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시장서 인기 끄는 ‘9억원 이하’ 아파트, 신생아 특례대출이 수요 견인해
중저가 매물 위주로 활기 되찾는 수도권 경매 시장
신생아 특례대출 수혜 위해 눈높이 낮추는 실수요자들
경매 시장 상황, 특례보금자리론 판매 당시와 닮았다
고금리 장기화 기조로 수도권 아파트가 경매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감정가 9억원 이하 아파트에 응찰자가 몰리고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 수혜 대상인 실수요자들이 가격 요건에 맞는 매물을 찾아 경매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한동안 고가 주택이 밀집돼 있는 ‘강남권(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대신 정부 지원 대상인 중저가 아파트에 매매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수도권 중저가 아파트의 인기
11일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gg auction)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2월(83.7%) 대비 1.4%p 상승한 85.1%로 집계됐다. 전국 기준 낙찰가율이 85% 선을 넘어선 것은 2022년 8월(85.9%) 이후 1년 7개월 만이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매물이 누적되며 낙찰률(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낙찰가율은 저가 매물 매수 수요에 힘입어 점차 회복되는 양상이다.
특히 서울·경기 등 수도권 아파트의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85.9%, 평균 응찰자는 8.2명 수준이었다. 지지옥션 측은 서울 지역에선 강남권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지만,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는 감정가 9억원 이하 아파트에 많은 응찰자가 몰리며 낙찰가율 85%대를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경기 아파트 낙찰가율은 2월(85.7%)에 비해 1.6%p 오른 87.3%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7월(92.6%) 후 20개월 만의 최고치 수준이다. 평균 응찰자는 13.2명으로 전월보다 0.7명 증가하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인천 아파트 낙찰가율은 전달(79.5%) 대비 3.3%p 상승한 82.8%로, 이들 지역에서는 특히 진입 장벽이 낮은 3억~4억원대 저가 아파트가 인기를 끈 것으로 확인됐다.
신생아 특례대출 기준에 맞춰 주택 구입
9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로 입찰 수요가 몰리는 원인으로는 올해 신규 도입된 신생아 특례대출이 지목된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대출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입양한 무주택 가구나 1주택 가구(대환대출)를 대상으로 주택 구입 자금·전세자금을 저리에 대출해 주는 제도다. 신청자는 연소득 1억3,000만원 이하 등 소득 요건을 갖춰야 하며, 주택가액 9억원 이하·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선택해야 한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이어지는 고금리 기조로 인해 주택 구입을 미루던 젊은 부부들의 ‘활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신청 개시 이후에는 일주일 만에 총 9,631건, 자그마치 2조4,765억원(약 18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신청이 몰리기도 했다. 해당 기간 접수분 중 주택 구입자금용 ‘디딤돌 대출’ 신청 건수는 7,588건(2조945억원, 85%), 전세자금용 ‘버팀목 대출’ 신청 건수는 2,043건(3,820억원, 15%)이었다.
올해 혜택 대상자인 2023년 1월 1일 이후 출생아를 둔 출산(입양) 가구는 주택구입 자금의 경우 1.6~3.3%, 전세자금의 경우 1.1~3.0% 수준의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월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평균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가 연 4.68%,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99% 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게 낮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혜택 대상자들이 기존 매매 시장 대비 비교적 가격이 낮은 경매 시장에 주목, 감정가 9억원 이하 매물을 두고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특례보금자리론’과 유사한 전략
이처럼 정책금융 수혜 대상 실수요자들이 경매 시장으로 몰리는 현상은 특례보금자리론이 판매되던 지난해부터 관측돼 왔다. 특례보금자리론은 2023년 1월에 출시돼 지난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 특별 정책금융상품으로 △주택 가격 요건 9억원으로 확대 △소득 요건 및 보유 주택 수 제한 완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미적용 등 다양한 혜택을 내걸며 인기를 끈 바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특례보금자리론 시행 초기였던 지난해 2월, 서울 아파트 경매에서 응찰자가 10명 이상 몰린 물건(11건) 중 낙찰가가 9억원 이하인 물건은 72%(8건)에 달했다. 특히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 전용 85㎡형의 경우, 자그마치 73명이 응찰하며 당시 서울 아파트 경매 물건 중 가장 치열한 경쟁률을 자랑하기도 했다. 해당 물건은 입찰 최저 가격이 5억688만원으로 감정가(9억9,000만원)대비 51% 수준까지 미끄러진 상태였으며, KB시세 기준 가격이 7억9,000만원으로 특례보금자리론 대출 기준에 적합한 물건이었다.
당시 실수요자들은 경매 유찰로 입찰 최저가가 내려가길 기다리고, 매물이 가격 조건을 충족했을 때를 노려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원 경매에서는 1회 유찰될 때마다 입찰 최저가가 감정가에서 20%씩 하향 조정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신생아 특례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실수요자들 역시 이와 유사한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비교적 대출 부담이 큰 고가 아파트들이 약세를 보이는 한편, 정책금융을 끼고 구입할 수 있는 중저가 아파트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