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 뛰는 ‘N잡러’ 50만 돌파, 청년층·40대 가파른 증가세
1분기 N잡러 55만2,000명, 전년 대비 10만명 넘게 늘어
고물가에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일자리 늘면서 부업 증가
아르바이트 시장에서도 중장년층 지원 증가세 두드러져
고금리·고물가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지면서 본업 외에 추가로 부업을 하는 ‘N잡러’들이 급증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40~50대 이상 중장년층도 적극적으로 부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이 20대 중심의 아르바이트 시장에 몰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급증하는 ‘N잡러’들, 사상 처음 50만 명 돌파
29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1분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22.4% 늘어난 55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취업자 중 부업을 겸하는 N잡러가 50만 명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N잡러의 인원 수만 보면 전체 취업자에 비해 미비한 수준이지만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분기만 해도 1.34%였던 N잡러 비중은 5년 만인 지난해 말 1.97%를 기록하며 2%에 육박하고 있다.
연령대별로 보면 60대 이상이 19만4,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11만8,000명, 40대 11만5,000명 순으로 나타났다. 30대와 15~29세 청년층은 각각 7만1,000명과 5만3,000명으로 10만 명을 하회했다. 특히 청년층과 40대에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부업자 증가율을 연령별로 보면 청년층이 30.9%로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40대 부업자는 27.7%, 60대 이상 25.1%, 30대 14.9%, 50대 14.7%로 전 연령대에서 N잡러가 증가했다.
N잡러의 증가세는 단기 고용이 활발히 이뤄지는 아르바이트 시장에서도 확인됐다.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에 따르면 지난해 40대와 50대 이상의 아르바이트 지원량 증가률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각각 157.7%, 357.2% 급증했고 30대 증가율도 89.3%를 기록했다. 반면 일반적으로 아르바이트 시장의 주요 활동 연령대인 20대의 증가율은 28.6%에 그쳤다.
급여 제자리걸음, 본업으론 생활 유지 어려워
N잡러가 크게 늘어난 데는 장기화하는 고금리·고물가가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급여는 제자리걸음인데 대출 이자 부담은 늘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본업만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서민들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알바천국이 ‘N잡 경험이 있는 40대 이상 회원 5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N잡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53.8%가 “금리, 물가 인상 등으로 지출이 대폭 늘어서”라고 답했다. “본업 소득이 감소해서, 임금 인상 폭이 저조해서”라는 응답도 26.4%나 됐다.
여기에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에 등록해 라이더로 활동하는 등 시간 제약 없이 수시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 것도 N잡러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이러한 플랫폼 일자리는 기존 일자리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청년층부터 40~50대까지 폭넓은 세대가 선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튜버처럼 어디서든 영상을 찍고, 편집해 올리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도 대표적인 부업 일자리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노동시간 대비 소득 개선 정도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복수 일자리 종사자의 현황 및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N잡러들의 본업과 부업을 합친 월 평균 소득은 294만7,000원으로 단독 일자리 종사자보다 21만원 많았다. 이에 반해 시간당 소득은 1만3,000원으로 본업만 하는 근로자보다 1만6,000원 적었다. 또한 N잡러는 단독 일자리 종사자보다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 가입률도 크게 낮았다. 통상 N잡러는 본업과 부업 모두 근로 여건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본업과 부업 경계 모호해져, 제도적 변화 필요
N잡러 증가 현상은 해외에서도 포착된다. 팬데믹 과정에서 ‘조용한 퇴사’와 ‘조용한 해고’를 거치면서 본업에서 소득을 올리겠다는 기대를 접고 ‘조용한 부업’에 나서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디지털 부업으로 소득을 늘렸다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업 자동화 플랫폼 업체인 자피에르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4%가 부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이 비율이 43%까지 증가했다. 조만간 부업을 시작하겠다는 응답도 24%나 됐다. 팬데믹 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부업하는 근로자 수는 5% 수준으로 추정됐지만 몇 년 새 두 자릿수로 급증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업(겸직)을 제재하는 기업들도 늘었다. 세계 2위 전자상거래 플랫폼 쇼피파이의 공동 창업자 토비아스 뤼트케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부업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미국 신용정보기업 에퀴팩스는 2022년 부업하는 직원 24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부업은 금기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공무원의 경우 겸직 금지 조항이 있고 대다수 민간 기업도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별도 약정서 등을 통해 겸직을 제한하는 게 일반적이다.
부업을 경계하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일본에선 부업을 장려하는 상황이다. 저출생·고령화로 노동 인구 부족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2018년 ‘부업·겸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어 2019년 기업 취업 규칙 기본 지침에서 부업·겸업 금지 항목을 삭제했고, 2022년에는 기업들에 부업·겸업 허용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부업을 허용하는 민간 기업의 수도 급증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 따르면 부업을 허용하는 기업 비율은 2018년 30%에서 2022년 53%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고용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제도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옅어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본업·부업 구분에 묶이기보단 노동시간과 사회보험 적용 기준, 산업재해 책임, 조세 제도 개편 등 다양한 제도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부업·겸직 제한에 대한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상 직업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근무가 끝난 자유시간에 하는 부업 활동에 대해서까지 회사가 관여하는 건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지적이 많다. 또한 N잡러에 대한 법·제도적 쟁점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N잡러들이 주로 일하는 긱 이코노미(단기 임시직) 시장은 새로운 노동의 개념을 두고 아직 명확한 판례나 원칙이 정립돼 있지 않다. 특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와 ‘용역’의 경계선상에 있는 ‘회색지대’이자 ‘사각지대’라는 점에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