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과일 파이 넓히는 정부, ‘관세 인하’ 카드에 농민들은 ‘울상’
치솟는 과일값에 물가 부담 '급증', 정부 "물가관리 나설 것" 주요 카드는 '관세 인하', "필요시 추가 할당관세도 적용" 정부 의지에 '난감'한 농민들, "농산물이 물가 정책 수단이냐"
과일값과 국제 유가 상승이 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수입과일에 대한 관세 인하 물량 2만t을 추가하기로 했다. 대형마트가 과일 할당관세 물량을 통해 직수입할 수 있도록 하고 경유와 압축천연가스(CNG) 유가연동보조금을 4월까지 연장하겠단 계획도 발표했다. 전반적인 관리를 통해 물가 안정성을 높이겠단 취지지만, 이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입장은 난처하기만 하다. 관세를 낮춰 수입과일 비중을 높이는 만큼 국산 과일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가관리 나선 정부, 관세 인하 지속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후 첫 경제현안 관계장관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우선 정부는 내달 말까지 관세 인하가 적용되는 과일 물량을 추가 배정하고 대형마트도 배정 물량을 가져올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수입업자와 식품제조·가공업자, 식자재업자 등만 직수입이 가능하도록 돼 있지만, 앞으로는 대형마트도 신청할 경우에는 직수입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대형마트가 과일을 직수입하게 되면 중간 유통비용이 절감돼 소비자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할당관세 물량 직수입 관련 규정이 지금은 모호하게 돼 있는데 이를 명확하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달에는 관세 인하가 적용됐던 오렌지 중에서도 남은 물량 527t을 모두 들여올 예정이다. 정부는 필요시 과일에 대한 추가 할당관세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오는 26일부터 2주 동안은 청양고추·오이·애호박에 1kg당 1,300원의 출하장려금을 신규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기름값 부담도 완화한다. 당초 이번 달 종료 예정이던 유류세 인하 조치와 경유·CNG 유가연동보조금은 4월까지 연장한다. 정부는 내달까지 ‘범정부 석유시장점검단’도 가동한다. 국제유가 상승분 이상의 과도한 가격 인상이 없는지 주유소 등 현장을 점검하겠단 취지다. 공공요금은 동결 원칙을 재확인했다. 원가 절감, 자구 노력 등으로 인상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별 물가 안정 노력에 따라 재정을 차등 배분하는 인센티브도 이어간다.
농민들은 ‘볼멘소리’, “이게 말이 되나”
이 같은 정책 아래 잠재된 정부 기조는 물가 조기 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앞서 지난 1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해 농축수산물 할인 등 물가 대응에 10조원이 넘는 예산을 풀고 과일 가격 안정을 위해 역대 최대 수준인 21종 관세 면제·인하에 나서겠단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3.6%였던 물가상승률을 올 상반기 내 2%대로 안착시키겠단 목표를 이른 시일 내 달성하겠단 의지가 돋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더라도 상반기까지는 비교적 높은 물가 수준이 이어지며 체감경기 회복을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며 “관세 인하 등으로 물가 안정이 실현되면 서민 생활에도 확연한 봄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 또한 “2%대 물가가 조기에 안착해 국민이 물가 안정을 체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범부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의 관세 정책에 농민들은 볼멘소리를 쏟아낸다. 할당관세 적용은 단기간엔 농산물 가격 하락을 기대해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내 농산물의 경쟁력을 낮춰 수입 농산물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일 수 있단 것이다. 과수 재배 농민들은 “관세를 낮춰 수입과일 가격이 떨어진 걸 농식품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어이가 없다”며 “관세를 0%로 없애 수입했으니 가격이 그만큼 하락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이어 “국산 과일 부족량을 수입으로 채운단 농식품부의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며 “관세를 낮춰 수입과일을 지속적으로 수입하다 보면 소비자 입맛 변화가 가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과일 시장 수급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농산물 관세 인하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농산물을 물가 정책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본연의 업무보다 소비자 물가 관리에 더 혈안이 돼 있는 농식품부를 관통하는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