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품 못 떠난다” 취업난·집값 부담에 ‘캥거루족’ 택하는 청년들
포커스미디어, ‘트렌드 리포트 캥거루족 편’ 발표 "부모랑 살겠다" 성인 돼서도 얹혀사는 청년들 취업, 독립?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고물가,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자 주거 비용과 생활비 등을 절약하기 위해 독립하지 않고 부모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이 증가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25~39세 캥거루족 10명 중 7명은 결혼 전까지 독립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에는 독립했다가 경제적 부담에 못 이겨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리터루족'(리턴+캥거루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5~39세 캥거루족 68% “결혼 전까지 독립 계획 없다”
엘리베이터TV 운영사 포커스미디어코리아는 아파트 입주민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한 ‘트렌드 리포트: 캥거루족 편’을 14일 발표했다.지난해 포커스미디어 엘리베이터TV가 설치된 단지 입주민 중 부모님과 함께 사는 25~39세 196명에게 독립 계획을 물어본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결혼 전까지는 독립 계획이 없다‘(68%)고 응답했다.
1년 후 독립 계획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24%, 1년 내 독립 계획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였다. 결혼 후에도 독립 계획이 없다고 말한 입주민도 4%를 차지했다. 독립하지 않는 이유는 딱히 독립 필요를 못 느낀다(40%·복수 응답), 부모님과 사는 것이 편하다(32%)가 가장 많았다. 부모님에게 의식주 편의 받으며 불편함 없이 생활해 독립 동기가 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집값이 비싸다(32%), 생활비가 부담된다(23%) 등 경제적 이유도 컸다. 직주근접이 중요해지면서 부모님 집에서 통근·통학이 편하다(26%)고 답한 캥거루족도 많았다. 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 10명 중 7명(69%)은 매달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리고 있었다. 생활비 수준은 30~50만원(35%), 30만원 미만(26%), 50만원 이상(8%)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생활비를 드리지 않는 캥거루족도 31%였다.
캥거루족의 71%는 집에서 사용하는 생필품을 주로 부모님이 구입한다고 대답했으며 1년 내로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답한 사람이 72%였다. 생활비 부담이 적은 만큼 나를 위한 소비는 적극적인 경향을 띤 것으로 풀이된다.
돈 버는 속도보다 더 빠른 집값 상승, 리터루족도 증가
전문가들은 캥거루족이 증가하는 이유로 집값 상승을 꼽는다. 만 서른 살이 된 5년차 직장인 박씨는 “직장과 가까운 곳의 오피스텔 전세가 2억~3억원이었다”며 “관리비, 대출 이자까지 생각하니 부모님 집에서 버티는 게 답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된 뒤 차곡차곡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고 결혼할 계획이 있었다는 박씨는 “요즘은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고 푸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씨는 “자발적 캥거루족”이라고 했다. 그는 “직장 생활 6년 동안 모은 돈이 1억5000만원이다. 독립하려면 대출을 받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둘 다 여의치 않아 결혼 전까지 눌러앉는 걸 선택했다”고 했다. 캥거루족을 탈출하기 위해 캥거루족이 됐다는 얘기다. 그는 “2~3년은 더 자금을 모아야 할 것 같다. 당분간 본가를 떠날 생각이 없다”는 계획이 있었다.
최근에는 보다 진화한 ‘리터루족’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취업난과 고물가를 견디다 못해 자취 생활을 청산하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다. 대학 입학 후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는 최씨는 최근 10년간의 독립생활을 청산하고 경기도 안성시의 부모님 댁으로 들어갔다. 2018년 대학 졸업 뒤 취업 준비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최종 전형에서 탈락을 거듭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최씨는 “서울 오피스텔 전세 비용과 생활비를 부모님께 받았었는데 더는 버티기가 어려웠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경기도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취업난’에 1인 가구 하고 싶어도 못해
취업난도 캥거루족 증가를 부추기는 요소다. 퇴사를 하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윤씨는 얼마 전 부모님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원래 목표는 서울에 살며 1년 안에 새 직장을 구하는 것이었으나 실업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캥거루족이 됐다. 윤씨는 “그동안 벌었던 돈도 다 써서 생활비가 부담돼 돌아왔다”며 “온라인 강의를 듣고 줌으로 스터디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임용고시를 4번 낙방한 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이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씨는 “대학생 때도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서 지금 생활이 익숙한 것도 있지만, 경제적 독립은 앞으로 근 5년까지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별일 없다면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이랑 같이 살 예정이다.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부모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자녀가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되지 않아 안타까우면서도 장래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3년째 취업을 하지 못한 자녀와 거주 중인 박씨는 “올해로 28살인 둘째 아들이 중등임용고시에 3차례 도전했지만, 합격에 실패했다”며 “1~2차례 불합격했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아예 임용고시 자체를 포기한 것 같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저출산으로 임용 인원도 갈수록 주는데 불안감도 배가 되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취업난과 고금리, 고물가 기조에 청년 세대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자립하지 못한 미혼자가 증가하면 저출산이 가중되고 노동인구는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갈수록 노동의 양과 질이 저하해 국가의 성장 동력도 위협받게 된다. 이뿐 아니라 빈곤 계층이 확대돼 사회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다. 캥거루족의 증가세를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