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피바다’에 낚싯대 던졌다” 전쟁 딛고 성장하는 미국
전쟁 이후 오히려 수출 늘었다? 미국 LNG·무기 수출 급성장 일부 리스크 떠안아도 성장세는 뚜렷, 유럽발 '공포 수요' 영향 끔찍한 인명 피해에도 중재는 지지부진, 11월 대선이 상황 바꿀까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경제 성장의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쟁 이후 미국의 방위·에너지 등 전쟁 관련 분야 수출액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글로벌 경기 침체 기조 속 ‘나 홀로 성장’을 이어가는 가운데, 곳곳에서는 미국이 전쟁을 경제적 이익을 위한 일종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무기도 에너지도 잘 팔린다, 미국의 성장세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 방위업체에 무기·군수품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잠재적 군사 충돌에 대비해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유럽 동맹국의 무기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ed)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국방·우주산업 생산은 128.8로 전쟁 발발 전 (109.6, 2017년=100) 대비 17.5% 증가했다.
지난달 미국 국무부는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무기 거래 체결 규모가 800억 달러(약 106조7,600억원) 이상이며, 이 중 유럽 동맹국과의 거래 규모는 자그마치 500억 달러(약 66조7,25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성에 따르면 독일은 CH-47 치누크 헬기를 구입하며 약 85억 달러(약 11조3,432억원), 체코는 F-35 전투기와 군수품을 구입하며 약 56억 달러를 납부했다. 폴란드는 AH-64 아파치 헬기, 고기동성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하이마스), M1A1 에이브람스 전차 등을 구입하는 데 무려 300억 달러를 썼다.
에너지 수출 역시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한 유럽이 대체재로 미국산 천연가스를 선택하면서다. 실제 미국 LNG 수출량 중 약 3분의 2는 유럽으로 유입되고 있다. 유럽의 에너지 수요 증가에 힘입어 미국은 지난해 카타르와 호주를 추월하며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 자리에 올랐다. 2030년까지 LNG 수출을 두 배가량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수립, 1,000억 달러(약 133조원) 규모의 5개 신규 LNG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도 했다. 해당 LNG 프로젝트는 모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등장했다.
‘전쟁 수익’이 야기한 혼란
단 전쟁 관련 수출 증가가 미국에 무조건 ‘호조’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유럽 시장 수요를 노린 LNG 수출 증가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인 환경 단체가 화석연료 생산 증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자, 바이든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로의 LNG 수출 프로젝트를 대거 보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핵심 지지층의 불만을 잠재우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결집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LNG 프로젝트 중단이 유력한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프로젝트 중단에 대한 반감을 표하고 있다. 지난달 유세 과정에서 “나는 집권 첫날 (바이든 대통령이 중지한) 새로운 (LNG) 프로젝트를 승인할 것”이라고 발언, 직접 정치적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출 증가가 기후 위기와 화석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정쟁 소재’로 전락, 시장의 피로감을 더하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중심으로 한 방위업계의 움직임 역시 문제로 부상했다. 바이든 행정부 관료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이 미국 방위산업의 이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총지원액 950억 달러(약 126조원) 중 40%에 달하는 386억 달러가 자국 방산업체에 다시 유입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어지는 해외 군사 원조가 미국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규모 지원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재정 적자가 발생할 경우, 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가 발행되며 국채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전쟁 인명 피해 방관했다?
미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발 역시 커지고 있다. 미국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익만을 취하며 전쟁 장기화를 방관했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개전 후 사망한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자그마치 1만 명 이상이다(지난해 11월 기준). 현시점 민간인 사망자 규모를 명확히 파악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만큼, 실제 사망자 수는 공식 집계치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직접적인 전투 참여를 거부하고 러시아와의 외교 협상을 차단하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이후 전쟁이 장기화하며 유럽 전반은 자연스럽게 잠재적 군사 충돌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고,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한 에너지 부족 사태에 시달렸다. 이때 미국은 ‘타이밍 좋게’ 유럽 각국에 자국산 무기를 판매하고, 에너지 수출 수익을 올리며 배를 불렸다. 전쟁 장기화가 오히려 미국에는 호재였던 셈이다.
다만 미국의 이 같은 ‘어부지리’ 기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급변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미국 공화당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예산 편성을 막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리는 더 이상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기대나 아무 조건 없이 (우크라이나에) 돈을 줘서는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직접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차후 공화당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기나긴 전쟁이 마무리되며 러시아가 승기를 쥘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