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망 노후화 인식하고서도 ‘쉬쉬’, 안일한 정부가 불러온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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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장비 노후화 '심화', 시장 단종 프로그램도 다수
장비 교체 예산 요청한 행안부, 기재부는 "시급성 떨어져" 예산 탈락
사실상 알고도 '모른 체', "지금이라도 리모델링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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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 마비로 서비스가 중단된 정부24/출처=정부24 홈페이지 캡처

공공기관 행정망의 장비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내용연한 초과 기간이 7년을 넘었거나 시장에서 이미 단종돼,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받는 건 물론 수리 부품조차 구하기 힘든 장비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를 의식해 2019년부터 관련 예산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사업 추진의 시급성’ 등을 이유로 예산 배정 대상에서 탈락시켜 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정부가 전산망 노후화를 알면서도 백안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행정망 인프라 장비 ‘25%’ 내용연한 초과

26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행정망 서버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본원의 인프라를 구성하는 장비 4,200여 개 중 25%가량이 내용연한을 초과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50여 개는 내용연한 초과 기간이 1년 안팎이고, 200여 개는 이미 3년을 초과했다. 7년을 넘은 장비도 15개에 이르렀다. 최근 시민 혼란을 불러일으킨 정부24 등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된 라우터(L3) 장비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안부는 지난 25일 “해당 장비가 노후화된 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국가정보통신망 라우터 내용연한을 개정해 해당 장비의 내용연한을 기존 8년에서 9년으로 늘렸을 뿐이었다. 사실상 노후화된 장비가 맞았다는 의미다. 외국산(시스코)인 해당 장비의 도입일은 2015년 11월 30일로, 시장에선 이미 2019년 5월 단종됐다.

행안부는 행정망 장비 노후화 문제의 심각성을 수년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2018년 7월 행안부 지역정보지원과(현재 지역디지털협력과)가 작성한 ‘지방행정공통시스템 재구축 마스터플랜 수립(시도·새올행정정보시스템 및 공통 기반 시스템 분야)’ 전자정부지원사업 제안 요청서를 보면 행안부는 해당 사업 목적을 ‘단종 및 기술 지원 중단 등 노후화된 기술의 개선과 성능의 보장으로 대국민 서비스 이용 편리성 향상’이라고 명시했다. 서비스 안정성 확보 및 장애 발생 시 대응 시간 최소화 등도 들었다. 지난 2019년부터 노후 시스템 개선을 포함한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해 온 바도 있다. 해당 사업은 전국 17개 광역시·도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시도행정시스템’과 228개 시·군·구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쓰는 ‘새올행정시스템’을 통합해 새롭게 개편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디지털 행정서비스의 근간을 이루는 두 시스템은 각각 2004년과 2006년 개통된 뒤로 지금까지 리뉴얼되지 않았다. 그만큼 설비 노후화가 심각하단 의미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기재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검토 단계에서 5차례나 탈락했고, 지난해에야 겨우 조사 대상에 들었다. 그나마도 올 상반기 진행된 예비타당성 1차 심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 기준치인 1점을 넘지 못해(0.87) 다시금 1차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에 대해 김휘강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예산 삭감 1순위가 IT 및 보안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유지보수 요율의 현실화가 되지 않고 있는 게 설비 노후화의 진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간기업이 기술·장비 구입과 교체에 대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그에 맞춰 이행하는 것처럼 정부도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해 따라야 하는데, 이번 행정망 먹통 사태를 보면 계획 수립과 이행이 제대로 됐는지 의문”이라며 “결국 10년 넘게 방치된 노후화 장비의 ‘관절’이 다 닳아 무너지게 된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지보수 게을리한 정부, 전산망 오류 올해에만 세 번째

국가 행정전산망 장애가 드러낸 문제점은 심각하다.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움직이는 정부가 유지보수를 게을리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그림자를 여과 없이 보여줬단 평가가 나온다. 이번 전산망 먹통 사태로 인해 인감 증명이나 전입 신고, 취업지원서 제출, 해외 출국 등에 차질이 생긴 시민들이 속출한 건 물론이고 인터넷 등기소도 불통돼 불편이 늘었다. 은행에서도 신분증 확인이 되지 않았고, 전입 신고, 부동산 계약 등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려던 시민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정부의 사후대처 시스템에도 구멍이 드러났다. 정부는 전산망 장애 사태로 피해가 재난급으로 커지는데도 그 흔한 안내 문자 하나 보내지 않았다. 장애가 발생한 지 9시간 남짓이 지난 오후 5시께가 돼서야 일선 관공서에 업무 처리 지침이 내려간 정도였다.

정부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한 건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앞서 지난 3월엔 법원 전산망이 마비됐다. 재판사무시스템,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 등 내부 전체 업무 시스템과 전자소송 홈페이지 등 일부 외부 시스템이 중단됐다. 당시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사무 및 전자소송시스템 중단 사태’ 관련 사과문을 통해 “수원회생법원과 부산회생법원에 회생·파산 관련 사건의 데이터를 이전하는 작업 중 문제가 발생했다. 프로그램적 오류 등으로 인해 목표 시간까지 이관을 완료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엔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교 행정 업무에 사용하는 나이스의 새 버전이 개통하자마자 오류가 발생해 학교 현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전산망 오류에 극도로 취약한 게 우리나라 행정 시스템의 현주소다. 전산망 마비 사태를 여러 차례 겪다 보니 아직도 사후대처 시스템마저 제대로 세우지 못한 정부를 향해 성토하는 시민들도 부쩍 늘었다.

“카카오 먹통 사태 질타하던 정부 어디 숨었나”

현재 정부는 문제 예상, 백업 대비 등 모든 이슈에 대해 제대로 된 작업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나치게 노후화된 장비들이 화를 키웠단 분석이 나온다. 노후화 하드웨어 교체에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에 비판을 쏟아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부의 안일함과 공무원 특유의 직무태만이 결국 관리 공백으로 발전했단 것이다. 정부의 관리 미흡 문제는 이전부터 지적돼 온 사안 중 하나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상수도관 노후화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상수도관의 32.3%(6만3,849km)가 1996년 이전에 설치된 노후 상수도관이다. 특히 상수도관 노후 등으로 인한 연간 수돗물 누수량은 6억8,700㎥로 누수율 10.9%에 달한다. 이에 커뮤니티에선 “결국 정부기관이 이어오던 나태의 병폐가 전산망 마비라는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아다닌다.

앞선 카카오 먹통 사태를 대하던 정부의 모습은 가히 호랑이와 같다 말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로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자 “카카오가 백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며 카카오를 거세게 질타했다. ‘카카오 먹통 방지법’을 만들며 시스템 전체 이중화를 법제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 전산망이 마비된 데 대해선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솟아났다. 이와 관련해 김명주 서울여자대학교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업무영속성(BCP)과 재난복구성(DRP)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L4 스위치는 이중화를 해도 같은 제품일 경우 펌웨어 갱신 시 동시에 망가질 수도 있다. 더 큰 차원에서의 이중화를 생각해 볼 시점”이라며 “지금까지 잘 운영해 온 시스템이라고 안주하지 말고 어느 시점에서는 원점 기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근원적이며 거시적인 리뷰가 진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각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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