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물가 상승에 밥상 물가 ‘고공행진’, 물가관리 나선 정부에 업계는 ‘시큰둥’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3.8%, 근원물가 상승률은 3.3% "식료품 물가 상승은 글로벌 추세, 환경 문제 등 영향 커" 서민 물가 '비상등', "정부 대책 필요해 vs 물가 통제 재고해 봐야"
소비자물가가 여전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상승률이 다소 하락한 모습이지만, 정작 식료품 물가 상승 폭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등이 켜졌다. 식료품 물가가 높아짐에 따라 외식 물가 상승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차후 6개월 내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 응답한 업체가 70%에 달하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물가관리 대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재반등’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7월 6.3%를 정점으로 올해 7월 2.3%까지 하락해 저점을 찍었다. 하지만 여름철 기상 악화에 따른 작황 부진 등 악재가 겨치면서 농산물 가격이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8월 3.4%, 9월 3.7%, 10월 3.8%로 근 3개월 연속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등했다. 그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건 물가지수 품목 중 가중치가 높은 석유류가 전년 동월 대비 5.1% 하락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농산물값이 계속 오르면서 ‘장바구니 물가’ 지수들은 지난달에 이어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신선어개·채소·과실 등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2.7% 올랐다. 이는 지난달 상승 폭(12.1%)을 웃도는 수준으로, 지난해 9월(12.8%)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높다. 특히 신선과실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4.6% 급등했다.
품목별로는 농축수산물이 전년 동월 대비 6.6% 상승했다. 지난달(7.3%)에 비해선 상승 폭이 다소 둔화한 셈이지만, 이 중 농산물 물가는 13.6% 높아지면서 2021년 5월(13.9%) 이후 30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상승률은 3.3%로, 전월(3.6%) 대비 소폭 하락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3.0% 올랐다. 전월(3.2%) 대비 0.2%p 하락한 수준이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4.0% 올랐다. 전월(4.0%) 대비 상승 폭이 다소 둔화했다곤 하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식료품 물가 상승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경제전망보고서에 게재한 ‘국내외 식료품 물가(food inflation) 흐름 평가 및 리스크 요인’에 따르면 집중호우와 폭염, 태풍 등 기상 여건 악화 및 흑해곡물협정 중단, 일부 국가의 식량 수출 제한 등이 커지면서 식료품 물가 우려가 글로벌 문제로 발전했다. 특히 영국은 지난 3월 식료품 물가가 19.2% 상승하면서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온난화 등 환경 문제도 식료품 물가 상승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한은은 “올해 중 강한 강도의 엘니뇨 발생이 예상되는데, 과거 사례를 보면 엘니뇨 기간 이후에는 국제식량가격 상승기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여왔다”면서 “해수면 온도가 예년 대비 1도 상승할 때 평균적으로 1∼2년의 시차를 두고 국제식량가격이 5∼7%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외식 물가 급등, ‘가격 인상 계획 있다’ 응답 70% 달해
식료품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가공식품 및 외식 물가가 크게 올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부담이 증대할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 9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3년 2분기 외식산업 인사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외식업체 3,000곳 가운데 90.3%가 메뉴 가격 인상의 이유로 ‘식재료 비용의 상승’을 꼽았다. 외식업주들은 식재료 중에선 ‘채소’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밝혔다.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8월 상추(적, 중품) kg당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2.2%, 양파는 5.9%, 파 10.1% 상승했다. 식용유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와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제한 등의 영향으로 가격이 급등한 품목으로 꼽았다. 식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최근 1년 6개월 사이 가격을 인상했다고 답한 이들은 조사 업체의 38%(1,140개)에 달했다.
특히 ‘향후 메뉴 가격 인상 계획이 있는가’란 질문에 전체의 13.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인상 계획 시기별로는 ‘6개월 이내’가 40.29% 가장 컸고, ‘3개월 이내’(12.71%), ‘1개월 이내’(7.91%) 순으로 집계됐다. 메뉴 가격을 올리겠다고 답한 업체 중 70% 이상이 6개월 이내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밝힌 만큼, 외식 물가 상승세는 내년 1분기까지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식업 사업자들 사이에선 외식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 지원을 거듭 요청하고 있다. ‘현재 가장 필요한 정책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이들은 ‘식재료 가격 안정’(74.63%)을 주된 의견으로 꼽았으며, 이외에도 ‘공공요금 할인’(49.40%), ‘대출이자 납부 유예’(24.83%), ‘외국인 인력 도입 등 고용난 지원’(13.13%) 등의 의견을 피력했다.
대책 마련 나섰지만, “가격 통제가 능사는 아냐”
물가 오름세가 지속됨에 따라 서민 생활에 비상등이 켜진 만큼 정부도 가만있지만은 않았다. 정부는 지난달 TF를 꾸려 우유와 커피 등 주요 식품의 물가를 품목별로 집중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7개 주요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리 대상은 서민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라면과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과 국제가격이 작년보다 35% 오른 설탕, 원유(原乳) 가격 인상 여파로 가격이 상승한 우유까지 모두 7가지 품목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지난달 소비자 물가동향을 보면 아이스크림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 대비 15.2% 뛰었으며 우유는 14.3% 올랐다. 빵은 5.5% 올랐으며 과자·빙과류·당류는 10.6%가 오르고 커피·차·코코아는 9.9% 상승했다.
이 같은 방식은 11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과 비슷하다. 2012년 당시 정부는 ‘물가안정 책임제’를 시행하면서 1급 공무원이 서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품목의 물가관리를 책임지도록 한 바 있다. 현재 농식품부는 지난 10월 중하순께부터 식품 업계, 외식 업계, 마트, 설탕 업체 등을 전방위로 만나면서 식품 물가 잡기에 애쓰고 있다. 보통 장관이나 차관의 동정 자료를 배포하지만, 이례적으로 국장급의 물가 관련 현장 방문까지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물가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일각에선 이 같은 물가관리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식품 업계를 중심으로 “정부가 물가 안정에 협조해달라면서 사실상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 또한 정부가 개별 품목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많은 국가가 물가 상승 시 가격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성과가 좋은 적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