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거품 빠졌다, 저 PBR주 줄줄이 곤두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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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 없는 밸류업 프로그램, 저 PBR주 열풍 마무리 조짐
일본 대비 혜택 충분하다는 정부, 실효성 부족하다는 증시
무작정 저 PBR주 매수한 개인 투자자, 손실 확대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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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베일을 벗은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강제성 없이 기업의 ‘자율적 노력’을 중시하는 방향을 채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저 PBR(Price to Book Ratio, 주가순자산비율)주 중심으로 달아올랐던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순식간에 식어버린 것이다. 지난달부터 코스피 상승세를 견인했던 밸류업 프로그램이 사실상 화력을 잃은 가운데,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판 삼아 주가 상승을 기록한 종목들은 줄줄이 추락하고 있다.

증시에 실망 안긴 밸류업 프로그램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주가 부양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실렸다. 밸류업 프로그램 수혜가 예상되는 저 PBR 종목에는 대규모 매수 수요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26일 정부가 공개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에는 △기업가치 제고 공시 가이드라인 제시 △기업 밸류업 표창 등 혜택 부여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관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영 등 미온적인 대책만이 담겨 있었다.

시장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상법 개정 로드맵, 자사주 소각 관련 법인세 혜택,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증시가 기대했던 구체적이고 강제성 있는 대책이 줄줄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지자, 일시적으로 주가가 급등했던 저 PBR주들도 눈에 띄는 하락세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은 26일 △보험(-3.8%) △금융(-3.3%) △증권(-2.9%) 등 대표적인 저 PBR 종목인 금융주가 줄줄이 미끄러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외로도 LG(-7.49%)·SK(-6.76%)와 같은 지주사, 현대차(-2%)와 기아(-3%) 등 저 PBR주로 주목받은 종목 대다수가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시장의 기대와 실제 정부 대책이 크게 어긋나간 만큼, 한동안 저 PBR주를 중심으로 ‘후폭풍’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보다 혜택 많다” 정부의 반박

투자자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자, 정부는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의 인센티브가 밸류업 ‘원조’ 일본보다 크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브리핑에서 시장 기대보다 인센티브가 약하고, 페널티가 없어 강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뒤 “(페널티가 없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는 본인(기업)이 진정하게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일본의 ‘밸류업 프로그램’에는 인센티브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도 강조했다.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에는 일본과 유사한 기업 밸류업 지수·ETF(상장지수펀드) 개발은 물론,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세제 지원 △전담 체계 구축 △홍보 등 보다 다양한 지원책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 부위원장은 “밸류업 지원방안 발표로 1,000포인트씩 주가가 한 번 크게 상승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라며 “저희가 원하는 그림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매년, 5~10년 계속 오르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장기적인 증시 성장을 위해 급진적·강제적인 대책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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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명에도 불구, 투자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기업 실적 제고, 규제 환경 개선 등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했다는 점은 사실상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기업의 혁신·가치 제고를 유도할 만한 ‘생태계 조성 방안’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주식 양도세 기준 완화와 같은 ‘총선용’ 증시 단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혹평마저 흘러나온다.

밀려오는 ‘밸류트랩’의 후폭풍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감이 증시를 집어삼킨 가운데, 전문가들은 ‘밸류트랩’의 후폭풍이 한층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밸류트랩이란 투자자가 PER(주가수익비율), PCF(주가현금흐름비율), PBR 등이 낮은 종목을 무작정 저평가됐다고 오인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소식을 접한 일부 투자자들은 PBR이 낮은 종목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이며 무리한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문제는 기업의 PBR이 낮아지는 원인이 단순 ‘저평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대표적인 저 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인 보험·증권주의 경우, 소극적인 주주 환원 태도로 인해 PBR이 낮은 경우가 많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782곳(12월 결산 법인 기준, 외국주권법인 등 제외) 중 최근 3개년 회계연도(2020~2022년) 내내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기업은 190개사(24.2%)에 육박했다.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이 모두 흑자였음에도 배당을 하지 않은 기업도 42개사에 달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보험사·증권사 등이었다. 꾸준한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불구, 수익을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현금을 축적하며 PBR이 낮아진 사례인 셈이다.

기업 역량 자체가 부족해 PBR이 미끄러지는 경우도 있다. 저 PBR주 유행 당시 전문가들이 단순 PBR보다 ROE(자기자본이익률)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은 이유다. ROE는 기업이 자본 대비 얼마나 이익을 창출하는지에 대한 지표로, 기업의 수익성과 주주 환원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미래 ROE를 높이기 위해서는 순이익을 늘리거나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등으로 자기자본을 줄여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ROE는 미래 수익성을 판단할 수 있는 일종의 척도인 셈이다. 반짝 상승세를 보였던 저 PBR주 주가가 줄줄이 미끄러지는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충분한 분석 없이 투자를 단행하며 ‘밸류트랩’에 걸린 투자자들이 특히 큰 손실을 볼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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