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에 앞서 중국 보조금 저격한 옐런 “전기차·배터리 과잉생산, 세계 시장 왜곡”
"중국 태양광·전기차 과잉 생산 문제 있다" 옐런 장관 中 직격 태양광,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 중국 업체 난립에 우려 목소리↑ 수주 잔고 1,000조원 돌파한 'K배터리' 3사도 역전 위기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국의 태양광과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산업의 과잉 생산이 전 세계 경제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동원해 자국 기업을 육성하고, 저가 공세로 다른 나라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행위를 문제 삼은 것이다.
옐런 “중국 전기차·배터리 생산 과잉, 세계 시장 왜곡”
27일(현지시간) 옐런 장관은 미국 조지아주 노크로스에 위치한 태양광 기업인 수니바 방문을 앞두고 배포한 성명에서 “중국의 과잉 생산능력으로 인한 글로벌 파급효과가 우려된다”며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은 전 세계 가격과 생산 패턴을 왜곡하고 미국 기업과 근로자는 물론 전 세계 기업과 근로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옐런 장관은 다가오는 중국 방문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핵심 쟁점으로 삼을 계획”이라며 “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중국 측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옐런 장관은 수니바의 재개장 기념식에 참석했다. 해당 기업은 저렴한 수입품이 시장에 넘쳐나서 압박을 받고 있다며 지난 2017년 폐쇄했다 다음 달에 재개장한다. 수니바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과 “해상 청정에너지 제조”에 대한 정부 조치에 따라 재기할 수 있었다고 옐런은 설명했다. 개장식 후 옐런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중국만큼 선호하거나 우선순위에 있는 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없다”며 “중국은 해당 산업들에서 세계적인 지배력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중국에 보복하고 싶지 않다”며 “어떤 건설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보고싶다”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이날 MSNBC와 인터뷰에서도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과 같이 자신들이 우선 순위를 두는 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며 중국이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모듈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제조업동맹은 중국의 정책과 과거 행정부가 중국의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아서 미국 산업계 경쟁력이 약화됐는데 옐런의 발언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보조금 쏟아붓는 중국 정부
실제 중국은 현재 전기차와 태양광,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에서 정부 주도의 가파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전기차의 60%는 중국산으로 집계될 정도로, 이른바 그린 에너지 산업에서도 중국의 시장 침투는 위협적인 상황이다. 이에 배터리 업계에서는 가격 인하, 생산량 경쟁 심화로 인한 ‘치킨 게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체 난립으로 외려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필요 이상의 압박을 받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 유명 식품업체 ‘난팡블랙세서미 그룹’이 자회사 ‘장시 샤오헤이 샤오미 푸드’의 업종을 식품에서 에너지 저장으로 전환하고, 35억 위안(약 6,400억원)을 들여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전문 기술 없는 업체들의 막무가내식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업체의 난립은 결국 글로벌 경쟁 심화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현재도 글로벌 상위 10대 배터리 생산업체 중 6개가 중국 기업일 정도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앞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국 업체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은 계속 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해외 진출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중국 배터리 업체 신왕다(Sunwoda)가 헝가리에 약 3,500억원을 들여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에는 EVE 에너지가 말레이시아 케다에 약 5,600억원을 투자한 공장 기공식을 여는 등 그 움직임은 더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해외 진출로 국내 업체들과의 경쟁이 무척 치열해질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배터리 소재, 부품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투자도 늘려나가야 한다”고 짚었다.
中에 잠식당하는 K배터리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 잠식 속도를 높이면서 한국 기업들을 턱밑에서 위협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수주 잔고 1,000조원을 돌파하며 우리 경제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배터리 산업 패권을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나온다. 지난 4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합산 점유율은 전년 대비 5.3%포인트 하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7.8%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지만 2위인 CATL(27.5%)과 점유율 차이는 단 0.3%포인트에 불과하다. 1년 전 7.1%포인트 격차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다. SK온과 삼성SDI는 각각 10.7%, 10.2%의 점유율로 4, 5위에 머물렀다. 이처럼 중국 업체들은 내수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턱밑 추격 속 전방산업인 전기차 수요 둔화는 배터리 업계의 표정을 더욱 어둡게 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은 1,407만 대로 연간 성장률이 전년(61.3%)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33.5%에 그쳤다. 올해 성장률은 19.1%로 예고됐다. 이에 따라 당분간 글로벌 배터리 출하량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급 측면에선 우리 기업이 북미 등에 증설한 대규모 공장 가동이 시작되면서 단기적으로 과잉 공급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이런 우려는 실적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지난해 연간 기준 호실적을 나타냈으나 4분기 전기차 수요 둔화로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배터리 3사 합산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1조1,411억원에서 4분기 6,314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이에 업계는 과도한 위기론을 경계하면서도 올해 비중국 시장 점유율마저 중국에 역전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