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값만 내리면 뭐하나” 농산품 수급 불안 속 급등하는 먹거리 물가
식료품 생산자물가 소폭 하락, 일부 품목 공급 불안 해소
"아직 안 끝났다" 식품 기업 가격 인상 릴레이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 공급 혼란이 인플레이션 자극
농수산품 생산자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감자 등 일부 품목의 수급 상황이 개선되며 농수산품 물가가 일부 안정된 결과다. 다만 식품업계에서는 여타 원재료의 수급 불안 상황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만큼, 추후 먹거리 물가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흘러나온다.
농식품 생산자물가 일부 안정
한국은행의 23일 발표에 따르면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한 달 전보다 0.3% 오른 119.12(2020년=100)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세다. 생산자물가는 국내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도매 물가로, 통상적으로 약 1~3개월가량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식료품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1.1%, 신선식품 소비자물가는 7.5% 각각 하락했다는 점이다. 올해 초부터 물가 상승세를 주도하던 농림수산품 생산자물가가 3.0% 미끄러진 결과다. 계절이 변화하며 감자 등 수급이 불안했던 품목의 공급이 일부 안정, 관련 지표 전반이 하락세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제 가격 비교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만 해도 한국의 감자 1㎏당 가격은 3.96달러(약 5,300원)로 전 세계 95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19일 기준). 하지만 이달 들어 따뜻한 날씨가 유지되고 출하량이 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을 보면 2024년 5월 하순 기준 감자 평균 가격은 1kg당 2,201원까지 미끄러졌다. 이는 5월 중순 대비 13%(약 320원)가량 하락한 수준이다.
원재료發 시장 혼란은 여전
생산자물가 상황이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농산품 수급 불안으로 인한 식품·요식업계 내 혼란은 한동안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감자뿐만 아니라 사과, 배, 배추, 당근, 양배추 등 주요 식재료 가격이 줄줄이 상승하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감자 같은 일부 품목의 수급 상황이 개선됐다고 해도 (공급 감소로 인한) 어려움이 완벽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가격 인상 릴레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총선 이후 산업계 곳곳에서는 식료품 가격 인상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오는 6월 1일부터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게토레이 △핫식스 △델몬트주스 등 6개 음료 품목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가격 인상 사유로 중동발 정세 불안에 따른 유가 리스크 확대,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가격 인상 등을 지목했다. 시장 상황이 악화하며 원재료 원가 부담이 확대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동원에프앤비(F&B) 역시 6월 1일부터 ‘양반김’ 전 제품의 가격을 평균 15% 인상한다. 주요 품목의 판매가격 기준 인상률은 △양반 들기름김(식탁 20봉) 15.8% △양반 참기름김(식탁 9봉) 14.6% 등이다. 동원F&B 측은 “조미김 원재료인 원초 가격 급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감내하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인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체감 물가도 ‘급등’
기업들의 연이은 가격 인상 속 먹거리 물가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의하면 올 1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은 404만6,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상승했다. 가처분소득은 이자, 세금 등을 제외하고 가계가 실제 소비나 저축에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일컫는다.
최근 외식, 가공식품 등 먹거리 물가 상승률은 최근 가계 가처분소득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다. 1분기 외식 물가는 상승률은 3.8%로 가처분소득 상승률의 2.8배에 달했다. 같은 기간 가공식품 물가 역시 2.2% 상승하며 가처분소득 상승 폭을 웃돌았다. 품목별로는 △햄버거(6.4%) △비빔밥(6.2%) △김밥(6.0%) △냉면(5.9%) △오리고기(외식)(5.8%) △떡볶이(5.7%) △도시락(5.7%) △치킨(5.2%) △쌀국수(5.1%) 등이 특히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였다.
가공식품도 품목의 절반 이상이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상회했다. △설탕(20.1%) △소금(20.0%) △초콜릿(11.7%) △수프(11.7%) △아이스크림(10.9%) △당면(10.1%) 등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고, △잼(9.8%) △기타육류가공품(9.4%) △파스타면(8.9%) △사탕(8.4%) 등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불안정한 수급 상황이 기업의 가격 인상을 촉발하고, 결국 소비자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