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오르는데 월급만 제자리, 실질소득 7년 만에 최대 감소
통계청, 1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
1분기 가계 실질소득 1.6%↓
소득 통계 작성 이래 최대 낙폭
올해 1분기 가계 실질소득이 7년 만에 최대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근로소득은 급감했는데 물가는 오르면서다. 실제로 대기업 상여금 감소가 실질 근로소득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근로소득 외에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대부분 중산층이 고물가와 고금리에 적잖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가구 실질소득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가계 실질소득, 7년 만에 최저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12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1.4% 늘었다. 하지만 물가를 반영한 가계 실질소득은 1년 전 대비 1.6% 줄면서 1분기 기준으로 2021년(-1%) 이후 3년 만에 감소로 전환했다. 이번 감소폭은 2017년 1분기(-2.5%) 이후 가장 크다.
가계소득 감소를 이끈 것은 근로소득이었다. 물가를 고려하지 않은 명목 근로소득이 1.1% 줄어든 것이다. 여기엔 지난해 대기업 실적이 부진해 상여금 규모가 급감한 여파가 크게 작용했다. 대기업에 다니며 근로소득으로 생활하는 중산층 수입이 줄어든 게 전체 가계소득 감소를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 근로소득 감소율은 더 크다. 실질 근로소득은 1년 전에 비해 3.9%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이진석 통계청 가계동향수지과장은 “물가만큼 소득이 늘지 않았기 때문에 가구 실질소득이 마이너스가 됐다”고 설명했다.
가계 소비지출은 월평균 290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3% 늘었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같은 씀씀이에도 지출 규모가 커진 영향이다. 소득에서 이자비용을 포함한 비소비지출을 뺀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소득보다 지출 증가율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가구 흑자액은 113만8,000원으로 2.6% 줄며 3개 분기 만에 감소로 돌아섰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흑자액을 의미하는 흑자율은 소득 1분위(하위 20%)를 제외한 모든 소득 분위에서 떨어졌는데, 이는 중산층의 살림살이 악화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분배지표 ‘소폭’ 개선됐지만, 부익부 빈익빈 여전
소득 분배를 나타내는 지표는 소폭 개선됐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과의 격차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은 올해 1분기 5.98배로 1년 전보다 0.47배포인트 낮아졌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가구원 수로 나눈 후 상위 20%(5분위)의 소득이 하위 20%(1분위)의 몇 배인지 살펴보는 지표다. 통상 배율이 작아질수록 소득 분배가 개선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성과급이 줄면서 5분위 근로소득이 4.0% 감소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지출 감소 폭이 고소득층보다 컸다. 소득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31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0.6% 줄어든 데 반해 5분위 가구는 509만8,000원으로 0.5% 감소했다. 안 그래도 지갑이 얇은 저소득층이 소비를 더 줄였다는 뜻이다.
특히 1분위의 교육 지출은 1년 전보다 42.4% 급감했다. 전체 가계의 교육 지출이 2.3%, 5분위 가구도 5.3%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이에 대해 이진석 과장은 “1분위는 1인가구 비중이 높은데 노인과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이 포함된다”며 “학생 교육비가 줄었다기보다는 성인 교육이 줄어든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중산층-상류층 소득 격차도 사상 최대
중산층과 상류층 간의 소득 격차도 사상 최대로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 소득분배지표에 따르면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3분위 가구 경상소득은 월 평균 449만원(2022년 기준)인 반면 상류층인 소득 5분위 소득은 1,3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5분위와 3분위 소득 격차(851만원)는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1년 이후 가장 높다.
5분위와 4분위 소득 격차(624만원)도 최대치다. 이 격차는 더 벌어졌을 공산이 크다. 지난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 월 임금 격차(240만원)와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과 300인 미만 기업 간 임금차(288만원)가 사상 최고로 치솟으면서 근로소득 격차가 부쩍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산층과 상류층을 가로막는 소득 장벽이 더 두터워졌다는 점이다. 상류층 소득 증가로 가처분소득 기준 중위소득은 2011년 월 173만원에서 2022년 288만원으로 66.4% 늘어 중산층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17%)를 압도했다. 이렇다 보니 미래세대 계층이동 가능성을 비관하는 국민들도 크게 늘었다.
실제 ‘자녀세대 계층이동이 어렵다’고 답한 국민은 지난해 54.0%로, 통계청 조사가 시작된 2009년 29.8%와 비교할 때 두 배가량 급증했다. 자녀세대에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국민은 29.1%에 그쳤다. 각종 세제 개편을 통해 중산층 자산 형성을 돕고, 계층이동을 도울 사다리 복원이 시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