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문서 전환’ 본격화 나선 정부, 정작 ‘관리’는 뒷전? “실효성 의심될 수밖에”
법령에 '원본성' 조항 신설, 전자문서 완전 전환 가능할까 카카오 먹통 사태 저격하던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에는 '묵묵부답'? 드러난 '디지털 강국'의 민낯, 정보보안 등 국민 신뢰 '수직하락'
정부가 전자문서 활성화의 걸림돌로 꼽히는 원본성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법령에 ‘원본성’과 관련한 조항을 신설해 원본은 무조건 종이문서로 남겨야 하는 불편함을 완전히 타파하겠단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법무부 등과 협의를 통해 종이문서 원본을 요구하는 개별 법령(법·시행령·시행규칙) 332개 중 199개를 추려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선 전자문서 전환 이후 ‘관리’에 있어 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24 등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로 드러난 디지털 정부의 민낯에 정부 역량에 대한 의심이 높아진 탓이다.
KISA “원본성 법적 근거 마련, 디지털 전환 나선다”
박정섭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디지털인프라단장은 21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디지털문서 플랫폼 콘퍼런스 2023’에서 “과기정통부와 법무부가 전자문서 원본성을 인정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전자문서법)’은 일정 요건을 갖추면 전자문서를 서면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지만, 정작 원본성에 관한 조항은 일절 포함돼 있지 않다. 때문에 법령에서 서면을 요구할 경우 이를 전자문서로 대체할 수 있지만 원본은 무조건 종이문서로 남겨야 했다. 즉 현행 법률로는 기관 등에서 원본을 요구할 때 전자문서로 종이문서를 갈음할 수 없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전자문서법을 개정해 전자문서 원본성 요건을 명확히 하더라도 전자문서법보다 우선 적용하는 각 기관별 개별법을 일일이 개정해야만 해당 분야에서 전자문서를 원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본으로 종이문서 제출·보관 등을 요구하는 국내 법령은 332개, 관련 조항은 653개에 달한다. 과기정통부가 지난 7월 KISA, 학계, 법조계 등을 주축으로 개정위원회(연구반)를 꾸린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반은 각 법령을 일일이 살피면서 개정 필요성 여부를 논의했다. 이들은 전자문서의 종이 대체 가능성을 법령 개정의 기준으로 삼았다. 법무부, 해당 법령 소관 부처와 협의한 결과 개정이 필요한 법령을 199개로, 조항은 332개로 구체화했다. 연구반은 개정 작업이 필요한 법령이 추가로 있는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후 해당 법령을 운영하는 기관과 개정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체되는 민간 부문 페이퍼리스
정부는 비용 절감, 편의성 제고 등을 위해 전자문서 전환을 하루빨리 이뤄내겠단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 방침에 대한 의구심이 표출되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 디지털 정부를 언급한 지 20년이 다 된 시점에서야 겨우 원본성 문제를 해결하겠다 나선 데 불만을 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누리꾼은 “디지털 정부, 디지털 강국이라며 올려 치지만, 정작 페이퍼리스 전환 속도는 가장 느린 수준”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공공 부문 대비 민간 부문에서 디지털 전환이 매우 더디다는 점도 실효성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KISA에 따르면 국내 전자문서 이용률은 62.6%로, 이중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81.3%에 달했다. 국가 정보화 사업을 통해 많은 부분을 전자화했지만 생활밀착형 서비스는 여전히 종이문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 부문 전자문서 확산이 더딘 건 정부의 정책적 움직임이 소극적이라는 점, 전자 고지를 위해선 종이문서와 달리 수신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KISA에 따르면 전자문서 도입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투자 우선순위에 밀리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기관의 고유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담 배치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전자문서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주 KISA 전자문서확산팀장은 “종이문서 이용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인식과 관습이 전자문서 확산이 더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전자영수증의 경우 종이 인쇄로 사장되던 영수증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영수증 데이터를 분석한 정보는 고객 유치마케팅과 경영효율화, 상권분석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 차원에서 각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달팽이’ 같은 전자문서 전환, 정부 신뢰 ‘뚝뚝’
정부 차원에서 전자문서 전환 정책을 시행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음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단 점 또한 부정적 평가를 가중시켰다. KISA는 지난 2019년부터 전자문서 확산에 박차를 가하겠단 취지의 언급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KISA는 “전자문서 확산이 이뤄질 경우 종이 절감을 통한 비용 절감, 빅데이터 활용 등 긍정적 효과가 다수 발생할 것”이라며 ▲대국민 고지/안내문 전자화 ▲전자처방전 ▲전자영수증 등 공공과 민간 부문에의 전자문서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그린 장밋빛 미래와는 달리 여전히 전자문서 전환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원본성 문제 해결도 2023년에 들어서야 겨우 실마리를 잡은 상황이다. 정부가 표방하는 ‘디지털 정부’가 국민 입장에서 제대로 체감되지 않으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더군다나 지난 17일엔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 ‘시도새울’과 온라인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 ‘정부24’가 일제히 장애를 일으키면서 전자문서 전환에 대한 ‘불신감’도 높아졌다. IT 역량의 민낯이 까발려지면서 디지털 전환 이후 정부 차원에서 상황 통제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쏟아진 것이다. 서비스 정상화 이후 행안부는 이번 장애의 원인에 대해 “새올 인증 시스템에 연결된 네트워크 장애였다”고 설명했지만, IT 업계는 “단순 네트워크 장비 문제였다면 해결에 24시간 넘게 걸릴 이유가 없다”며 의아해하고 있다. 서버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을 제대로 들이지 않고 ‘폭탄 돌리기’만 반복하는 정부가 차후 디지털 전환 및 전자문서 전환을 이룬 뒤 정보보안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이번 행정전산망 장애가 더욱 질타받는 건, 카카오 먹통 사태를 겨냥하던 정부의 모습이 이번엔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로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을 때 “카카오가 백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고 카카오를 질타한 바 있다. 여기에 ‘카카오 먹통 방지법’까지 만들었다. 정부의 으름장으로 만들어진 카카오 먹통 방지법의 요지는 시스템 전체 이중화인데, 정작 자칭 디지털 정부의 행정 플랫폼은 시스템 이중화를 이루지 않았음이 이번 네트워크 장애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선 “우리 서비스에 장애가 나면 언제 복귀되냐고 XX하더니 자기네 장애 나니 1도 언급 안 한다”며 정부를 비난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전자문서 전환에 앞서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성하는 자세와 문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자문서 전환을 이뤄낸다 하더라도 정보보안 및 네트워크 관리 등이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사실을 정부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