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5월 신규 고용지표 ‘예상치 상회’, 연준 금리인하 명분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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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고용 증가 27만2,000명, 노동시장 과열에 금리인하 기대↓
4월 소비지출 감소, 5월 구매관리자지수(PMI)와 상반 '혼조'
'장단기 금리 역전=경기 침체' 통념 무색, 23개월째 역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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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채 2년물 금리가 10년물 금리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경기 침체는커녕 미국 경제지표는 여전히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의 5월 비농업 고용 증가율이 전망치를 크게 웃돌면서 미국 노동시장의 견고함을 확인시켜줬다. 이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인하 시점도 다시 안갯속으로 빠지게 됐다.

미국 5월 비농업 고용 증가, 금리인하 기대 후퇴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노동부 노동통계국은 지난 5월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27만2,000건 증가했다고 7일 발표했다. 이는 다우존스의 예상치 19만 명과 로이터통신의 예상치 18만5,000명을 크게 능가하는 기록이자, 지난 4주간 최고치다.

업종별로는 의료 분야에서 6만8,000명, 정부 분야서 4만3,000명, 여가접객에서 4만2,000명이 크게 늘었다. 이어 문직·과학·기술 업종(3만2,000명)과 사회보장 분야(1만5,000명)에서도 일자리가 증가했다. 다만 제조업, 광업, 건설, 도매무역, 교통과 재고, 금융 활동, 정보 분야에서는 일자리가 늘지 않거나 거의 변화가 없었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월 대비 0.4% 오르며 시장 전망치인 0.3%를 웃돌았다. 실업률은 4월(3.9%) 대비 0.1%p 증가한 4.0%를 기록했는데, 실업률이 4%대를 보인 것은 2022년 1월 이후 처음이다. 5월 경제활동 참가율은 62.5%로 전월치인 62.7%에서 소폭 하락했고 주간 노동 시간은 34.3시간으로 전월과 같았다.

앞서 미국의 4월 구인·이직보고서, 주간 실업청구건수, 5월 ADP 비농업 민간고용지표 등 각종 고용지표가 노동시장 냉각을 가리키자 시장에서는 금리인하 기대감이 크게 부풀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CME Fedwatch)에 따르면 9월 금리인하 확률은 한때 80%대를 넘겼고, 7월 금리인하 확률도 20%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노동부 발표로 다시 한번 큰 폭의 고용 증가세가 나타나며 연준의 금리인하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견조한 고용 지표에 올해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씨티그룹와 JP모건체이스도 7월로 예상했던 연준의 금리인하 시기를 각각 9월과 11월로 늦췄다. 씨티와 JP모건은 다른 투자은행(IB)들이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을 9월 이후로 변경하는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7월 인하 전망을 유지해 왔는데 이번을 계기로 돌아선 것이다.

경제 지표 혼조세, 고·저소득층 소비격차가 원인

연준의 금리인하 결정에 주요 근거로 사용되는 경제 지표가 혼조세를 보이는 원인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비 양극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비농업고용지표는 4월 소비지출 감소와 5월 구매관리자지수(PMI)의 약한 수치와 비교하면 매우 상반되는 양상이다.

사실상 실업률 지표도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전체 실업률은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20~24세 젊은 층의 실업률은 7.9%로 전년 동기의 6.3%보다 오히려 상승했다. 정부 발표 통계만 혼란을 주는 게 아니다. 미국 식품 판매업체 캠벨수프는 최근 소비자들이 식료품 소비를 더욱 줄이고 있다는 이유로 매출 전망치를 낮췄지만, 크루즈 여행 등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사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달 전체 상품 생산 부문 일자리는 2만5,000개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레저·숙박 부문에선 4만2,000개가 급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 같은 양상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식비로 지출하는 저소득층의 경우 일자리 전망에 불안감을 느끼는 반면 고소득층의 소비는 여전히 활발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크루즈 승객들의 가구 소득은 일반적으로 평균 이상이다. 게다가 고소득층에게는 최근의 경제 상황도 나쁘지만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부유층 대부분은 집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초저금리로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받았거나 이후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타 금리 부담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증시에서는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고수익을 내고 있으며 고금리를 통해 기록적인 수준의 투자 수익도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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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전조등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공식 깨졌나

이런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경기 침체’라는 공식이 깨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2년물 금리가 10년물 금리보다 높게 거래되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여겨지는데 미국의 금리 역전 현상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간 이어지고 있음에도 경제는 여전히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에 따르면 지난 6일(현지시간) 기준 10년물과 2년물 국채 금리 차이는 -0.43%p다. 이 같은 기현상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0.75%p(자이언트 스텝)의 공격적인 첫 금리인상을 단행한 직후인 2022년 7월부터 23개월째 유지되고 있다. 통상 만기가 길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채 금리가 높기 마련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지난 1978년 이후 약 50년간 발생했던 여덟 차례의 경기 침체 전에 모두 2년물-10년물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고 통계적으로 1년 6개월 뒤부터 본격적인 불황이 발생했다. 여기엔 2000년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등도 포함된다.

이에 2022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포착됐을 당시에도 곧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했다. 2022년 말 블룸버그가 미국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28명의 경제학자 중 70%가 2023년에 경기가 침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연준의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장의 예측과는 달리 미국 경제지표는 아직까지도 탄탄한 모양새다. 미국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보다 0.6%p 오른 2.5%를 기록했고, 올해 경제성장률은 2.1%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국면이 아닌데도 장단기 금리 역전이 지속되는 이유로 장기 국채 수요 급증을 꼽는다. 실제로 연준을 포함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가계의 주택 구입과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장기채 매입 규모를 확대했다. 최근에는 고령화가 심화함에 따라 연기금과 보험사까지 장기채 보유량을 늘리면서 장기 금리가 과거보다 더 낮게 형성됐다.

기준금리가 급등한 점도 장단기 금리 역전에 영향을 미쳤다. 연준은 2022년 1월(0.5%p 인상)을 시작으로 1년 6개월 만에 금리를 무려 5.25%p 올렸다. 기준금리가 급등하자 이와 연동되는 단기채 금리도 가파른 속도로 올랐고, 결과적으로 장단기 금리차도 더욱 확대됐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요인은 아직도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연기금과 같은 장기물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데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 또한 다시 후퇴하고 있다. 이에 그간 경기 침체 경고등 역할을 해 왔던 장단기 금리 역전에 대한 통념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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