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안심소득’ 제도, 저소득층 근로소득 일부 증대 효과 불러왔지만 기존 제도 대체는 “글쎄”
현금받는다고 저소득층 근로 의욕 꺾이지 않고 되레 일부는 근로 소득↑ 소득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하후상박' 구조의 안심소득 제도 일각선 "안심소득 제도로 인해 중간 소득층 세수 부담 더욱 커질 것" 지적도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실시한 소득 보장 정책 실험인 ‘안심소득’의 중간조사 결과가 집계됐다. 결과에 따르면 안심소득을 받은 저소득층 가구 중 약 20%가 근로 소득의 증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서울시는 안심소득 제도가 기존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보다 우월한 복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일각에선 해당 제도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재원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에 대해선 정작 서울시가 입을 꾹 닫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복지병 없애는 안심소득?
서울시가 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23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을 열고 ‘안심소득 시범사업’의 1차 중간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안심소득이란 중위소득 85% 이하면서 보유 재산이 3억2,60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 가구를 대상으로 중위소득과 가구소득 간 차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소득이 아예 없는 1인 가구의 경우 기준 중위소득의 85%인 176만6,000원의 절반인 88만3,000원을 지원받게 된다.
서울시는 안심소득 제도의 시범사업 1단계로 중위소득 50% 이하에 해당하는 지원대상 484가구와 비교대상 1,039가구를 선정했다. 이에 작년 7월 안심소득을 통해 첫 급여가 지원됐고, 급여지급기간은 3년이었다. 그 결과 1단계 시범사업 대상 중 104가구(21.8%)가 지난달 기준으로 근로소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중 23가구(4.8)는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85%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안심소득 ‘졸업 대상’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이날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탈피율이 0.07%였던 점 비교하면 무려 70배에 해당한다”며 “안심소득을 통해 복지와 근로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소득이 적을수록 정부가 더 많이 지원하는 안심소득의 ‘하후상박(낮을수록 후하고 높을수록 박하다)’ 구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더는 지원하지 않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달리, 안심소득은 수급자가 지원받는 도중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수급 자격을 유지하면서 차등 지급이 되기 때문에 근로 의욕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지원금을 통한 재교육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복지 대상자들의 근로소득을 늘렸다는 설명이다.
이에 서울시는 안심소득이 노동 공급을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 내년엔 안심소득 지원 가구를 더 늘리고 2027년 6월까지 5년간 안심소득 시범사업 성과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안심소득은 실업, 폐업 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 가난하다고 증빙하지 않고 자동으로 안심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에 현행 복지제도와는 달리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안심 소득, 복지 효과 있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존재
국내 전문가들도 안심소득 복지 모델이 적어도 빈곤 완화, 취약계층 소득 보전, 소득 재분배에 있어선 일정 부분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오 시장의 의견과 궤를 같이 하는 분위기다. 서울시와 한국국제경제학회가 지난 11월 24일 공동 주최한 ‘안심소득 특별 세션’에서 이원진 한국사회보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빈곤 제거와 완화를 소득보장제도의 목표로 설정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기본소득제)와 똑같은 예산을 투입한다면, 안심소득이 복지 차원에서는 더 효과적”이라며 “기본소득제는 중산층의 비율을 유지하는데 유리할 수 있으나, 복지 정책에는 실업 감소 등 여러 목표도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유럽 핀란드의 소득 보장 실험인 ‘기본소득제’ 제도를 살펴보면, 안심소득이 기존 소득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이미 나온 바 있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교수는 같은 자리에서 “핀란드는 2017년 실업자 2,000명을 선발해 매월 560유로(약 80만원)를 2년간 무상 지급했는데, 고용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으나 스트레스 및 우울증 감소 등 주관적 웰빙은 크게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두 제도(안심소득, 기본소득제) 모두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을 지원하는 점에서 비슷한데, 여기에 안심소득은 보유한 행정 자료만으로도 대상자 선별이 가능한 만큼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도 효과가 있고, 하후상박 구조기 때문에 근로 의욕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서울시가 현재 실험 중인 안심소득에 대해서 보완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살펴본 시범사업 1단계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안심소득 지원을 받은 총 가구의 약 20%만이 근로소득을 높일 수 있었던 만큼, 무조건적으로 현금을 지원하기 이전에 수급자들이 어떤 특성이 있는지 심층 면접을 통해 파악하고, 이들이 근로 의욕을 고취할 수 있도록 취약계층 소득안정망과 사회적 위험을 고려한 지원체계를 제공함으로써 안심소득 제도의 실효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서울시
안심소득의 가장 결정적인 지적 사항은 해당 정책 집행을 위한 재원 마련에 대해선 서울시가 침묵하고 있다는 점에이다. 실제로 오 시장을 비롯한 안심소득 찬성론자들은 대부분의 재원을 현행 복지 제도인 생계급여, 주거급여, 자활급여,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등의 5개 제도 폐지를 통해 확보한다면서도 충당되지 못한 세수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안심소득 제도와 기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즉 서울시는 암묵적으로 ‘동일한 예산’을 투입했을 때라는 가정을 깔고 두 제도 중 안심소득 제도가 소득 재분배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애초에 정책 집행에 있어 안심소득 제도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비판론자들 사이에선 안심소득 제도가 결국 저소득층에 수혜를 집중한다는 명분 하에 중간층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민을 순부담자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나아가 안심소득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혜택은 없고 부담만 가중돼 ‘조세저항’의 바람만 거세질 것으로 예측도 나온다. 안심소득 제도가 추후 여타 복지 제도에 대한 재원을 늘리기 어렵게 만들어 저부담-저복지의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