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콘텐츠 사용료 산정 방안’ 마련에 박차, “결국 OTT 배만 불려주는 꼴”
대통령실 '유료방송 대가 산정 제도 개선' 주문 20년째 이어진 사업자 간 해묵은 갈등 해소 목적 한국방송협회 "콘텐츠 업계 리스크 전가 행위" 비판
정부가 유료방송 업계의 오랜 숙원인 콘텐츠 사용료 산정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2021년부터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마련을 추진해 왔으나, 사업자 간의 갈등으로 아직까지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가 산정 가이드라인 수립에 속도가 붙으면서 콘텐츠 사용료 계약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콘텐츠·케이블 업계에서는 일방적인 희생 강요라며 비판이 거세다.
‘콘텐츠 사용료 가이드라인’ 마련되나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통령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에 ‘콘텐츠 사용료 대가산정 가이드라인’에 대해 보고받고 유료방송 대가산정 제도 개선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방통위는 방송업계 의견 수렴에 나설 방침이다. 이는 프로그램 사용료 재원은 한정돼 있으나 합리적 산정 제도가 없어 사업자 간 해묵은 갈등이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실제로 지상파에는 재송신료를, PP(채널사용사업자)에는 콘텐츠 사용료를 지급하는데, 사용료 산정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 △시청률 △콘텐츠 기여도 △방송의 다양성 △채널 특성 등 모두에 공정하게 적용할 수 있는 평가지표가 없다보니 사업자들은 매년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앞서 지난해 9월 과기정통부는 IPTV 3사의 7년 재허가 연장을 승인하면서 ‘유료방송 시장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생태계를 확립하기 위한 콘텐츠 사용료 산정기준 및 절차를 마련하라’는 부과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지난달 19일 ‘IPTV 사업자의 콘텐츠 사용료 산정 방안’이 공개됐다. 콘텐츠 사업자를 ‘일반 사업자’와 ‘보호 대상 사업자’로 구분해 별도의 산정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로, 기존에는 한정된 재원 속 협상력이 큰 사업자가 유리했으나 산정 기준을 수립해 객관적으로 지급한다는 목표다.
대가 산정 가이드라인 수립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유료방송사와 지상파방송사 간 콘텐츠 사용료 계약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의 CPS는 정액제 방식, 유료방송사와 PP 간 콘텐츠 사용료는 정률제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과기정통부가 마련한 ‘콘텐츠 사용료 산정 방안’에는 지상파가 포함됐다. 지상파 콘텐츠 대가 산정에 대한 기본틀이 정률제로 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OTT·유튜브 영향력만 키워줄 것
하지만 콘텐츠 업계에서는 IPTV 사업자의 콘텐츠 사용료 산정 방안이 일방적으로 리스크를 전가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상파 방송사들로 이뤄진 한국방송협회는 이달 성명서를 내고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상당수의 콘텐츠 사업자들의 강력한 반대 입장을 묵살한 채 IPTV사업자가 유료방송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향후 전체 콘텐츠 수급 비용을 줄여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일방적인 시도에 나서고 있다”며 해당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핵심 문제로 지적한 것은 ‘배분대상 금액 산정 방식’이다. 협회는 IPTV 사업자가 콘텐츠 확보에 필요한 전체 수급비용의 자체 상한선을 정하고 ‘기본채널수신료매출’, ‘홈쇼핑송출수수료 매출’ 등의 ‘증감률’을 산정 기준으로 삼았다며 “향후 명백하게 위축될 것이 예상되는 증감률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향후 IPTV의 콘텐츠 라인업과 품질은 동일 수준으로 유지하되 자신들의 영업 실적에 연동해 전체적인 콘텐츠 투입비용을 줄여가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케이블사업자나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경우 통상 관련 매출의 60~70%가량이 콘텐츠 대가로 지불되고 있는 반면, 국내 IPTV 사업자 3사의 기본채널사용료 지급 비율은 2022년 기준 28.1%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런 현실에서 콘텐츠 수급 비용을 현행보다 더욱 줄여가겠다는 시도는 결국 방송 콘텐츠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파괴하고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케이블TV 업계도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와 지상파 계열 PP의 욕심이 과하다는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케이블TV에 프로그램 사용료를 높게 받아 이를 재원으로 콘텐츠를 제작한 다음 OTT에만 공급해 추가 수익을 올린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티빙의 ‘술꾼도시여자들’, 웨이브의 ‘약한 영웅’, 넷플릭스의 ‘피지컬100’ 등은 OTT 독점 공급으로 제작된 탓에 케이블TV에선 볼 수 없었고, MBC의 ‘트레이서’ 등은 지상파 실시간 채널과 OTT 동시 편성으로 OTT의 수익만 올려줬다. 콘텐츠 사용료 산정 방안이 결국 OTT와 유튜브의 영향력만 극대화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