를 위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기적 지원부터 중장기적 환경 조성, 인프라 구축까지 인구 위기에 대한 총체적 대응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쩍 늘어난 여성 고용률’이 출산 기피 현상 설명

실제로 지난달 국내 여성 고용률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된 뒤 다시 일터로 나선 여성들이 늘어난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한편으론 서민들의 경제적 상황이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2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부에 보고한 ‘최근 일자리 지표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가능연령인 15~64세 여성의 고용률은 지난달 61.9%를 기록했다. 2021년 58.6%에서 지난해 60.4%로 부쩍 늘어난 가운데 올해까지 그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 30대 유자녀 여성 고용률도 전년보다 2%p 증가했다. 해당 지표는 2020년과 2021년 팬데믹 당시 육아를 위해 가정에 머무르던 여성들이 늘어난 탓에 하락했지만, 올해 재취업에 나서는 여성이 늘면서 반등하기 시작했다. 유사 지표인 30대 여성 미취업자 중 유자녀 여성 경력단절비율 역시 지난해 상반기 69.8%를 기록하며 2016년 상반기(77.3%) 이후 6년 만에 7.5%p나 감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저출산의 원인이 “자녀를 가지는 것이 더 이상 생계유지의 필수조건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산도 결혼도 청년에게는 선택사항이 된 데다, 근대화와 산업혁명에 의한 산업구조의 변화는 농업인이나 자영업자의 감소를 가져온 만큼, 노동력으로서 자녀의 의미는 이미 퇴색했다는 설명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5일 ‘출산율을 제고하는 청년 정책 방향’이라는 주제의 포럼에서 “(청년들에게) 생존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2세까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과 사회보장제도 확충으로 출산이 더 이상 노후보장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적은 소득으로 자녀 양육 환경이 안 된다는 점 등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며 “동시에 부모를 즐겁게 하는 역할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로 대체되면서 자녀 양육의 기쁨이 떨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출처=피앰아이

연애·결혼 안 하는 건 이웃 나라들도 마찬가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로 알려진 일본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3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 일본의 출생아 수는 77만747명으로 189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경신한 가운데 올해 상반기에 태어난 출생아 수마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1%(35만2,240명)나 줄어든 것이다. 상반기 혼인 건수 역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 감소한 23만8,626건을 기록하는 등 결혼 기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선 부모가 자녀 대신 짝을 찾아주는 중매 행사마저 열리는 실정이다.

중국에서도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20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2023 통계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초혼자 수는 1,051만 명으로 역대 최저였던 2021년보다 106만 명 더 줄었다. 초혼자 수가 1,100만 명을 하회한 것은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37년 만에 처음이다. 이 같은 심각한 초혼 감소는 결국 출산 감소로도 이어졌다. 중국의 지난해 신생아 수는 956만 명으로 1949년 이후 7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1,000만 명을 하회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올해 처음으로 신생아 수가 900만 명 이하로 떨어질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일본과 중국의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일본에선 주거 문제, 고용률 저하, 낮은 임금, 비싼 생활비, 악명 높은 긴 노동시간 등의 생활 여건이 결혼을 주저하게 만들고, 중국에선 양육비와 집값 상승, 여성의 교육 수준 상승 및 가치관 변화 등이 결혼 기피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인구통계학자인 동위정 광둥성 인구발전연구원 원장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GT)와의 인터뷰에서 “결혼 비용 상승과 결혼 및 출산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 가치관의 변화, 결혼 생활의 불안정성에 대한 인식 등이 (초혼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된 올해는 결혼 건수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다 강력한 출산 지원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혼인 및 출산 감소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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