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세사기 공포, 임차권등기 신청 건수 역대 최고 수준
올해 7월까지 4만 건 육박, 지난해 대비 급증
2030세대 청년들이 60~70% 이상 차지
공공임대 최장 10년 무상거주 대책 내놨지만
선구제 후회수 시행, 나쁜 선례로 남을 것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한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대와 30대가 주로 신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뚜렷한 전세사기 방지책이 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청년들이 전세사기 위험에 노출돼 있단 점에서 우려가 커진다.
임차권등기 신청 폭증
22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임차권등기 신청 건수는 3만9,02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8,467건보다 3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지난해 전체 전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4만5,445건으로, 2010년 대법원이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를 공개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한 바 있는데, 올해는 7개월 만에 4만 건에 육박한 것이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난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을 때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로, 등기를 신청한 임대인은 이사를 하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인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된다. 이런 임차권 등기 신청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한 연령대가 대부분 20대에서 30에 청년들이라는 점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들이나 신혼부부에게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20대~30대의 신청 건수는 2만4,211건으로 전체 3만9,021건 중 60%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전체로 보더라도 20대~30대 신청건수가 3만2,854건에 달했는데, 이는 전체의 72%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정부와 국회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나섰지만 사회초년생들의 임차권등기 신청은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2년 전 전셋값이 고점일 때 체결됐던 전세 거래 만기가 올해 말까지 계속해서 돌아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임대차법이 낳은 전세사기 후폭풍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의 실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대차법이 계속되는 한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사기는 언제든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2020년 8월 문재인 정부가 임차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입법 시행한 주택임대차보호법(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료와 임대기간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전세시장의 불길을 크게 키웠다.
특히 ‘임차인=약자’라는 프레임 속 세입자의 권한을 강화한 계약갱신청구권은 오히려 전셋값 급등을 부추겼다. 전세자금 대출을 지렛대 삼아 집주인들의 ‘갭투자’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빚으로 쌓은 모래성은 삽시간에 무너졌다. 전셋값이 급락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역전세’와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는 ‘깡통전세’를 대거 배출했고 조직적인 전세사기 범죄를 세상에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 또한 전월세 상한제는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4년간 전세가격이 사실상 고정되면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왜곡됐고, 이로 인해 전세시장의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결국 피해자 구제에 ‘수조원 혈세 투입’
정부와 국회가 내놓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대책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야당의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 대신 정부안을 기초로 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전세사기특별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자로부터 넘겨받은 우선매수권으로 피해주택을 경매로 낙찰받아 피해자에게 공공임대로 제공, 최장 10년간 무상으로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더 거주하기를 원할 경우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10년 더 거주할 수 있다.
피해자가 다른 곳에서 살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다른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받거나 지원액을 차감하고 남은 경매차익을 즉시 돌려받을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에서 살다가 민간임대주택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경우 입주선택권을 부여해 최장 10년간은 무상 거주를 보장한다. 아울러 전세사기 피해자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신탁사기주택과 불법 소지가 있는 건축물, 선순위 피해주택도 적극 매입하고, 보증금 한도는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했다. 7억원 구간 세입자도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대항력이 없는 이중계약 사기 피해자도 특별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며 피해주택에 전세권을 설정한 경우에도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선구제 후회수는 수조원에 달하는 국민 혈세가 투입될 뿐만 아니라, 상당액은 회수가 불투명하다. 또 전세사기특별법은 사실상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대신 상환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은 결과적으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