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발생하면 문 닫아야”,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이후 산업 현장 ‘시름’
법 확대 적용 후 일주일간 사망 사고 3건 노동계는 적용 유예 반대 목소리 교육 등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턱없이 부족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지난달 27일부터 확대 시행된 가운데, 시행 직후 일주일간 전국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3건의 사망 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계에서는 무리한 법률 시행이 중소·영세기업의 인력 수급 악화 등 각종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소·영세 업체들 “외부 기관 교육 있어도 실질적 도움 안 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오전 9시께 부산 기장군에 있는 폐알루미늄 수거·처리업체에서 집게차를 이용해 폐기물 하역 작업을 하던 중 노동자 A씨가 집게차 회전판과 화물 적재함 사이에 끼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경찰은 집게차 운전자가 A씨를 보지 못하고 집게차를 작동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A씨는 사고 발생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같은 날 강원도 평창군에서는 축사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던 40대 중국 국적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고, 이달 1일에는 경기도 포천시의 한 파이프 제조 공장에서 50대 근로자가 800kg 무게의 철제 코일에 깔려 사망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사고 직후 부산 기장군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 자체가 협소하고 위험에 보이는데도 위험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전형적인 재래형 사고”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이들 공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사고 경위 및 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고 나섰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정부와 여당은 중소기업계의 강한 요구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확대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여야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예정대로 지난 27일부터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됐다.
사업주들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라는 입장이다. 법 시행 전 외부 기관을 통해 중대재해법 관련 교육이 진행된 바 있지만,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 등에 대한 직접적 예시와 대응책은 제시해 주지 않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중소·영세 업체가 주를 이루는 인쇄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인쇄 공정은 벤젠이나 톨루엔 등 화학약품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장에서 산업용 방독면을 구비해도 근로자들이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에 이를 일일이 감독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명 남짓한 근로자로 공장을 운영 중이라고 밝힌 한 인쇄 업체 관계자는 “공장 환기 시설을 전부 뜯어고쳐야 하는데, 당장 쏟아부을 여윳돈이 있는 것도 아니라 막막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시설 및 비용의 문제 외에 인력 수급 악화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상당수의 영세기업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사업을 유지 중인데, 이들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안전·보건 교육을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23명의 근로자를 고용 중이라는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주어진 업무 외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내국인 근로자보다 심한 편”이라며 “제조업은 인력 구하기가 안 그래도 힘든데, 외국인 근로자들까지 나가 버릴까 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리 대상 240% 증가할 때 관리 인력은 15% 증원 그쳐
정부와 여당은 산업 현장의 더 큰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판단,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를 위해 재차 야당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달 1일 국회 본청 앞에서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정부와 국회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적용 유예 연장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한국노총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를 반노동 세력으로 규정하고 심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오는 4월로 예정된 총선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결국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재대해법 적용 유예는 이날 야당이 반대의 뜻을 밝히며 무산됐다.
그러는 사이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처벌의 대상만 늘었을 뿐, 재해 예방을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는 전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초 정부는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으로 관련 수사 대상이 약 2.4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는데, 이를 관리하기 위한 노동부 내 인력은 100명에서 115명으로 불과 15명 증원에 그쳤다.
경기 시흥시의 한 금형·주형 제조업체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소중히 하자는 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은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황”이라고 짚으며 “근로자 열 명이 안 되는 사업장도 많은데, 이런 규모에서 안전 관리자까지 두면서 지키기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고 발생이 곧 폐업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