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증시 中보다 투명성 부족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꼬집은 해외 투자자들
자본시장연구원, 해외 투자자 인터뷰 담은 보고서 발표
투명성·일관성·예측 가능성 등 해외투자자 지적 쏟아져
금융당국, '밸류업 공시' 등 소통과 신뢰 제고 조치 강화
한국 증시가 세계 상위권의 규모에도 저평가되는 이유에 대해 제도와 규제보다는 이를 적용하는 투명성과 일관성,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이 또다시 불발된 가운데, 향후 재평가를 위해서는 자본시장 전반에 대한 절차와 관행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해외 투자자들 쓴소리 “韓 증시는 수수께끼 같다”
지난달 30일 자본시장연구원(KCMI)은 해외 금융기관 15곳의 관계자 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 시장 접근성과 관련 경험 관련 인터뷰를 분석한 ‘한국 자본시장의 시장 접근성: 해외금융기관의 시각’ 보고서를 공개했다. 인터뷰 대상은 익명 처리됐으며 인터뷰 결과는 인용문 형태로 소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뷰 참가자 대부분이 “한국의 자본시장을 선진시장으로 봐야 하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참여자 중 한 명은 “선진시장의 공통점은 개방된 경쟁과 동등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는 규칙·규제”라며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경쟁이 제한적이고 해외 금융사의 시장 참여나 규칙 적용이 동등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한국 시장은 거래 규정이나 지침이 홍콩, 싱가포르 등 선진시장은 물론 심지어 중국에 비해서도 투명하지 못하다”며 “수수께끼 같은 점이 많고 특히 시스템 트레이더에게는 공정한 경쟁 시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 글로벌 헤지펀드 관계자는 ‘옴니버스 계좌’ 운용의 제한을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여러 계좌를 운영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실수를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거의 없다”며 “한국은 이로 인한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글로벌 은행 관계자는 “공매도 종목이나 지침이 불명확해 비효율성이 발생한다”며 “공매도 금지 지침의 원인이나 목적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밸류업 공시’ 시행하지만, 참여도 높을지 미지수
지난해 11월 단행한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MSCI도 부정적 평가를 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각) MSCI는 “금융위원회의 공매도 금지로 시장 접근성이 제한된 데다 갑작스러운 규칙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2023년 시장 분류’에서 한국을 선진국이 아닌 신흥국(이머징)으로 유지했다. MSCI 지수는 글로벌 투자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지표로 한국은 지난 2008년부터 선진국 지수 편입을 노리고 있지만, 15년간 고배를 마시고 있다.
MSCI의 평가는 앞서 보고서에서 드러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지적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공시’를 도입했다. 밸류업 공시는 주주와 예비 투자자에게 정보와 미래 계획을 중점적으로 제시하는 일종의 ‘비전 보고서’로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해 이를 이행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밸류업 공시는 특히 투자자와의 소통을 통한 신뢰 회복에 초점을 뒀다. 금융위는 “상장사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영위하고 확장하는 만큼 대중에게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저성장 시대에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주주와 예비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소통의 간극을 줄이고 신뢰를 확보하는 단계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자율성에 기대는 구조인 만큼 참여도가 높을지는 미지수다. 밸류업 공시의 원조인 일본도 자율 공시 제도를 택했지만. 참여도가 높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 프라임시장 상장기업 중 40%만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다. 스탠더드시장에서는 11.8%만 공시에 참여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공시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기획재정부, 국민연금 등과 함께 다양한 인센티브를 논의하고 있다.
접근성 제고 위해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도 폐지
지난해 말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를 31년 만에 폐지하기도 했다. 그동안 외국인이 상장 증권에 투자하려면 금융감독원에 사전 등록을 해야 했지만 이제 별도 등록 없이 계좌를 만들어 투자할 수 있다. 계좌 정보는 법인 고유번호(LEI), 개인 여권번호 등을 식별 수단으로 하며 이미 외국인 투자자 등록을 한 경우 발급받은 투자등록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서 지적됐던 외국 증권사의 옴니버스 계좌 운용도 좀 더 편리해졌다. 옴니버스 계좌란 다수 투자자의 매매를 단일 계좌에서 통합 처리할 목적으로 외국 금융투자업자 명의로 개설된 계좌로 금융위는 계좌 명의자의 최종 투자자별 투자 내역 보고 의무를 월 1회로 완화했다. 사전심사를 원칙으로 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장외거래도 사후 신고 대상을 확대해 투자 접근성을 높였다.
금융당국은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 폐지 등의 조치가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폐지 이후 외국인 투자자금이 증가했다. 지난달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22조9,95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04년 12조2,393억원으로 올해는 2배에 가까운 금액이 유입됐다.
다만 당국이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를 폐지하는 등 높은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책의 효과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해외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 등록은 폐지됐지만 계좌 개설 이후의 프로세스는 여전히 변한 게 없다”며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치 이러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