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혈세 투입된 대한축구협회, ‘문체부 조사’ 움직임에 “이런 나라 없다” 반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잡음에 문체부 나서
축협 측 ‘FIFA 독립성’ 언급하며 거세게 반발
축협 정부 보조금 연 110억 수준, 민낯 들춰지나
홍명보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은 대한축구협회(축협)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압박에 나섰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축협에 대한 직접 조사를 예고했다. 축협은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에 “이런 나라는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홍명보 선임 파문, 문체부 조사 착수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문체위 소속인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축협에 이사회 회의록 공개를 요청했다. 강 의원은 16일 SNS에 “홍명보 감독 선임 직후 축협에 이사회 회의록 공개를 요청했다”며 “축협은 자율권을 앞세워 거부하더라”고 전했다. 강 의원은 이어 “최근 유로 2024에서 우승한 스페인왕립축구연맹은 이사회뿐 아니라 총회, 집행위원회의 결정사항까지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며 “축협이 강조하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독단과 밀실 행정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월 위르겐 클린스만(Jurgen Klinsmann) 전 감독 경질 후 5개월 동안 한국 국가대표팀을 이끌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을 진행한 축협의 최종 선택은 홍 감독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감독 선임 과정이 불투명하고 비정상적이었다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퇴한 뒤 갑작스레 권한을 이어받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단독 결정으로 홍 감독을 내정하는 등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감독을 알아보다가 급작스레 국내파 감독을 선임한 점과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에 생각이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하다가 갑자기 180도로 자세를 바꾼 점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체육계 비리 조사 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도 이달 초 관련 신고를 접수 받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리센터는 체육계 인권 보호를 위한 전담 기구이자 스포츠 비리 신고 처리 기관이다. 국민체육진흥법상 광범한 스포츠 비리 사안에 대한 신고를 받고, 접수 시 조사에 나서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권한 남용, 절차적 하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문체부 역시 전날 축협을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체부 고위 당국자는 “축협의 자율성을 존중해 언론에 기사가 나와도 지켜봤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이라며 “감독 선임 과정에 하자가 없는지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축협의 문제가 발견되면 문체부가 취할 적절한 조처로 감사 등이 거론된다. 축협은 올해부터 정부 유관기관에 포함돼 문체부가 일반 감사를 추진할 수 있다.
‘FIFA·월드컵 출전’ 방패로 쓰는 축협
이에 축협 측은 기술적·행정적으로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피력하며 정부와의 전면전을 예고했다. 축협 고위 관계자는 “스포츠의 운영적 측면을 (정부 기관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며 “그렇게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고 거세게 항변했다. 이런 축협의 입장은 국가협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강조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정관과 닿아 있다. 각국 축협의 연합체인 FIFA는 산하 협회에 대한 정치적 간섭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FIFA 정관에도 이를 명시한 조항이 있다. 정관 14조 1항과 19조 1항은 ‘각국 축협이 자신의 업무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그 과정에서 제3자의 과도한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적시돼 있다. 15조에도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된다. 실제로 이라크·수단·쿠웨이트·인도 등에서는 정부가 축협 행정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이유로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민적으로 지탄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한 축협이 FIFA 정관을 구실 삼아 외부 감시와 견제를 회피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한 축협 관계자가 “최악의 경우엔 (협회 자격 정지로 국제대회 출전권을 뺏겨) 월드컵 본선에 못 나갈 수 있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 축제를 무기로 협박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민 혈세 3,000억원 투입했지만, 사업 수익은 미미
최근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두고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이었던 박주호가 선임 과정 뒷이야기를 폭로하면서 축구계를 뒤집어놨고, 박지성 등 한국 축구 전설들도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등 축협과 관련해 연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동국·이영표·이천수 등 전 국가대표 선수들이 축협의 운영 방향에 대해 연달아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축구계 안팎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곳인 만큼 재정과 관련된 지적이 많다. 축협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정부 재정 비중이 상당한 보조금과 스포츠토토 등으로 알려진 복표 수익을 포함해 계산할 경우 언뜻 재정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축협의 당기순이익은 최근 5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입장료 수익 등이 없어 38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2020년을 제외하곤 늘어난 모습이다. 당기순이익은 2021년 68억원, 2022년 138억원, 2023년 192억원 등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업 수익만 떼놓고 보면 지난 11년간 약 1.5배 늘었다.
문체부에 따르면 축협의 정부 보조금 수익은 지난해 기준 연간 277억원에 달한다. 이는 정몽규 축협 회장이 부임한 지난 2013년 86억원에서 3배 증가한 수준이다. 브라질 월드컵 등으로 2014년에 일시적으로 100억원을 훌쩍 넘겼던 때를 제외하면 2016년까지 100억원 아래서 움직였던 정부 보조금 수익은 정 회장의 2기 집행부가 들어선 2017년 151억원으로 급증한 이후 한번도 100억원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카타르 월드컵이 개최됐던 2022년 당시 보조금은 366억원으로, 홈페이지에 공지된 손익계산서상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조금 외 복표 수익도 최근 5년간 200억원 안팎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축협은 2020년까지만 해도 보조금과 복표 수익이 연간 300억원이었으나 2022년부터 500억원 안팎으로 급등했다. 이렇게 지난 11년간 축협이 쓴 보조금은 1,809억원, 복표 수익은 2,058억원으로 모두 3,867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조금과 복표 수익을 제외하고 손익계산서를 다시 들여다 보면 11년 동안 연간 300억원대의 적자가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동안 중계료나 입장료 수익 등은 개선됐으나 후원사 수익은 사실상 11년간 제자리 상태 수준인 데다, 비용 중 지출 규모가 가장 큰 대회운영비가 36%, 지원금이 162% 증가하는 등 각종 비용이 늘어난 결과다. 이런 가운데서도 훈련비는 고작 12% 증가에 그쳐 선수들 훈련에 들어가는 투자는 미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축협은 손익계산서에서 적시된 보조금이 모두 정부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월드컵과 아시안컵에 참가할 때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받는 돈도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축협 측이 밝힌 지난해 FIFA와 AFC의 보조금은 총 156억원으로, 이를 감안해도 축협의 사업수익 중 정부 재정에 해당하는 금액은 연간 30%에 이른다. 축협 설명에 따라 연간 정부 보조금이 110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11년간 들어간 정부 재정을 계산해 보면 복표 수익 총 2,058억원을 포함해 무려 3,0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축협이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사업 수익은 11년간 고작 1.5배 상승에 그친다는 점이다. 주요국에서 축협의 기능을 하는 축구 단체에서는 복표 수익은 물론, 정부 보조금이 없는 경우도 많다. 브라질, 미국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브라질은 지난 10년간 약 3배, 미국은 2배가 넘는 수익 개선을 일궈냈다. 일본축구협회(JFK)의 경우 정부 보조금이 있지만 그 비중이 5%도 안 된다. 이렇듯 정부 도움이 거의 없어도 JFK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난 10년간 2배 가까운 수익 증가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