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본토 공격 가능해지나, 바이든 “협의 중”
장거리 무기 사용 제한 해제 질문에 바이든 "논의 중"
블링컨 장관도 “이번 주 영국 총리 회담 때 논의될 것”
이란이 러에 미사일 제공한 사실 알려지자 입장 선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미국산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내부를 공격하는 것을 제한한 조치를 해제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러시아가 서방이 자국 영토를 위협할 경우 핵무기를 쓰겠다고 위협한 탓에 우크라이나는 서방 무기로 러시아 후방을 공격하지 못하고 사실상 손발이 묶인 상태로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러시아가 최근 이란으로부터 탄도 미사일을 들여오는 등 화력을 증강하자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위해선 장거리 공격 허용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러 내부공격 허용 가능성 시사
10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정원에서 취재진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무기 사용에 대한 제약을 유지할 것’이냐고 묻자 “지금 그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영국 런던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도 같은 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무기 사용을 배제하느냐는 질문에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무기 사용 제한을 풀 수 있음을 시사했다. 블링컨 장관은 “무기의 모든 사용은 전략과 연결될 필요가 있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어떤 목적을 갖고 현 시점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오는 13일 워싱턴 회담에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내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지원하려고 하고 있지만 미국이 먼저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실제 무기를 받기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 장거리 무기 제한 해제 거듭 요청
앞서 미국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동맹국은 우크라이나가 지원받은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연관되거나, 핵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특히 확전을 우려한 미국은 ‘방어용’으로 한해 사용할 것을 전제로 무기를 지원해 왔으며, 러시아 내부를 깊숙이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 사용은 제한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드론에 폭탄을 실어 러시아의 후방을 공격하는 등 방공능력을 최대로 동원해 물량 공세를 막아서는 데 주력해 왔지만 이는 대규모 피해를 주진 못했다. 결국 한계에 봉착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을 필두로 우크라이나 행정부와 군은 계속해서 러시아 깊숙한 곳을 겨냥한 목표물 타격 허용을 서방에 요청했다. 서방에서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가 대규모 공격에 나서지 못하도록 발사 지점, 공군기지, 물류거점, 지휘 통제소, 병력 집결소 등 주요 시설을 무력화하겠다는 발상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주로 진격하면서 동부 전선의 불안정성을 자초하고 있는 것도 러시아 심부 타격 허용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무기 사용 용도 제한 해제 문제는 지난 5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기한 이후 몇 달 동안 유럽연합(EU) 의제로 올라와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현재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폴란드, 발트해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일부 회원국이 요청을 승인한 상태지만 보편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이 제공한 스톰 섀도의 러시아 심부 타격과 관련해 영국과 프랑스는 동의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반면 미국 등은 확전을 이유로 거부했다.
러시아 본토 타격 땐 전황 바뀔 수도
그간 장거리 무기 제한 해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해 온 미국이 돌연 입장을 바꾼 데는 이란의 러시아 무기 지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CNN에 따르면 최근 이란은 서방의 경고를 무시한 채 러시아에 수백 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등을 제공했다. 이에 미 재무부는 대러 군사지원에 관여한 이란과 러시아 개인 10명과 6개 회사, 이란산 무기 부품과 무기 시스템의 대러시아 전달에 관여한 선박 4척 등을 제재 대상에 추가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도 단교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9일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사실상 이란을 지목하며 “러시아에 탄도미사일이 공급되는 상황에 대응해 우크라이나는 테러를 피하기 위해 서방 무기로 미사일을 보관하는 러시아 창고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장사정 미사일 사용을 허용할 경우 2년 7개월째 이어진 전쟁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기 제한이 해제되면 사거리 300㎞의 미국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와 사거리 250㎞의 영국산 공중발사 순항 미사일인 스톰섀도는 당장 공격에 투입할 수 있다. 러시아의 주요 군사시설과 산업단지·발전소 등 핵심 기반 시설을 노릴 경우 큰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F-16 전투기가 속속 투입돼 공군 전력이 증강되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500㎞가량 떨어진 수도 모스크바도 안전하지 않게 된다.
다만 러시아가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위험도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영토가 위협받을 경우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거듭 천명한 바 있다. 러시아 군 관계자는 영국·독일 영토에 대한 핵 공격을 언급하는 등 3차 세계대전을 염두에 둔 협박성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