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점 재판에서 드러난 애플·구글의 200억 달러 거래
구글, 사파리 브라우저 검색 광고 수익 36% 애플에 지급
구글 반독점 소송 최후변론만 남아 올 하반기 중 1심 선고
반독점 소송 패소 시 '구글·애플' 기업 분할 시나리오도
구글이 자사의 검색 엔진을 아이폰 기본 검색 엔진으로 탑재하기 위해 2022년에만 200억 달러(약 27조3,000억원)를 애플에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검색 엔진 시장의 90%를 장악한 구글의 미래가 달린, 미국 정부와의 반독점 소송 과정에서다. 해당 소송 재판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최후 변론 절차만 남겨 놓고 있는 상태다.
구글, 아이폰 기본검색 위해 애플에 200억 달러 줬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구글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미 법무부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전날 이같은 내용이 담긴 문서를 재판부에 공개했다. 그간 미 정부는 구글이 검색엔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업자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와 관련한 구체적 정황이 담긴 물증을 제시한 것이다.
앞서 구글은 2002년 애플의 기본 웹 브라우저 사파리에 자사 검색엔진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계약을 맺었다. 애플은 이후 검색 광고로 획득한 수익을 공유한다는 조건에 따라 구글로부터 광고 수익의 36%를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구글이 애플에 지급한 금액은 2021년 5월까지 매월 10억 달러 이상으로, 액수는 점차 늘어 2021년 180억 달러에서 2022년 20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구글의 검색엔진은 모회사 알파벳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업으로, 시장에서는 이번 재판에서 법원이 구글의 반독점 위반 혐의를 인정할 경우 구글이 관련 부서를 분리하거나 사업 방식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검색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온 구글의 주요 사업 전반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애플과 아마존, 메타 등 반독점 문제로 미국 정부와 유사한 소송을 치르고 있는 다른 빅테크 기업들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애플 “구글 검색엔진이 최선, 대안 없었다”
이번 소송은 미 법무부가 2020년 10월 구글이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구축하면서 반독점법을 어겼다고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이같은 반독점 행위를 통해 구글이 경쟁을 제한했다는 것이 법무부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증인으로 출석한 에디 큐(Eddy Cue) 애플 서비스 부문 수석 부사장은 “고객들을 위해 구글을 기본 검색 엔진으로 가져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구글과 거래를 옹호했다. 이어 “(합의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안은 분명히 없었다”며 “만약 협상이 결렬됐다면 우리가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반독점 행위를 통해 경쟁을 제한했다는 법무부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큐 부사장은 다만, 양사 간 계약서에는 정부의 조사로부터 두 회사가 맺은 “거래를 지지하고 방어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조항을 넣기 위해 2016년 재협상이 이뤄졌다며 구글의 요청에 따라 추가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큐 부사장은 구글 외에 대안이 없었다고 하면서도 애플이 자체 검색 엔진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날 재판에서 법무부 측은 2016년 큐 부사장이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CEO)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제시했다. 이메일에는 협상 당시 애플이 제안한 수익 배분에 대해 구글 순다르 피차이 CEO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법무부 측이 이를 근거로 큐 부사장에게 애플이 구글과 협상을 포기할 수도 있었는지를 묻자, 큐 부사장은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협상을 포기했다면) 애플이 자체 검색 엔진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규제 당국 압박에 기업 분할 위기론도
미국 규제 당국이 양사에 대한 공세를 날로 강화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두 기업이 분할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3월 로이터통신은 미국 규제당국이 빅테크의 독점 행위에 대한 제재 수위를 강화할 경우 빅테크가 분할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두 기업에 대한 소송이 연달아 나타날 수 있으며, 법적 분쟁에 대한 리스크로 인해 결국 두 기업이 백기 투항하고 분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984년 미국의 통신사 AT&T도 EU와 미국의 협공에 못 이겨 기업을 분할한 바 있다. 당시 최대 독점기업으로 불렸던 AT&T는 반독점 규제 당국의 공격을 받았고 결국 AT&T는 버라이즌, 루멘, AT&T 등 7개의 독립회사로 분할했다.
일각에서는 규제 당국과 빅테크와의 싸움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MS)는 법무부와 4년간의 법적 분쟁을 펼친 바 있다. 1998년 미 법무부는 MS가 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한다는 혐의로 제소했는데, 4년여 간의 법적 분쟁 끝에 MS는 기업분할을 피하는 대신 5년간 시장 제한을 가하는 합의안을 수용했다. 이에 당시 시장에선 정권 교체로 인해 반독점 규제가 흐지부지됐다는 평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