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원 들인 ‘박원순표’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 완공 2년 만에 철거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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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 철거 공청회 열기로
전 구간 일평균 보행량, 공사 전 예측의 11% 불과
상권 조성 안 된 삼풍상가·호텔PJ 구간 우선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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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일대/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시가 1,100억원을 들여 만든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를 철거한다. 박원순 전 시장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는 세운상가와 청계상사, 진양상가 등 7개 상자를 잇는 1km 다리로 2022년 전 구간 개통됐다. 하지만 개통 이후에도 보행량이 공사 전 예측량에 10분의 1 수준에 그치면서 오히려 인근 지역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취임 이후 공중 보행로를 비롯한 세운상가 보존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오세훈 서울시장은 보행로 일대를 걷어내고 녹지를 조성하는 새로운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공중 보행로가 일대 활성화 저해”

2일 서울시는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를 철거하기로 하고 이와 관련해 이달 중 주민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며 “주민 의견을 수렴해 내년부터 철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는 종묘, 세운상가, 청계·대림상가, 삼풍상가·PJ호텔, 인현·진양상가까지 7개 상가 건물의 3층을 연결하는 길이 1㎞의 다리 겸 보행로다. 박원순 전 시장의 세운상가 보존·재생 정책의 핵심 건설사업으로 총 1,109억원이 투입됐으며 2016년 착공해 2022년 전 구간 개통했다.

서울시는 공중 보행로가 개통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해당 시설이 일대 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10월~2023년 10월 기간 중 해당 공중 보행로 전 구간의 일평균 보행량은 1만1,731건으로 공사 전 예측량인 10만5,440건의 11%에 불과했다. 상권이 발달한 청계·대림상가 공중 보행로의 경우 일평균 보행량이 4,801건으로 집계됐지만 다리만 설치된 삼풍·PJ호텔은 보행량이 1,757건에 그쳐 제구실을 못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공사 전후를 비교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7개 상가 지상의 일평균 보행량은 공사 전 3만8,697건에서 공사 후 2만3,131건으로 40% 감소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최근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서 “세운상가 일대의 공중 보행로는 1,109억원을 투입하고도 당초 사업의 목적인 보행량 증대를 통한 상가와 주변 지역 재생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감사원은 이어 당시 서울시가 사업성 부족, 콘텐츠 개발, 과도한 사업비 등에 대한 투자심사위원회의 지적에도 오히려 사업비를 300억원 더 늘리는 등 졸속 행정을 해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사부터 완공 이후까지 상인들 불만 증폭

애초 서울시는 공중 보행로 건설로 상권이 활성화되고 인근 환경이 개선되면 세운상가 상인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착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상인들은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공사 기간에는 상가 곳곳에 철근이 노출돼 흉물이 돼 버렸다는 의견이 많았고 상가 내부는 물론 인근 골목의 공기 질도 문제가 됐다. 공사로 인한 분진 외, 보행 데크가 천장을 막아 자동차 매연이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생긴 문제다. 실제로 2018년 세운상가의 초미세먼지는 서울시의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장기간 공사에 노출된 상인과 시민들의 안전 문제도 심각했다. 세운상가의 건물들은 1968년 준공돼 공사 당시 이미 50년을 훌쩍 넘은 노후 위험건축물이었다. 지난 2014년에는 정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재난위험시설로도 지정됐다. 시공사는 보행로 조성 공사와 안전 보강을 함께 진행했으나, 공사 과정에서 설치된 철제 빔들이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오랜 기간 현장에 노출되면서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 때문에 공사 기간 내내 현장에는 보행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가득했다.

여기에 인근 주민들의 소음 민원으로 야간 공사가 중지되는가 하면 공사가 진행되는 구간에서는 매설된 전기·통신·가스 배선 등이 계속 튀어나오는 바람에 번번이 공사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리하게 배전을 건드리다 화재가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상인과 주민의 반발로 부지 확보가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완공 기한이 지연됐다. 공중 보행로는 애초 2018년 9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4년이 넘게 완공 시점이 밀리면서 6년 가까이 공사가 계속됐고, 그 과정에서 1층 상가 시설은 슬럼화가 됐다.

일부 구간에서는 콘크리트와 폐기물 등으로 사실상 상가 진입로가 막히면서 매출이 감소하는 등 상인들의 경제적 손실도 심각했다. 문제는 완공 이후에도 상가 내 유동 인구나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는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전자 공구 상가 중심으로 고객층이 명확한 세운·청계상가와 달리 평범한 음식점이나 마트 등이 주로 입점해 있는 진양·인현상가 상권의 경우 새로 지은 3층 보행로에 식당이나 카페가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노후화된 1층 상권이 위태로워졌다.

보행로 곳곳에 구조적인 문제도 발견됐다. 일례로 PJ호텔 구간은 지상에서 보면, 공중 보행로를 잇기 위한 교각이 줄줄이 박혀 있다. 왼쪽 통로에는 화장실과 공공임대 시설을 설치하다 보니 사람이 오가는 게 어렵고 반대편 통로는 자동차가 다녀 걷기에 위험하다. 안전성에 대한 문제도 여전하다. 낡은 데크를 보강하는 과정에서 철골 산화, 기둥 파손, 철제 난간 부식, 도장 불량, 누수 등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급기야 지난해 9월에는 건물 노후화로 세운상가 콘크리트 외벽 일부가 떨어져 1층 상인이 발가락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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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발표한 ‘녹지생태조심 재창조 전략’ 중 세운상가 인근 복합 공공공간 조성 계획/출처=서울시

상가 매입 후 상인 퇴거까지 10년 소요 전망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가 포함된 재정비 촉진 지구는 오세훈 시장과 박 전 시장의 정책이 충돌했던 대표적인 사업지다. 오 시장은 재임 당시인 2009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 지구로 지정해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인근 8개 구역을 통합 개발하는 ‘재정비 촉진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2014년 박 전 시장은 전임 오 시장이 세운 철거 계획을 취소하고 도시 재생 중심으로 재정비 촉진 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다 2021년 다시 서울시장에 취임한 오 시장이 세운상가를 전면 재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공중 보행로 철거가 불가피해졌다.

앞서 오 시장은 2021년 서울시의회 시정질문 자리에서 공중 보행로를 포함한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듬해 4월에는 세운상가를 포함한 도심 일대에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내용을 담은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해당 사업은 도심 건물의 건폐율은 낮추고 층수와 용적률을 올려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그 대가로 얻은 공공기여로 공원과 녹지를 만들어 도심 녹지 비율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 시장은 “공중 보행로가 이제 겨우 완성돼 활용이 임박했지만, 이번 계획을 위해서는 철거해야 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세운지구가 있는 ‘종묘~퇴계로 일대’ 44만㎡를 정비해 현재 3.8%에 불과한 도심 녹지 비율을 15%까지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공청회를 통해 철거 계획을 확정 짓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보행로를 허물 수는 없다. 공중 보행로 1㎞ 구간 중 삼풍상가·호텔PJ 간 보행교 250m를 우선 철거하되 나머지 750m 구간에는 상가 건물에 조성돼 있어 서울시가 상가를 통째로 매입하고 영업 중인 상인들이 전부 퇴거한 뒤에야 공중 보행로 철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고려하면 공중 보행로는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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