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반대” 재차 끓어오르는 의료계, 왕년의 ‘화력’ 나올까
정부 의대 수요조사 결과 발표 이후 의료계 반발 커져, 연석회의서 파업 결정 2000년 의약분업부터 2020년 전국의사 총파업까지, 끈질긴 의-정 분쟁 2020년보다 거센 파업 예고한 의료계, 정작 젊은 의사들은 '심드렁'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의사 단체들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오는 26일 오후 전국의사대표자·확대임원 연석회의를 연다. 파업 실행 여부·일정 등 의대 정원 증원 대응 방안을 결정하기 위함이다. 2020년 단체행동 이후 의료계 내부 ‘단결’이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과연 상황을 뒤집을 만한 대규모 파업 사례가 등장할 수 있을까.
‘의대 정원 증가’에 본격적인 반기
의협의 이번 행동은 지난 21일 정부의 ‘의대 수요조사 결과’ 발표에 따른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2.7%(‘매우 필요하다’ 57.7%, ‘필요하다’ 25.0%)가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공공 분야에서만 최소 1,000명 늘려야 필수·지역 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에 의료계는 수요 조사 방식이 투명하지 않았고, 결과 발표 역시 기습적이었다고 반박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총선용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했다. 의협은 지난 22일 제18차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모두 발언 이후 자리를 이탈하며 본격적인 반발 의사를 드러냈고, 이후 26일 회의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비 의사들 역시 반기를 들고 나섰다. 26일 의협 연석회의에 앞서 의대생들과 의학전문대학원생들의 단체인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25일 서울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들은 임시총회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확대 방침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의협은 2020년 파업보다 더 거센 파업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안에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등 대규모 파업을 유발했던 내용이 빠져 있는 만큼, 이전과 같은 대규모 총파업을 단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그간 정부가 의사 단체들과 의정 협의를 지속해 왔고, 수요자·환자 단체 등까지 논의 상대를 다각화했다는 점도 대규모 파업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의약분업부터 공공의대까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정부와 의료계의 ‘전면전’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대중 정부 당시 의약분업 관련 분쟁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의약분업이 약물 오남용 및 약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 도입을 강행했다. 이에 반기를 든 의사들은 본격적인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2000년 7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전국 개업의 및 대학병원 교수들이 참여한 5차례 파업, 대규모 집회 등을 단행했다. 6월에는 6일간 파업 투쟁을 벌이며 ‘의료 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의약분업 도입 합의 조건으로 의대 정원 축소를 내걸었다. 의사들의 조제권을 약사들에게 주는 대신 의사 정원을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20년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겠다고 나섰다. 김대중 정부에서 내놓은 합의안이 20년 만에 깨진 것이다. 이에 더해 보건복지부가 ‘시민단체 등의 추천으로 공공의대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해명 자료를 공식 블로그에 게재하자 의료계의 불만이 폭발했다.
의료계는 ‘전국의사 총파업’을 단행하며 대규모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확대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원격 의료(비대면 진료) 등 주요 안건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의정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8월 14일 전국의사 총파업에는 1만여 명에 달하는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들이 참여했다. 이후 제2차 전국의사 총파업, 의협의 무기한 파업 예고 등이 이어지며 상황이 격화했고, 9월 4일 의정이 합의점을 마련하며 분쟁이 일단락됐다.
젊은 의사들 “단결은 끝났다”
2020년 당시 파업을 이끈 것은 젊은 의사와 예비 의사들이었다. 인턴과 레지던트가 시위를 주도하고, 이후 병원 내 역할이 큰 전임의들이 가세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의 경우 청년층의 참여가 미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지난 5월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에서 한 차례 의견 결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공의들은 2020년 단체행동 당시 선배들의 ‘밥그릇 싸움’에 젊은 의사들이 휘말렸다고 호소한다. 선배가 마땅히 해결할 일을 후배에게 떠밀었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의 발언권 및 처우에 무심했던 의료계가 ‘필요할 때만’ 전공의 역할론을 강조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2020년 단체행동 이후 의대협이 표류 상태에 접어들며 전공의들과 함께 최전선에 섰던 의대생들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이들은 2020년 단체행동 이후 파업을 비롯한 ‘정치 싸움’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상태다. 지난 5월에는 “선배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전과 같은 ‘의료계 단결’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2020년 수준의 화력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