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 보호무역주의 확산 경고 “빈민국 최대 피해, 선진국도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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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 확산 시 저소득 국가에 타격, 선진국도 생산비용 증가
2차 무역 전쟁 포문 개방, 세계 불평등 해소 위한 '재세계화' 촉구
트럼프·해리스 중 누가 당선되든 보호무역주의 심화 '불가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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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보호무역주의가 최빈국에 가장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데다, 선진국에도 비생산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지난 30년가량 빈부 격차를 완화해 온 자유무역이 위협받으면서 앞으로 이들 경제 간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그간 빈곤국의 소득 증가에 기여한 자유무역주의가 후퇴할 경우 글로벌 불평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WTO, ‘보호무역주의’ 확산 경고

9일(현지시간) WTO는 연례 포럼을 앞두고 공개한 보고서에서 자유무역이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낮추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세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재세계화(reglobalization)’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WTO가 출범한 1995년부터 2022년까지 저소득 국가와 중위 소득 국가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서 38%로 불어났으며, 이들 국가 사이에서 발생한 무역이 전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5년 5%에서 2021년 19%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또한 이 기간 저소득 국가·중위 소득 국가의 1인당 소득은 세 배 증가했다.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Ngozi Okonjo-Iweala) WTO 사무총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무역이 빈곤을 줄이고 번영을 확산시킨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무역이 세계를 더 불평등하게 만든다는 현재 널리 퍼져 있는 관념을 반박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정학적 압력으로 인한 세계 경제 분열 지속은 기술 최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지속적인 추격 성장을 위해 해외 시장 접근에 의존하는 저소득 경제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세 장벽을 세워서는 세계화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부유한 국가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온코조 이웰라 총장은 “무역의 제한은 일반적으로 특정 사회 집단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방법으로 생산 비용을 증가시키고 불만을 가진 무역 파트너로부터 값비싼 보복을 불러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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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흐름 뚜렷

이번 보고서는 주요국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나와 이목을 끈다. 자칭 ‘관세맨(Tariff Man)’인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 재입성 시 전 세계 수입품에 10% 보편관세, 중국산 수입품에 60% 초고율 관세 부과 등 무역장벽 강화를 천명했는데, 이 같은 관세 인상은 각국의 보복관세를 초래해 선진국 경제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1기 행정부 시절 미국의 관세 인상이 단적인 예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근간으로 한 ‘트럼프노믹스’는 시행 초부터 날 선 비판에 직면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15명을 포함한 미국 경제학자 1,140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을 정도다. 이들은 1930년대 대공황이 심해진 배경에는 미국발 관세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역설했다. 관세는 궁극적으로 국제 무역규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미국 수출업자가 해외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란 지적이다.

각국 정상과 글로벌 CEO들의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18년 1월 열린 다보스포럼의 경우 ‘트럼프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 전 총리는 “국가 이기주의나 다름없는 보호무역주의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고,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경제정책에 우려를 표하며 “세계화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프랑크 아펠(Frank Appel) 도이치포스트 DHL그룹 회장은 “트럼프 정책은 그가 돕고 싶어 하는 쪽을 오히려 다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주창하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결과는 처참했다. 관세 인상으로 인한 수입품 가격 상승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은 물론 대규모 무역적자도 불러왔다. 관세 폭탄 압박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9년 초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8,913억 달러(약 1,197조원)로 사상 최대 규모다. 또한 미국의 관세 보복 때문에 오히려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던 애플의 역설적 상황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가 “보복관세 악순환이 이어지면 전 세계 무역이 위축되고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더 가난해질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열하는 미중 갈등, 고래 싸움 휘말린 韓 경제

미국 등 주요국의 관세 인상 움직임은 2000년대 초반의 ‘1차 차이나 쇼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값싼 중국판 제품 수입 열풍이 불어 전 세계 인플레이션은 낮게 유지됐지만, 이는 일부 국가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고 각국의 경공업 기반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이후 2013년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등극한 뒤에는 중국의 위협이 더욱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으로 강대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도광양회(실력을 감추고 은인자중)’를 버리고 ‘중국몽(중화제국의 영광 재현)’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같은 중국의 굴기는 세계 2위의 경제력이 뒷받침한다. 지난 30여 년간 WTO 체제하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은 2009년 미국의 6%에 불과하던 국내총생산(GDP)을 2000년 12%, 2010년 41%에 이어 2020년에는 70%로 격차를 좁혔다. 이로써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유일하게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경제에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최근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대신 다극체제를 지향하며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으며, 안보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핵심이익’을 설정하고 이를 침해하는 국가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보복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국제규범에 기반한 ‘자유무역질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자국 주요 산업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 지급 △자국 시장의 선택적 개방 △해외 기술 탈취 등으로 글로벌 무역질서를 교란하고 잇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결국 칼을 빼 들었고,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무역 보복으로 양국 간 긴장도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피해를 면치 못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며 성장했지만 2022년 중국 수출 효과가 사라지면서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5% 이하로 내려오며 내수 시장이 포화, 중국의 첨단산업과 중공업 제품이 해외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가 국내로 물밀듯이 밀려와 국내 철강 산업이 위기를 맞았고, 중국산 저가 태양광 패널이 국내 시장을 장악해 상당수 태양광 패널 기업이 도산하거나 사업을 포기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도 중국산이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값싼 중국산 석화 제품에 국내 석화 산업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달한 상태다.

LCD의 경우 이제 한국산 제품이 전무하다. 중국 LCD가 없으면 우리나라는 TV조차 만들지 못하는 셈이다. 최근엔 고부가 제품인 OLED마저 중국에 빠르게 격추당하고 있어 우려가 상당하다. 여기에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규제에 선제 대응해 대량의 제조 장비를 사들이며,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1위와 2위 교역국인 두 나라의 싸움 틈바구니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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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사진=카밀라 해리스 선거 캠페인 공식 사이트(KamalaHarris.com)

더 거세지는 ‘미 우선주의’, 해리스도 트럼프도 ‘중국 때리기’

이런 가운데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공화‧민주 진영을 떠나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어 추가 무역 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 후보가 공약하고 있는 보편 관세에 따라 중국에서도 반발 조치가 나오면 미국이 다시 ‘상응 조치’를 가할 수 있어서다.

먼저 공화당은 정강에서 매년 1조 달러(1,350조원)를 웃도는 상품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수입제품에 보편 기본 관세(10%)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산 구매, 미국인 고용’(Buy American, Hire American) 정책을 내세우며 일자리를 해외로 돌리는 기업에 대해선 연방정부와의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중국에 동조하거나, 달러 패권에 위협하는 국가는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경제 보복까지 시사했다. 최근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 시도와 브라질, 인도 등 BRICS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민주당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정강에 밝혔다. 수입규제 조치 강화와 함께 철강·알루미늄‧자동차‧배터리‧태양광 등 자국 전략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아직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과도한 관세 부과 정책에 대해 “전 국민 부가세, 트럼프 세금”이라고 비판한 것이나, 후보 수락 연설에서 “중국과 경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한 것에 비춰볼 때 트럼프보다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 우선주의라는 기조는 명확해 보인다. 또 ‘동맹 중시’ 기조를 계승하는 해리스 부통령은 동맹국과의 파트너십 강화를 통한 보호무역주의로 중국의 공급망 장악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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