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지갑 닫은 소비자들, 신차·중고차 판매 줄줄이 급감
신차·중고차 판매량 하락, 상용차도 22% 감소
전기차·수입차도 판매 부진, 고물가·고금리 영향
수출 효자 뛰어도 내수는 여전히 '한겨울'
고물가, 고금리 등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국내 신차 판매량이 5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신차뿐만 아니라 수입차, 전기차는 물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중고차 시장도 정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자동차 내수 시장에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소비 지표마저 뒷걸음치면서 향후 실물 경기 회복을 낙관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차량 판매 ‘급락’
21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4월 국내 시장에서 판매된 신차는 14만1,110대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5% 줄어든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 12월 신차 판매량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5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4월 차량 판매 부진에는 역기저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내수 판매량은 신차 기준 173만9,249대로 전년보다 3.3% 증가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작년에 자동차 시장이 호황인 건 수출이 1년 전보다 20.5% 늘어난 덕분으로, 내수 판매 증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했다.
신차뿐만 아니라 중고차 시장도 정체 상태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중고차 판매량은 81만9,841대로, 전년 동기(82만3,020대) 대비 3,000대가량 줄어들었다.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의 관심도 소형차에 쏠렸다.
지난달 중고차 거래 건수는 21만2,844대를 기록했는데, 이 시기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은 경차인 기아의 모닝이 차지했다. 2위 차량도 경차인 쉐보레 스파크(3,656대)로 집계됐다. 레크리에이션차량(RV)에서도 팰리세이드나 싼타페 등 중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대신 가장 작은 뉴 레이와 레이가 각각 1, 2위를 기록했다.
포터 등 경기와 밀접하다고 평가되는 상용차 판매량도 크게 줄었다. 올 들어 신차 시장에서 상용차 판매량은 6만5,547대로 1년 전 같은 기간(8만4,808대)보다 22.7% 쪼그라들었다. 중고차 시장에선 올 들어 13만2,683대가 팔렸는데, 이는 전년 동기(14만3,833대)에 비해 1만 대 이상 감소한 수치다.
전기차·수입차 판매량도 대폭 축소
국내 전기차 판매도 지난달 7,186대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무려 42% 급감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전기차가 총 3,102대 팔리며 지난해 4월 대비 57.7% 줄었다. 아이오닉6(-68%), 아이오닉5(-25.4%) 등 주요 전기차의 판매 감소가 영향을 끼쳤다. 기아의 전기차도 같은 기간 3,317대 팔리며 34.1% 줄었다. KG모빌리티의 경우 작년 11월 출시된 토레스 전기차 모델이 지난달 767대 팔리는 데 그쳤다. 신차 효과가 점차 줄면서 지난 3월(1,443대)에 비해 판매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판매 부진에 허덕이는 건 국산차만이 아니다. 가격대가 높은 수입차 판매량도 대폭 줄어 들었다. 올해 초부터 4월까지 국내 수입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9.4% 감소한 7만6,137대에 그쳤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마이너스 판매량이 수개월째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은 4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했다. 2002년 1.3%로 처음 1% 내수 자동차 시장 벽을 넘은 수입차 판매 비중은 2012년 10.01%, 2022년 19.69%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18.22%로 낮아졌다.
10년 동안 수입차의 연간 판매량이 전년보다 감소한 해는 폭스바겐 등의 ‘디젤게이트’ 영향을 받은 2016년과 일본과의 수출 분쟁으로 ‘노재팬’ 운동이 일었던 2019년뿐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수입차 시장은 26년 만에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1987년 한국에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이래 2년 연속 전년 대비 판매량이 뒷걸음질 친 때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전국을 덮쳤던 1998년 단 한 번뿐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고금리에 내수 위축, 올해도 빨간불
국내 자동차 시장에 부는 찬바람은 한동안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해 지갑을 닫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2024년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8.4로 전월보다 2.3p 하락했다. 소비자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CCSI가 10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CCSI가 100 이하면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심리가 과거(2003년~전년 12월) 평균보다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가계 재정 상황에 대한 인식도 악화했다. 현재생활형편CSI는 전월보다 1p 낮은 88을 기록했고, 생활형편전망CSI는 2p 떨어진 92를 나타냈다. 소비지출전망CSI도 109으로 전월보다 1p 하락했으며, 가계수입전망CSI 역시 97로 전월보다 2p 내렸다. 고금리 상황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5월 금리수준전망CSI는 104로 전월보다 4p 상승했는데, 이는 지난해 12월 10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재화 소비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다. 최근 발표된 국가미래연구원의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서비스 소비를 제외한 재화 소비만을 나타내는 3월 소매판매액지수는 내구재, 준내구재, 비내구재가 모두 줄어 전년 동월 대비 2.7% 감소했다. 내구재는 자동차와 가전제품, 가구 등 1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가리키는 말로, 향후 소득이나 일자리 사정이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고 볼 때 소비자들은 목돈이 드는 상품 구매를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업계는 이같은 내수 위축이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뇌관이 될 것이라 우려한다. 특히 그간 부진했던 수출 부문이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점을 비춰보면 올 한 해 수출과 내수 간 불균형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내수 회복을 위한 관건은 결국 소비자물가 안정과 금리 인하 여부에 달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출 호조가 지속되는 동시에 내수가 살아나야 경제가 안정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카드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