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리모델링 vs 재건축’ 갈등, “부동산대책 여파로만 보기엔 무리”

160X600_GIAI_AIDSNote
신설 재건축추진위, 리모델링 조합 해산 나서
‘본전 생각’에 해산 미루는 리모델링파
건축물 노후화 따라 다양해지는 선택지
정비_폴리시_20240124

재건축 및 재개발 절차 축소 등 정비사업 활성화 방안을 담은 정부의 1·10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일부 구축아파트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부분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이들 아파트는 재건축 방식으로 선회하자는 조합원과 기존 방식을 고수하자는 조합원들 사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사업 추진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다.

하나의 사업지에서 두 조합 공존 불가

2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재건축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최근 강남구청과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위한 논의에 돌입했다. 일부 소유주가 재건축으로 정비 방식을 바꾸는 데 필요한 주민 동의를 위해 리모델링 조합에 조합원 명부 공개를 요청했지만, 리모델링 조합 측에서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해당 단지는 별도 실시한 재건축 선회 방안 찬반 설문조사에서 201가구 중 193가구가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건축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강남구청에 조합원 명부를 요청하고 리모델링 조합 해산 총회를 강행해 올 상반기 내 재건축추진위원회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모델링 조합 측에서는 명부 비공개 등은 조합원이 원치 않은 데 따른 조처라고 반박했다. 민감한 개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해당 조합원의 동의 없이 이를 외부에 공개할 경우 정보통신망법 등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지난 10일 발표됐지만, 실제 법안 통과나 구체적인 방안 등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짚으며 “상황을 지켜보며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자는 것”이라며 조합을 해산할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1992년 준공돼 2008년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대치2단지는 2022년 9월 강남구청으로부터 ‘수직증축 부적합’ 판정을 받으며 난관에 봉착한 바 있다. 하지만 같은 해 재건축 연한(준공 후 30년)에 도달하며 재건축으로 정비사업 방식을 바꾸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같은 목소리는 이달 10일 정부가 재건축 패스트트랙 등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후 한층 힘을 얻고 있다.

성동구 응봉대림1차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2007년 리모델링 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이 단지 또한 기존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재건축추진위원회가 따로 설립됐다. 리모델링과 재건축은 각각 ‘건축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를 두고 있어 조합과 추진위원회의 공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사업 구역에서 둘 이상의 정비 방식을 택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해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존에 사업을 추진해 오던 리모델링 조합 측에서는 지난 16년간 투입한 비용을 재건축추진위원회 측에서 보전해 준다면 조합을 해산하고 재건축 추진에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성동구청은 “현재 기존 조합과 재건축추진위원회의 합의를 권유하고 있다”며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단점 극명, 선택의 폭 넓어지며 갈등 불가피

리모델링과 재건축 사이에서 벌어지는 주민들의 갈등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두 정비 방식 모두 극명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어 소유주의 가치 판단 기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리모델링은 대상 건축물의 노후화를 억제하고 기능적 성능을 향상하기 위한 정비 사업으로, 주거환경 개선과 신규주택 공급을 위해 추진되는 재건축과 그 목적부터 다르다.

다만 노후화한 건축물을 대수선 또는 철거 후 신축해 그 가치를 높이고, 세대 증설과 일반 분양을 통해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리모델링은 세대 증설에 제한이 많은 대신 준공 후 15년이 지나면 사업에 착수할 수 있어 공사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반면, 재건축은 세대 증설에 제한을 덜 받는 대신 준공 후 30년이 지나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공사 기간이 길다는 점 정도의 차이다. 두 방식 모두 투입되는 공사비나 수익률 등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둘러싼 소유주들의 갈등이 재건축 활성화에 방점을 둔 정부의 부동산대책 탓으로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준공 후 15년이 지나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들이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재건축 연한에 도달하자,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다양한 의견이 쏟아질 뿐이라는 설명이다. 김학겸 한국리모델링협회 회장은 “국내 주택건축물의 노후도가 47%에 육박하는 현시점에 재건축으로만 이를 정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짚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건축 또한 여러 방면으로 진화하고 있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