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등에 증권발행제한 조치 의결한 증선위, 결국 또 폭탄 던진 박삼구 전 회장의 ‘원죄’
아시아나항공 등에 증권발행제한 조치 의결, 이면계약 등이 원인 여전히 선명한 '노밀' 사태, "박삼구 전 회장이 폭탄 던진 셈" 기내식 사업권 두고 자금 조달 꿈꿨지만, "그룹 재건하려다 죄만 쌓았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아시아나항공 등에 대해 증권발행제한 등 조치를 의결했다. 기내식 업체와의 계약 과정에서 이면계약을 체결해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데 따른 것이다. 기내식 사업권을 두고 그룹 재건을 꿈꾸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원죄가 다시금 폭탄이 돼 떨어졌단 평가가 나온다.
증선위 “아시아나항공, 이면계약으로 회계처리 기준 위반”
증선위는 27일 회의를 열고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아시아나항공 등 7개사에 대해 이같이 의결했다고 밝혔다. 증선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015~2016년에 4개 종속회사가 특수관계자로부터 자금을 대여해 인수 자금으로 사용했음에도 이를 특수관계자 거래 주석에 누락했다. 특히 특정 업체와 기내식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불리한 조건을 부담하는 대신, 이면계약을 통해 해당 업체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할 것을 약정했음에도 이를 특수관계자 거래 주석에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증선위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증권발행제한 8개월, 감사인 지정 2년을 조치했다.
이외 금호고속,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종속회사 등도 특수관계자 거래 주석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금호고속의 경우 67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금액과 사채금액 차이를 이면계약 대가로 손익으로 인식해야 했으나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본잉여금으로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선위는 금호고속에 대해 증권발행제한 12월, 감사인 지정 3년, 대표이사 해임 권고와 함께 회사 등을 검찰 통보하기로 했다. 아시아나IDT는 증권발행제한 8월, 감사인 지정 2년, 담당임원 해임 권고를 조치했다. 아시아나에어포트는 증권발행제한 6월, 감사인 지정이다. 에어부산 역시 특수관계자 거래 주석 미기재로 증권발행제한 10월, 감사인 지정 3년을 받았다. 특수관계자 거래 관련 감사 절차를 소홀하게 한 예일회계법인은 손해배상공동기금 30%를 추가 적립하고 에어부산에 대한 감사업무가 2년 동안 제한된다.
끊어지지 않는 ‘기내식 대란’의 꼬리표
증선위 조치 의결 소식에 시장에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원죄가 다시금 돌아오기 시작했단 반응이 나온다. 이번 조치는 지난 2018년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 사건과 관련이 깊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미탑재로 인해 항공기 지연이 다수 발생했는데, 개중엔 기내식을 다 싣지 못하고 공항을 떠난 항공기들도 적지 않았다. 그해 3월 건설 중이던 새 기내식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기내식 사업자 교체에 차질이 생겼고, 임시방편으로 너무 작은 업체에 임시로 기내식 공급을 맡기면서 공급 불안정이 발생한 게 원인이었다고 박삼구 당시 회장은 전했다.
그러나 이후 언론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노밀(no meal)’ 사태는 박 전 회장과 그룹 전략경영실에서부터 시작됐다. 2015년 계약이 끝나가던 ‘알짜’ 기내식 사업권을 대가로 그룹 재건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무리하게 업체를 바꿨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전략경영실은 2015년 싱가포르 홍릉그룹 계열의 투자자문업체 스프링파트너스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권을 가져가는 대신 금호고속에 투자하는 일괄거래를 기획했다. 2003년부터 기내식을 공급하던 LSG스카이셰프코리아와 기내식 분야 세계 2위인 스위스 게이트고메(게이트그룹), 싱가포르항공 계열의 SATS 등 다수의 해외 업체에 이를 제안했고, 당시 중국 하이난그룹이 대주주로 있던 게이트그룹이 이에 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16년 말 게이트그룹이 60%, 아시아나항공이 40% 지분을 투자해 ‘게이트고메코리아(GGK)’가 설립됐고, 2018년 7월부터 30년간 기내식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어 2017년 3~4월 게이트그룹 소속 다른 회사가 금호고속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신주인수 행사가격은 시가의 1.5배로 비싸고, 채권 금리는 0%였는데, 이에 대해 김근성 공정위 내부거래감시과장은 “BW는 형편이 어려운 기업이 발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리나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을 투자자에 유리하게 설정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금호고속의 BW는 신주인수권이나 채권 금리 모두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했다”고 설명했다.
박삼구 전 회장의 원죄, 올해도 아시아나 직격했다
논란이 일자 금호아시아나 측은 “두 회사가 각자 거래를 추진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최선을 다했고 유리한 조건을 끌어낸 것”이라며 “각각 독립적 거래로 서로 연계되거나 대가 관계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지만, 공정위는 은밀한 부속 계약, 부속 합의로 두 거래가 이어져 있다고 판단했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2016년 12월 아시아나항공과 게이트그룹이 합작투자 계약을 맺을 때 ‘사이드 레터’가 있었는데 BW 계약을 (기내식 거래의) 선행 또는 해지조건으로 규정했다”며 “전략경영실이 해외 기내식 업체와 접촉할 때 주고받은 이메일에서도 금호고속에 투자하는 것이 없다면 기내식 사업을 넘겨줄 의사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전했다. 사실상 금호아시아나 측이 기내식 공급업체에 부당한 갑질을 일삼았단 것이다.
기내식은 항공 분야에서 알짜 중의 알짜로 꼽히는 사업이다. 지난 2020년 대한항공이 코로나19로 승객이 줄어 경영난에 빠지자 기내식 사업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기내식 거래처를 바꾸기 전인 2017년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전체 매출 1,890억 원 가운데 70%에 가까운 1,280억 원을 아시아나에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이익은 344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은 18%를 넘는다.
결국 박 전 회장을 중심으로 기내식 사업권을 활용해 자금 조달을 꿈꾸다 얻은 것도 없이 브랜드 가치만 잃게 된 게 해당 사건의 본질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 또한 “사태의 시작점인 아시아나항공의 금호홀딩스 투자 요구 때는 박삼구 그룹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 의지가 강했을 때”라며 “아시아나항공이 총수의 그룹 재건을 위한 자금 확보에 동원되다가 사달이 난 것”이라고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을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박 전 회장은 떠난 이후에도 아시아나 측에 폭탄을 떠넘긴 꼴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