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관련 각종 규제 완화” 정부 움직임에도 시장은 ‘시큰둥’
尹 “정비사업 절차 원점에서 재검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 전망
이중고 떠안은 조합원들은 ‘한숨만’
정부가 재개발과 재건축 등 정비사업과 관련한 각종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건축 단지의 노후도와 안전성 등을 점검하는 안전진단 완화, 재개발 주민 동의율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재건축 아파트를 소유한 집주인이나 투자자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끈다.
국토부, 1월 중 정비사업 규제 완화 방안 발표 예정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이를 통해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중랑구 중화2동 소규모주택정비사업(모아타운) 현장을 찾은 데 이어 다시 한번 정비사업 규제 완화의 의지를 다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토교통부는 즉각 움직임에 나섰다. 국토부가 마련 중인 정비사업 절차 합리화 및 규제 완화 방안에는 재건축 단지의 노후도를 점검하는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비롯해 재개발 추진을 위해 필요한 최소 주민 동의율을 낮추는 방안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분당과 일산, 평촌 등 개발 30년이 넘은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국회 문턱을 넘어오는 4월 시행을 앞뒀다. 현행 법률 체계에서는 신속하고 광역적인 정비가 어렵고, 이주수요의 체계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해당 법안은 택지조성사업 완료 후 20년이 경과한 100만㎡ 이상 택지를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해 도시 단위 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각종 규제가 완화하면 사업에 속도가 붙어 수익성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시정비사업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 시공사들은 수익성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정비사업의 최종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정비사업 조합원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 시내 한 재건축 단지 조합원은 “윤 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당장이라도 재건축이 급물살을 탈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던 걸로 기억한다”며 “그만큼 기대가 컸는데 여전히 사업 속도는 더디고, 부담만 늘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새 아파트 분양을 위해 청약을 노리는 게 낫겠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처럼 조합원들이 정부의 움직임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으로는 사업 추진에 투입되는 각종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점이 꼽힌다. 관련 규제 완화가 더 나은 사업 환경 조성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금 조달에 대한 부담 완화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로 마찰을 빚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 추진이 원활하지 않은 단지가 점점 늘고 있어 조합원들이 자금을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사업 성패가 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솟는 공사비에 수억원대 재초환까지 이중고 떠안은 조합원들
2010년대 초반까지의 정비사업은 정부가 입주민들의 이주비용을 지원하고 시공을 맡은 건설회사들이 막대한 개발이익을 기대하며 초기 공사비용을 담당하는 경우가 주를 이뤘다. 서울 강남구 잠원동 일대 대림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서초잠원을 비롯해 논현동 e-편한세상경복, 반포동 e-편한세상반포한신 등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2020년대부터는 공사비가 급상승하며 이같은 사례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건설공사비 지수(2015년=100)는 153.37로 3년 전인 2020년 11월(120.2)과 비교해 27.6% 치솟았다. 건설공사비 지수는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각종 자원의 직접 공사비 가격 변동을 나타낸다. 공사비가 치솟으며 조합원들의 부담도 커졌다. 현재 재건축이 진행 중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조합원이 재건축으로 전용 84㎡를 분양받기 위해서 내야 하는 분담금이 최대 5억원으로 추산돼 주목받기도 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도 조합원들의 부담을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말 재초환 부담금 면제 구간을 8,000만원까지 늘리는 내용의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긴 했지만,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담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전국재건축정비사업 조합연대에 따르면 경기 수원시 영통2구역 재건축 단지는 가구당 2억9,500만원의 재초환 부담금이 책정됐고, 대전 용문동 재건축 단지는 2억7,600만원에 달하는 등 서울 중심가를 제외한 전국 재건축 단지의 재초환 부담금도 최소 ‘억’ 단위를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감 효과 미미, 현금청산 고려하는 조합원 늘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는 조합원들이 분양 및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포착된다. 부산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남천2구역삼익비치타운의 재건축 분양가는 84㎡ 기준 17억935만원으로 추산됐다. 기존에 84㎡를 보유한 조합원이 동일 면적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공사 분담금으로 6억8,195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여기에 재초환 부담금까지 더해지자 많은 조합원이 현금청산 절차를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한 재건축 사업 추진이 거주 불안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분담금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며 “5년 전에 분양한 근처 재건축 아파트 분양가가 3.3㎡당 1,775만원이었는데 2배 넘게 뛰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재초환 완화를 추진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공사비 부담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