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수상한 해외 송금에 시중은행들에는 중징계, 재벌들의 거액 비자금 해외 유출 정황에는 유야무야
16조원 규모의 대규모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례 적발, 5대 시중은행 중징계 내려져 예년 추징세액인 4조원 대비 크다는 지적 속, 과거 세무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도 수상한 해외 송금으로 실제 편익을 얻은 경우 다수는 국내 대기업 및 고액 자산가들 해외에서는 대기업 비자금 문건 밝혀지지만 국내 보도 없이 은행 관계자들만 처벌에 그친다는 비판도
지난 2022년 상반기 중 1,000억달러 규모의 외화가 유출된 것을 계기로 이어진 해외 송금 관련 조사가 이달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시중은행 임직원 중징계로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해외 송금으로 편익을 얻었을 고액 자산가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으나, 은행권 관계자들은 실제 해외 송금으로 이득을 본 고액 자산가들이 아니라 일선 은행 담당자들만 처벌을 받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7일 국민·우리·신한·하나·NH농협 5개 시중은행에 외국환거래법 위반을 근거로 업무 일부정지, 과태료, 최대 3억원 이상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거주자가 해당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자와 지급·수령을 하려는 경우 한국은행 총재에게 신고해야 한다. 또 은행장은 건당 5000달러를 초과하는 지급에는 신고 대상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일선 은행 관계자들은 증빙서류를 초과한 거래대금을 지급하거나, 심지어 허위거래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서는 해외 송금을 하는 자산가들이 대기업의 주요 관계자들인 탓에 은행원들만 처벌을 받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는 불만이다.
수상한 해외 송금, 이득 본 관계자들은 고액자산가, 처벌은 은행원들만
금감원은 지난 2022년 11월, 외화자금을 빼돌리고 국부유출을 고착화하는 역외탈세자 53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밝혀진 불법 해외 송금 유형은 ▲법인의 외화자금 유출 및 사적 적용 (24명),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인 무형자산 부당 이전 (16명), ▲다국적기업의 국내이익 편법 반출 (13명)이었다.
특히 실체없는 외주거래(Off-shoring)를 통해 가공 계상된 매출액을 만들어내 법인 자금을 유출하거나, 국외 매출을 상습누락하는 경우가 다수 적발됐다. 이어 내국 법인의 상표권, 특허, 가상자산 같은 무형자산을 대기업 대표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해외 기업에 돌린 다음, 국내 법인이 라이선스 사용료를 내는 등의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편취한 사례도 적발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규모 자금 유출이 가능한 국내 주요 대기업이 깊숙하게 관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급융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7월 감사에서 무려 122억6천만 달러 (약 16조원) 규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적발된 것은 국세청의 예년 세무조사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지난 2022년의 경우 대기업 및 고액자산가들 중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받은 사례가 총 1,077건, 합계 부과세액은 1조7,460억원이었다. 일반 사업자, 역외 탈세 등을 모두 고려해도 추징 세액 규모가 4조원 남짓에 지나지 않았던 탓에 그간 금융당국의 조사 부실이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에도 대기업 혹은 사주 일가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 거래를 통해 기업자금을 유출하거나, 변칙 자본거래, 차명재산을 이용해 세금 없이 부를 편법으로 대물림하는 등 편법·변칙 탈세 사실이 종종 드러났으나, 공식적으로 특정 대기업이 지칭되지는 않았다.
해외 비자금 관련 건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국내 대기업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경우 2016년 국제탐소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파나마 페이퍼스와 2020년 미국 금융감시당국에서 유출된 자금세탁 첩보 자료를 통해 해외법인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확인된 바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에서는 이재용 회장의 스위스 계좌 존재 사실이 알려졌으나, 국내에서는 국제공조수사의 어려움을 들어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미국 감시당국의 러시아로 흘러 들어간 비자금 추적 문건 중 2013년 돈세탁 혐의로 폐쇄된 리투아니아 유키오 은행(Ūkio bankas)의 입출금 내역에는 시티은행 영국 런던 지점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페이퍼컴퍼니, 유령회사들에서 최대 수천만 달러의 자금이 송금됐던 사례가 밝혀지기도 했다.
출처가 미국 연방정부의 대외비 자료인데다 반복적인 송금이 이어졌던 만큼, 미국 정부에서도 조직적으로 관리되는 계좌로 판단하고 관리했었을 것이라는 것이 역외 계좌 설립 경험이 많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자칫 비자금 관리를 해준 사례가 밝혀질 경우 은행들이 막대한 벌금을 맞게되는만큼, 일반적으로 역외에서 계좌를 설립하고 송금이 진행될 경우 법인의 실체에 대한 증명, 영업 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각종 증명서 등의 복잡한 추가 서류를 요구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건다고 답했다. 실제로 한국의 IBK기업은행은 돈세탁방지시스템을 허술하게 운영했다는 이유로 지난 2020년 4월에 미국 당국으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벌금을 낸 사례도 있다.
은행을 통한 외환 거래가 어려운 경우에는 환전소 이름으로 운영되는 자금 세탁 전문 기관을 이용하는 경우도 다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16년 미국 당국에 적발된 중동의 돈세탁 전문가 레자 자랍의 경우 총액 20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국제적으로 세탁해준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물산과 더불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종합상사, LG화학, LG상사, 한화,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거래처 목록에 올라 있다.
비자금 전문가와 은행도 처벌 받는데 왜 비자금 실제 소유주는 처벌 안 받나?
역외 기업 설립 업무를 20년째 담당하고 있다는 스위스의 한 관계자 A씨는 국내 대기업들과 레자 자랍(Reza Zarrab)의 거래 설명을 듣고는 기업 규모가 큰 만큼 대형 환전소를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레자 자랍이 비자금 세탁 전문가라는 것이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회사의 명성(Reputation)이 중요한 대기업들이 굳이 레자 자랍을 거래 파트너로 삼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A씨는 레자 자랍과 같은 명성을 가진 관계자와 거래 사실이 적발될 경우 스위스의 주요 은행들이 고객 계좌를 강제로 청산하는 사례도 있는만큼, 역외 기업 설립을 지원할 때 기업의 실제 업무 내용, 자금 흐름, 해외 거래처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은행에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은행권의 주요 외환 거래 관계자들은 금감원의 이번 중징계를 놓고 은행의 주요 임원단을 제외하고 현장 인력들만 처벌 대상이 된 것에 소리없는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불법 송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보고했던 경우에도 은행 본사의 명령으로 송금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에도 내부적인 징계 대상에 오르면서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