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먹거리 물가 비상에 부가세 한시적 인하 추진
국민의힘, 총선 앞두고 물가 인상 압박 커지자 부가세 인하 요청 기재부 "물가 안정 효과, 세수 감소 등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진" 지난주 치솟는 과일 물가에 긴급 가격안정자금 1,500억원 투입
소비자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일부 생필품에 대해 부가가치세율 인하를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들어 잠시 주춤했던 물가상승률이 다시 3%대로 올라선 데다 식료품 물가가 7% 가까이 상승하는 등 가계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다만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시행령 개정을 통한 한시적 인하를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당국은 이르면 다음 주 내부 검토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당·정,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물가 안정 대책 마련할 것
28일 기획재정부는 “여당으로부터 육아용품, 식재료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품목에 대해 부가세율 한시 인하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지원효과,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가 인상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라면, 즉석밥, 밀가루 등 식료품 가격이 주요 타겟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물가 안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당·정이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고물가 상황을 고려해 일부 생필품에 대한 부가세 인하를 정부에 강력히 요구해 왔다.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 동대문구 유세에서 “출산·육아용품, 라면·즉석밥·통조림 등 가공식품, 설탕·밀가루 등 식재료 등 생필품에 대한 부가세를 10%에서 5%로 한시 인하할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다”며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축수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상품권, 캐시백 등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며 “정부도 긍정적인 조치를 준비할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다만 부가세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부가세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국회 동의 없이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면제 대상 품목에 가공식품을 추가하는 방식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에도 이러한 절차를 통해 부가세 한시 인하를 추진한 바 있다. 지난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서자 정부는 병이나 캔으로 개별 포장된 김치, 된장, 고추장, 젓갈류 등 ‘단순 가공 식료품’에 부과하는 부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했다. 당초 지난해 종료할 예정이었지만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내년까지 시한이 연장됐다.
식료품 물가 6.9%↑, 과일·채소 등 농산물 물가 20.9%↑
통계청에 따르면 1월 들어 2%대로 떨어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 한 달 만에 3%대로 복귀했다. 이 중 식료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9% 상승하며 전체 물가상승률 3.1%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이 5개월 넘게 높은 상승률을 이어가며 식료품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농산물 물가는 전년 대비 20.9% 올랐는데 이 중 과일은 38.3%, 채소·해조는 11.3% 급등했다. 신선식품지수로 구분된 ‘신선과실’만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10월부터 두 자릿수 상승률을 이어오던 신선식품지수는 지난 2월 20% 오르면서 신선과일 가격 상승률이 3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사과 가격이 1월 58.6%에 이어 2월 71%로 크게 올랐다. 봄철 저온 피해로 착과수가 감소한 데다 여름철 집중 호우, 수확기 탄저병 발생 등 이상 기온으로 인한 악재가 겹치면서 지난해 생산량이 30% 급감한 영향이다. 다른 과일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귤 가격은 지난 1월 39.8%에 이어 2월 78.1%로 급등했다. 겨울철 수요가 늘어나는 데 반해 노지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배 61.1%, 토마토 56.3%, 딸기 23.3%로 과일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전체 물가를 0.8%p 끌어올렸다.
다른 먹거리 물가 역시 전체 물가상승률을 웃돌았다. 품목별로는 우유·치즈·계란 4.9%, 과자·빙과류·당류 4.5%, 커피·차·코코아 3.4% 등을 기록했다. 특히 쌀과 아이스크림은 각각 9.2%, 10.2%로 크게 올랐다. 이렇다 보니 가계의 식료품 소비는 감소세를 보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물가로 인해 가계의 실질적인 식료품 소비가 감소하면서 물가의 영향을 배제한 지난해 4분기 식료품·비주류 음료의 실질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 저소득층의 타격은 더욱 커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의 식료품·비주류음료 실질 지출이 7.7%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분간 고물가 이어져, 4월까지 물가 안정 노력 강화 방침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생육기간이 짧아 빠른 공급이 가능한 채소와 달리 과일은 여름에 본격 출하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큰 폭으로 가격이 오른 사과, 배 등도 9월이나 돼야 출하하는 데다 신선식품의 특성상 정부가 비축 물량으로 지정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도 “농산물을 비롯한 생활 물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라며 “물가 전망 경로상 지정학적 리스크나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생활물가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과일과 채소 가격 안정화에 1,500억원 이상의 긴급 가격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등 식료품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3월과 4월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600억원을 투입하고 수입 과일 직수입을 확대한다. 또한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수입 과일 24종의 관세를 인하하고 물량 제한 없이 수입하도록 했다. 특히 바나나, 오렌지 등 수요가 많은 과일은 정부가 직수입해 유통마진 없이 소비자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농산물 납품 단가 지원 품목을 21개로 늘리고 대파는 봄 출하 이전에 3,000톤 규모의 수입 물량에 대해 신규 관세 인하를 도입한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도 이에 동참해 초특가 한정 판매 이벤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3사는 이달부터 농축수산물 가격을 품목별로 순차 할인하는 초특가 한정 판매에 나선 상태다. 일부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사과 등 초특가 한정 판매 농산물을 구입하기 위한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유통업계는 실제 정부의 긴급 가격안정자금이 투입된 이후 사과, 배 등 과일 가격이 10% 이상 하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는 과일 등 일부 농산물 가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달에 이어 4월에도 물가안정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