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최저임금 논쟁 “업종별 차등적용” vs “임금 인하 의도”
경영계, '최저임금법 제4조'에 따른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
소상공인들 "숙련도 낮은 편의점·PC방 등 구분 적용해야"
노동계 "노동자 생계 보장이라는 본래 취지에 맞지 않아"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구분 적용’ 논의를 앞두고 소상공인들이 영세 사업주의 경영난 등을 고려해 업종별 차등적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영계도 업종별 구분에 이어 5인 미만 사업장, 고령자 등 사업장 규모나 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동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최저임금법의 취지를 훼손한다며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소상공인들 “임금 부담에 폐업 속출, 업종별 차등적용해야”
18일 소상공인연합회는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 대회의실에서 ‘2025년도 최저임금 소상공인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법 제4조 제1항에 명시된 업종별 구분 적용, 최저임금 제도 개선, 주휴수당 폐지 등을 촉구했다. 유기준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은 “최저임금은 지난 2017년 6,470원에서 2024년 9,860원으로 7년 새 50% 이상 상승했다”며 “이 기간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2017년 158만 명에서 2023년 141만 명으로 17만 명 감소했지만,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15만 명에서 437만 명으로 22만 명이나 증가하는 등 소상공인이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고 말했다.
이날 소상공인들은 비숙련 노동자가 필요한 업소나 영세한 사업장도 시간당 9,860원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다 보니 폐업에 이르는 경우가 속출한다고 호소했다. 유 직무대행은 “특별한 기술이나 관련 경력이 없는 저숙련 초년생들도 낮은 허들로 쉽게 진입할 수 있고, 노동생산성도 낮은 편의점·커피숍·PC방 등의 업종에서는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근로자에게 사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인건비 부담을 낮춰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업종별 구분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휴수당을 폐지하고 소상공인 고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카페 사업주 서지훈 대표는 “소상공인에게는 관리 어려움을, 근로자에게 메뚜기 근무를 강요하는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시녀 원장도 “미용업계는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며 고용에 대한 부담이 커져 1인 사업장이 급증했다”며 “근로와 교육이 병행되는 기간을 위한 직업능력 개발기금 등을 만들어 고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계 “영세 사업주 경영난에 최저임금 미만율 13.7%”
경영계도 소상공인들과 뜻을 같이하는 모습이다. 17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주최한 최저임금 관련 토론회에서 경영계는 업종 구분에 이어 5인 미만 사업장, 고령자 등 사업장 규모·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자고 주장했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명예교수는 “숙박‧음식점업, 농림어업 등 최저임금 미만율이 현저히 높은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며 “법 개정을 통해 5인 미만 사업장 등 규모별, 고령자 등 연령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위한 제도 개선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업종별 최저임금 시행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업계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을 근거로 최저임금법 제4조에 따른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최저임금 미만율은 전체 임금노동자 중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 미만인 임금노동자의 비율로,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율을 보면 전체 근로자의 13.7%가 최저임금액 미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세 사업주가 경영난 등으로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300만 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는 것이다. 업종별로는 숙박‧음식점업, 농림어업, 보건‧사회복지업, 도소매업 등에서, 규모별로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체, 연령상으로는 60세 이상 고령자가 가장 많았다.
최저임금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최저임금의 역설’이 발생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10년간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최저임금은 70%나 증가했지만 노동생산성은 28% 상승하는 데 그쳤다. OECD(국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22년 기준 43.1달러로 추산된다. 노동생산성은 국내총생산(GDP)을 총근로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한국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2년 OECD 평균 노동생산성은 53.8달러인 데 반해 한국의 실질 최저임금은 2012년 5.6달러(시급 4,580원)에서 2022년 9.5달러(시급 9,160원)로 10년 새 2배 증가했다.
민주노총 “최저임금 차등적용, 전체 근로자 임금 하향 가져올 것”
그러나 노동계는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차등적용은 결국 최저임금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차등적용이 전체 근로자 임금 수준의 하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번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기 시작하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이유로 최저임금이 낮춰 적용할 것이란 우려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리의 허구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경영계의 주장은 결국 최저임금을 인하하자는 의미라고 비판한 바도 있다. 연구원은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절반 이상이 단일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국가 최저임금과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을 병행하는 국가의 경우도 대체로 국가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례로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하는 독일, 벨기에, 호주 등은 모든 업종의 최저임금이 국가 최저임금보다 높고 루마니아, 아일랜드, 체코는 특정 업종과 직군에 대해 가산된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일부 업종과 지역의 최저임금을 국가 최저임금보다 낮추는 데 목적을 둔 한국 경영계의 주장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사례”라고 꼬집었다.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적용의 근거로 제시한 ‘경영 악화’도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경영계가 차등적용을 요구한 3개 업종의 경우 전체 영업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인건비보다 원자재 등 가격 상승, 제품·서비스 수요 감소가 경영 악화의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지역별로 차등적용 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 간 노동 이동성이 활발한 한국에서는 차등 임금이 극심한 양극화와 지방소멸을 부추길 수 있다”며 “업종과 지역, 국적, 연령까지 차별적이고 위헌적인 ‘최저임금 차등화’ 주장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