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요소수 대란 대책 발표 “제2의 요소수 대란 없을 거라더니”
‘요소수 구매량’ 제한과 더불어 공공비축 물량도 확대 작년 10월 발의된 ‘공급망 기본법’은 2년째 국회 계류 중 2년 전 중국 수출 제한 초기에도 안이하게 판단했던 정부, '뒷북 대응' 논란도
최근 중국 정부가 요소 수출에 다시금 제동을 거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차량용 요소수 1회 구매 한도를 제한하는 등 관련 대책을 내놨다. 이 밖에도 물류비 지원 등을 통해 국내 업체가 제3국으로 요소 등을 수입하는 데 따른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한편 2021년 11월 ‘요소수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공급망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의된 ‘공급망 기본법’은 아직 국회 계류 중인 가운데, 요소수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나 지난 지금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소 수급·유통 현황 점검 및 수입처 다변화 등 대책 발표
6일 기획재정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1차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요소 수급·유통 현황을 점검하고, 동남아시아 중동 등의 수입처 다변화를 촉진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조달청은 현재 차량용 요소 공공비축 물량 6,000t을 이른 시일 내에 1만2,000t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내 요소수 생산업체와 협의하고 있으며 이르면 다음 주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국내 업체가 제3국으로 수입하는 데 따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책도 제시했다. 이달 14일 시행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등을 근거로 중국산보다 비싼 제3국에서 요소를 살 때 드는 비용을 지원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베트남,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가에서 생산된 요소는 운송비 등 문제로 도입 비용이 중국산보다 10∼20%가량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물류비 외에 추가 도입에 따른 재고 관리 부담, 제3국산 요소의 품질 관리 비용 등에 대한 지원 방안도 업계와 논의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류비와 관련, 중국산과 제3국산 간 도입비용 차액의 70%를 지원할 경우 차량용 요소에 한정하면 연 50억원, 산업용 요소 전체로는 260억원가량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 지원과 별도로 차주단체와 주유소 등에 1회 요소 구매수량 한도 설정 등 업계의 자율적인 노력도 요청할 계획이다. 현재도 각 주유소에선 요소수 1회 구매 시 3통 이상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정부는 수급 우려를 촉발한 당사국 중국과도 외교적 협의를 지속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고위당국자와의 면담도 추진키로 했다.
2년 전 요소수 사태 잠잠해지자 흐지부지된 ‘공급망 기본법’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신설해 공급망안정화 기금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급망 기본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 등을 위해서도 노력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해당 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공급망 기본법은 국가 전반의 공급망 관리를 체계화하는 법안으로, 지난 2021년 11월 요소수 부족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공급망 관련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의됐다. 정부 보증 채권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조성해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하는 수입 기업들을 지원하고, 대통령 소속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법안은 빠른 제정을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됐으나, 요소수 사태가 진정되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해졌고 결국 계류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단계 들어 진척이 없었던 데다, 공급망 컨트롤타워를 기재부가 맡는 것을 놓고 여야 간 이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법안이 계류 중인 사이 중국에 대한 요소 의존도는 오히려 늘어났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전체 수입액의 약 71%를 차지하던 중국산 요소는 올해 약 91%까지 상승하며 요소수 품귀 현상이 발생했던 지난 2021년 하반기보다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다. 산업부 및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기준 농업용의 중국 의존도는 17.4%에 그쳤지만, 차량용의 대중 의존도는 90.2%에 달했다. 농업·비료용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지만 차량·산업용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공급망 기본법이 제정될 경우 조성된 공급망 기금을 통해 장기간 저금리로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는 기업에 지원할 수 있지만, 현재 예산으론 지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결국 2년 전 요소수 사태와 같이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데 그 방식에 대해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미 9월부터 ‘제2의 요소수’ 사태 조짐, 정부 뭐 했나
일각에서는 요소수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나 지난 지금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뒤늦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급망 다변화와 같은 요소 수급 관련 대책이 이미 빠르게 추진됐어야 함에도, 최근 중국이 차량용 요소수 수출에 제동을 걸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지난 9월 해외 언론에선 중국 정부의 요소 수출 축소 소식이 쏟아진 바 있다. 이에 ‘제2의 요소수 대란’을 우려하는 여론이 형성됐지만, 우리 정부는 재고가 충분하다는 이유로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 단정 지으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요소 수출 제한 관련 발표를 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제한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이미 대책을 충분하게 세워놓고 현 상황을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제2의 요소수 대란은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일축했다.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불명확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L기업 정책연구소 관계자는 “현 정부에선 요소와 같이 중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공급망을 밀착 관리하는 핵심 부처가 없다. 요소 수급 대책 브리핑도 산업부와 기재부가 따로 열었다”며 “중국 외 국가로 수입처를 다변화할 때 정부가 물류비 등을 추가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산업부와 기재부가 미묘한 시각 차이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 비료 업계에선 내년 1분기까지 요소 수출이 금지되고, 내년 수출 물량이 올해보다 대폭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강구하는 모양새지만, 단기간 공급망 다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요소와 같은 희귀 자원의 경우 일반 품목과 달리 수입 물품 품질 테스트나 유통 허가 등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년 전 중국의 수출 제한 초기 당시 정부가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점이 요소수 품귀 현상으로 이어졌던 만큼, 또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