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간 LTV 정보 공유는 암묵적 ‘담합’에 해당”, 공정위 4대 은행 제재 절차 돌입
공정위 “담보 물건 정보 공유로 부당이득 수취” 지적 혐의 인정 시 수천억원대 과징금 책정 전망 은행 “리스크 관리 차원, 담합은 과도한 해석” 항변
KB국민·우리·신한·하나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이 담보대출을 실행하며 거래 조건을 담합한 정황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이들 은행은 앞서 제기된 두 차례의 의혹에서 모두 무혐의를 받은 바 있지만, 공정위는 ‘암묵적 담합’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둔 채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서는 총선이 다가오며 정부의 은행 압박이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4대 시중은행, 소비자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 방해했나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날 4대 시중은행의 담합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이와 관련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해당 심사보고서에는 조사 대상 은행들이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담보대출 업무를 실행하며 각종 거래조건을 담합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는 각종 행정 처분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검찰의 공소장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서 4대 시중은행이 물건별 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에 필요한 세부정보들을 공유하면서 소비자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이 설정되지 않도록 담합한 점을 지적했다고 전해진다. 공정위는 기존에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추가 관계자 조사를 진행한 후 시장경쟁 질서를 훼손하는 담보대출 관련 담합 행위가 수년간 지속됐다고 판단, 이에 대한 제재 의견을 담아 심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심사보고서에는 4대 은행에 대한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의견도 포함됐다. 부당 이득과 관련한 구체적인 과징금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은행들이 담보대출로 벌어들인 이익이 상당한 만큼 혐의 인정 시에는 최소 수천억원의 과징금이 책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은행권 “총선 다가오며 은행 압박 수위 높아져” 항변
은행권에서는 LTV를 비롯한 담보대출 관련 정보공유가 실제 소비자의 거래조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반론이 힘을 얻고 있다. LTV 공유는 담보물건에 대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사례를 다각도로 분석해 합리적인 조건을 도출하기 위한 업무 과정일 뿐, 최종 대출 조건이나 금리 수준 등은 각사의 산출방식과 운용방침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담합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시장금리와 연동된 기준 금리는 물론 은행들이 자체 적용하는 가산금리 역시 담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자금 상황과 대출 전략이 달라 금리 담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라며 “가산금리는 자금조달 상황이나 목표 대출 총량 등 각 은행의 사정에 맞춰 조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LTV의 경우 금융감독원이 지역별로 주택담보 리스크 관리 기준을 통제하는데, 단순 참고를 위한 정보 공유를 담합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라고 짚으며 “이번 정부 내내 은행 압박이 계속되고 있는데, 총선이 다가오면서 그 수위도 높아지는 것 같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중은행의 담합 행위 관련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온 만큼 이번 공정위의 조사는 그에 대한 연장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공정위는 2008년 KB국민·신한은행 등 17개 금융기관이 지로 수수료 인상을 담합했다고 판단해 총 44억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당시 은행들은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간 해당 사안은 공정위가 패소하며 과징금이 취소됐다. 이후 2012년에는 4대 은행과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 혐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공정위는 약 4년에 걸쳐 조사를 전개했지만, 끝내 빈손으로 심의 절차를 종료했다.
이번 심사보고서는 지난해 2월부터 전개된 시중은행들의 대출 금리 및 수수료 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에 따른 결과로, 조사 초반 제기된 대출금리 담합 의혹은 이번 제재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울러 현장 조사 대상에 포함됐던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도 최종 제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