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역풍 부른 시진핑의 유럽 순방
유럽, 시진핑 주석 방문 계기로 경제적·군사적 위기의식 고조
중국 무역 관행 맞서 수출 업체 및 전기차 제재 조치 시행
대중국 보호 무역 본격화 따른 유럽-중국 대치 국면 전망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 5월 엿새 일정으로 진행된 시진핑(Xi Jinping) 주석의 유럽 순방은 유럽인들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과 중국-러시아 간 전략적 협력의 위험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중국 정부의 팽창주의적 산업 정책과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녹색기술 제품 수출 급증에 맞서 역내 시장을 보호하고자 중국 수출 업체에 대한 제재와 함께 중국산 전기차에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y, 부당한 수출 보조금 효과를 상쇄하려는 목적의 차별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시 주석의 방문은 유럽-중국 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지정학적 요인을 부각시키며 중국을 향한 유럽의 보호 무역과 신중한 관계 설정 방침을 재확인하게 했다는 평가다.
유럽연합, 대러시아 군사 장비 수출 중국 기업 제재
5년 만에 다시 이뤄진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은 유럽인들에게 있어 현실을 깨닫게 된 점검의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 주석이 이 시점에 시간을 들여 유럽을 방문했다는 사실과 함께, 방문국으로 선택한 국가들(세르비아, 헝가리, 프랑스) 자체가 시사하는 바도 컸다.
이번 방문에서 시 주석이 주요 표적으로 삼은 대상은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더불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EU의 ‘경제 안보 전략’을 강력히 지지한 마크롱의 행적을 볼 때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중국이 러시아와 진행해 온 끈끈하고 잦은 공식 교류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현시점 러시아의 대우크라이나 공세는 중국의 경제적·재정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석유 및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트럭, 마이크로칩, 드론 등 필수 군사 장비를 공급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시 주석 방문 당시 군사적 목적에 이용 가능한 장비 수출 업체들에 대한 제재를 명확히 전달했다. 이후 EU는 시 주석 방문 한 달 후인 지난 6월 24일 9개의 중국 업체를 추가한 14번째 대러시아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유럽, 중국산 환경 기술 제품 홍수로 대규모 무역 적자 직면
앞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중국의 경제 모델과 팽창주의적 산업 정책이 수출 시장과 유럽 단일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토해 낸 바 있다. EU는 수 세기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한 중국 시장 진출 대신 중국의 산업 정책에 맞서 역내 시장을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지만, 중국 당국의 자국 업체 부당 지원에 대응하고자 시행한 보호 조치들은 이렇다 할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상황은 역외 시장으로까지 이어져 현재 유럽 산업은 중국의 시장 왜곡과 저가 공세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상태다.
중국의 유럽 시장 침투가 본격화 한 건 4년 전부터다. 지난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의 중국산 제품 수입이 급증했는데 이때는 주로 팬데믹과 관련된 제품에 국한됐다. 하지만 최근 EU의 대중국 무역은 구조적인 문제로 발전했다. 유럽의 친환경 경제 이행에 따른 녹색기술 제품 수입이 급증하면서 수출 정체 및 감소와 맞물려 대규모 무역 적자에 빠진 것이다. 시 주석이 강조하는 중국 번영을 위한 ‘신성장 동력 발굴’ 정책도 불공정 경쟁에 대한 EU의 우려를 한층 심화시켰다.
최근 중국 경제에 대한 통계는 시 주석의 야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산업 생산량이 내수를 앞질렀고 수출도 지난해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풍력 발전용 터빈까지 중국의 녹색기술 관련 수출 성장이 가파르다. 중국이 부상하기 전 유럽 기업들이 오랫동안 주도했던 분야라는 점에서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미국도 시 주석 방문 이후 기존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보다 더욱 강화된 수입 관세 부과를 통해 무역 장벽을 드높였다. 중국산 제품 수입을 억제하고 중국 기업들의 미국 내 직접 투자를 막겠다는 의도다.
유럽연합,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으로 보호 무역 본격화
문제는 중국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이 프랑스 방문에서 보여준 자세나 미국의 보다 강력해진 대중국 제재가 이를 증명한다. 이런 국면에서 EU 집행위가 지난 6월 12일 세계 무역 기구(WTO) 차원에서 진행 중인 반(反)보조금 조사와 연계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상계관세를 인상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연한 조치로 보인다.
그간 중국은 유럽이 자국의 최대 수출 시장임을 의식해 EU의 대중국 조치에 대한 반격은 대부분 말잔치에 그쳤다. 실제 실행한 대응 조치는 6월 17일 유럽산 수입 돼지고기에 대한 반덤핑 규제 위반 조사에 들어간 게 전부고, 강력한 제재를 천명했던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 관세 부과 조치는 시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EU 내에서도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한 불안감이 짙어지는 분위기다. 더욱이 EU 회원국들은 집행위의 결정에 단합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미 독일과 스웨덴은 해당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다른 회원국들도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집행위가 시행 가능한 보호 무역 조치를 동원해 착수한 중국 무역 관행에 대한 조사는 이것만이 아니다. 중국산 전기차가 첫 번째 대상이 된 것은 자동차 산업이 유럽 경제의 핵심이기 때문이고, 향후 추가 조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EU 집행위는 자유 시장을 옹호하고 다자간 협력을 촉진하는 기존의 무역 정책에서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한 개입주의 전략으로 완전히 선회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역내 산업 보호 조치와 중국의 산업 정책 대치 이어질 듯
게다가 두 가지 관점에서 EU의 결정은 번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먼저 유럽의 조치는 선제적이기보다는 세계 질서의 변화에 따른 대응 경향이 짙다. 중국의 팽창주의적 산업 정책은 거대한 경제 규모와 맞물려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왔고 결국 미국까지 산업 정책과 보호 무역 조치를 동원해 대처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는 포퓰리즘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여론에 민감한 회원국들이 중국에 대해 보호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도록 EU를 압박할 리 만무하다는 얘기다.
이런 의미에서 시 주석의 유럽 방문은 결과적으로 유럽 국가들에 일종의 깨달음을 선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깨달음은 대중국 갈등 고조에 대응해 유럽의 산업 기반을 지켜내고 중국의 러시아 지원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으로 귀결됐다. 중국이 어떤 형태로 변화의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유럽 방문에서 보여준 시 주석의 태도와 신성장 동력을 향한 거침 없는 열망에 비춰볼 때 변화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Alicia Garcia-Herrero) 브뤼겔(Bruegel, 벨기에 브뤼셀 소재 정책 연구소) 선임 연구원 겸 홍콩 과학기술대학교(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겸임 교수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China sees mixed results wooing Europe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