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 예타 제도 16년 만에 폐지, 사업 착수 기간 2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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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 10월 계획접수, 이듬해 3월 검토결과 통보
4월 말까지 부처별로 차년도 R&D 예산에 반영
민간 중심 사전 검토 통해 기획의 완성도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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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 투자·관리 시스템 혁신 방안/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가 16년 만에 전격 폐지된다. 정부는 예타 폐지에 따라 대규모 R&D 사업에 대한 검증 작업으로 매년 10월 사업추진계획을 미리 제출받아 이듬해 3월 전에 결과를 통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1,000억원 이상 신규 사업, 사전 검토받아 차년도 예산에 반영

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는 제8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 회의를 열어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 투자관리 시스템 혁신 방안’을 최종 의결했다고 밝혔다. 예타 제도는 대규모 국가재정 투자 전에 사전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도입됐다. 국비 300억원을 포함해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사업에 적용되며 R&D 분야는 2008년부터 대상에 포함됐다.

R&D 분야 예타 제도는 검토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신속성과 창의·도전성이 요구되는 R&D의 특수성에 부합하지 않아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 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지난 4월 열린 제6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예타 전면 폐지가 논의됐고 이어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R&D 분야 예타 폐지 방침이 확정됐다.

이번 추진 방안은 1,000억원 미만의 모든 신규 R&D 사업은 일반적인 예산편성 과정을 통해 심의하고 1,000억원 이상의 기초·원천연구와 국제공동연구 등을 ‘연구형 R&D 사업’으로 분류해 사전 검토를 받도록 하는 것은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각 부처는 1,000억원 이상의 연구형 R&D 사업의 경우 전년도 10월에 사업계획을 미리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에 제출해야 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제출받은 사업계획에 대해 사업 필요성, 규모 적정성 등에 관한 전문가 검토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이듬해 3월 각 부처에 통보한다. 부처는 과기정통부로부터 통보받은 내용을 토대로 계획을 보완해 4월 말까지 부처별 차년도 예산 요구안에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부처 내 R&D사업 지출 한도를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따라 예산을 조정하는 작업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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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준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5월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4년 제4회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총괄위원회’ 를 주재하고 있다/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류광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전날 열린 브리핑에서 “예타를 폐지하는 대신 차년도 예산편성 절차와 연동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각 부처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기정통부는 일종의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에 당락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닌 민간 전문가의 사전 검토를 거쳐 부처 심의를 진행함으로써 기획 단계에서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고 효율적인 예산 심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신규사업 착수가 예타 폐지 전보다 약 2년 이상 단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초연구‧장비개발 등은 사업관리 난이도에 따라 맞춤형 심사

이와 함께 심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내용에 따른 맞춤형 심사제도도 도입한다. 별도의 기술개발이 필요하지 않고 사업관리도가 낮은 단순 연구 장비 도입 사업 등은 필요성, 활용계획, 추진 전략을 중심으로 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심사해 신속하게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한다. 

기술개발이 수반되며 사업관리 난이도가 높은 입자 가속기 등의 대형 연구 시설구축, 위성‧발사체 등의 체계 개발사업은 필요성에 대한 검토 후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기본계획 심사’와 사업 준비 정도를 검토해 사업착수 여부와 예산 규모를 결정하는 ‘추진계획 심사’를 단계적으로 실시한다. 또 대규모 예산투자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연구시설 구축과 체계 개발에 필요한 선행 기술 개발은 기본계획 수립 전에 별도의 연구형 R&D로 나눠 먼저 추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내실 있는 사업 운영을 위해 점검과 관리 체계도 강화한다. 매년 과기정통부와 기재부의 예산심의 단계에서 사업수행 건전성을 지속 점검‧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된 사업은 특정평가 등을 통해 지속 여부, 적정규모 등을 검토하고 문제 사업은 종료시키는 등 사후관리도 강화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R&D 예타 폐지가 실제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국회에서 초당적인 지원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법 개정 전까지는 기존 예타보다 단축된 패스트 트랙, 혁신‧도전형 R&D 사업들에 대한 예타 면제범위 확대 등을 통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R&D 사업들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예타로 예산 절감 23억원, 무분별한 R&D 예산 낭비 우려도

예타 폐지를 두고 과학계에서는 AI(인공지능), 반도체, 우주, 양자, 첨단 바이오 등 주요 분야의 혁신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냈다. 기존 예타 제도가 당락을 결정하는 만큼 최소 수개월이 소요되는 심사에서 탈락하면 다시 처음부터 심사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R&D 사업들이 예타 제도로 인해 사업 착수가 미뤄지거나 예산이 크게 삭감됐다. 3수 끝에 지난달 예타 통과에 성공한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개발’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사업은 지난 2021년부터 예타에 도전했지만 경제성을 이유로 고배를 마셨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등이 빠르게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기술 개발조차 시작하지 못했던 셈이다. 정부가 핵심사업으로 강조해 온 바이오파운드리 사업도 예타를 거치면서 8년간 7,434억원에서 5년간 1,263억원으로 사업 규모가 축소됐다.

반면 예타가 폐지될 경우 사업부실·예산 낭비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R&D 예타 제도를 통해 정부 재정의 약 23조원이 절감된 바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국가 R&D 예타 사업은 51개로 총사업비는 30조1,46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예타를 통해 실현 가능성, 경제성, 장비 도입의 필요성 등을 검토한 결과 선정된 사업은 12개, 총사업비는 7조8,303억원이었다.

일각에선 1,000억원 미만 사업의 예산 심의 절차가 완화되고 각 부처의 자율성이 커진 만큼 보다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 규모를 줄이고 개수를 늘리는 쪼개기 사업이 난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 부처별로 각자 R&D 사업을 자율 수립하게 되는 만큼 중복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예타 제도가 폐지되면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R&D 사업을 선정할 수 있게 되지만, 전체 예산 규모는 부처별로 기재부가 책정한 지출 한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국가 R&D 사업이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시행되거나, R&D 사업 예산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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