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전금업자 25곳, ‘제2의 티메프 사태’ 재현 우려에 금융당국 책임론 확산
전자금융업자 25개사, 경영지도기준 미달
금융위, 경영개선 실패 보고 받고도 방관
티메프 사태 이후 칼 빼든 당국
중소 플랫폼 도태 우려 숙제로
전자금융감독규정상 경영지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전자금융업자(전금업자)가 25개사에 달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티메프 사태 2년 전부터 경영지도에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 매 분기 금융위원회에 제도 개선을 건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금융위가 한 차례 입법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알려지며 티메프 사태 책임론에 불이 붙었다. 아울러 지난 국회 회기 중 관련 법 개정이 미뤄지다 폐기됐다는 점에서 국회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체 전금업자 15% 건전성·유동성 부족
11일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3년 12월 말 전금업자 점검 결과 및 대응 방안’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경영지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전금업자 14개사의 미정산 자금은 2,011억원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14개사는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 결제대금예치업(에스크로), 전자고지결제업(EBPP)을 하는 업체며, PG를 겸영하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도 포함됐다. 티몬과 위메프를 합친 부실 전금업자 16개사의 미정산 자금은 총 5,448억원이다.
이들 업체 중 미정산 자금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위메프(2,878억원)였고 14개사 중 미정산 자금이 1,341억원인 곳도 있었다. 이는 티몬(559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금감원은 티메프를 제외한 전금업자의 업체명은 가리고, 업체별 미정산 자금과 정산 주기만을 공개했는데 대부분 업체의 정산 주기는 1~7일 사이로 짧은 편이었으나, 최대 30일인 업체도 1곳 있었다. 티몬은 40~70일로 정산 주기가 가장 길었다.
경영지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전금업자는 자본잠식에 빠졌거나 유동성 악화로 부실이 우려되는 업체를 일컫는다. 전자금융감독규정 63조(전자금융업자 경영지도기준)에 의하면 전금업자는 자기자본이 항상 0을 초과해야 하며, 미상환 잔액 대비 자기자본 비율 20% 이상, 유동성 비율 최소 40% 이상이어야 한다. 금감원은 경영지도비율이 악화될 우려가 있거나 경영상 취약부문이 있다고 판단되는 전금업자에 대해 경영개선계획 또는 약정서를 제출하도록 하며, 이들 전금업자와 경영개선협약(MOU)을 체결할 수도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위의 3가지 요건을 모두 지키지 못한 전금업자는 25개사로 집계됐다. 전체 전금업자 164곳 중 15%가량의 업체가 경영지도기준에 미달된 것이다. 이 중 대부분은 경영개선계획을 제출했고 금감원과 MOU를 체결한 곳은 티몬과 위메프 두 곳뿐이다.
금감원, 매 분기 전금업자 관리권 강화 요구
그러나 MOU를 통해 금감원의 집중 관리를 받은 티메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보다 관리 강도가 덜한 다른 전금업자에서도 언제든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 금감원은 MOU를 맺으면 경영개선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계획 이행 실적을 점검하는 등 집중적으로 경영 상황을 확인하고 개선 조치를 취하는데, 사실상 효력이 없었음이 이번 티메프 사태를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티몬은 지난 2022년 6월 말 이뤄진 첫 이행보고에서부터 경영개선계획상 재무비율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자본잠식 상태였던 티몬은 마이너스(-) 4,700억원으로 자기자본을 줄이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자기자본이 -5,439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해 4분기 역시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겠다고 금감원에 계획을 전달했지만, 실제 자기자본은 -7,788억원이었고 올해 1분기 보고에서도 자기자본 계획이 -8,300억원이었으나 실적은 -8,913억원을 기록했다.
위메프 또한 지난해 4분기 자기자본이 -2,456억원을 기록하며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겠다고 했지만 계획 달성에 실패했다. 올해 1분기 자기자본도 계획(-2,43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2,961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양사 모두 금감원과 MOU를 맺고도 단 한 차례도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티몬과 위메프의 단기 지급능력도 약속과 달리 지속적으로 악화했다. 티몬의 유동성 비율은 금감원 보고를 시작한 2022년 2분기 35%가 목표치였으나, 실제로는 22%로 악화됐다. 올해 1분기에는 유동성 비율이 11%에 불과했다. 위메프 역시 2022년 상반기 유동성 비율이 37.2%로 목표치인 40%를 밑돌았고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돼 올해 1분기에는 19%까지 떨어졌다.
이에 금감원은 티메프 사태가 터지기 2년 전인 2022년 3분기부터 매 분기 금융위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금감원이 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금감원은 ‘전자금융업자 경영지도기준 점검 결과 및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직전 분기 중 경영지도기준을 지키지 못한 전금업자 현황과 금감원의 대응 계획을 담으면서 금감원이 전금업자를 상대로 후속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고 거듭 밝혔다. 현행 제도상 전금업자가 경영지도기준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금감원은 과징금·과태료 등의 징계 조치를 할 수 없는 만큼, 행정 조치권 확보를 위해 별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금융위, 금감원 개선 요구에도 후속 조치 無
하지만 금융위는 금감원의 꾸준한 요청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금감원의 건의가 들어오기 전, 이미 관련 법 개정을 추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금융위는 김병욱 전 민주당 의원과 협업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발의안엔 경영지도기준을 어긴 전금업자에 대해 금융 당국이 행정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신설 조항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후속 조치는 없었다. 발의안이 국회에서 맴돌고 2년 가까이 금감원의 제도 개선 요청을 들으면서도 적극적인 입법 노력은 부재했던 것이다. 국회의원을 통하지 않고 정부 부처가 직접 법 개정을 발의하는 정부입법 시도 또한 한 번도 없었다. 이에 대해 민 의원은 “금융위가 한 차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것만으로 모든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며 “금융 당국이 늑장 대응하는 동안 티메프의 부실 규모가 커져 이번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회 역시 티메프 사태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전 의원의 법안 발의 시점은 2021년 11월로, 21대 국회가 올해 5월 회기를 마칠 때까지 해당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이 함께 발의한 데다 정쟁 법안도 아닌 만큼 3년 가까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뚜렷한 명분이 없었음에도 임기 만료로 폐기된 것이다.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 개선안’, 중소 플랫폼 경쟁력 악화 우려
결국 금융위는 티메프 사태가 터진 뒤에야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 9일 금융위는 PG 규제를 강화하도록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정산자금 전액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도록 PG사의 미정산자금 전액에 대해 별도 관리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별도 관리는 예치, 신탁, 지급보증보험 가입으로, 신탁·지급보증 시 운용범위는 국공채 등 안전자산으로 제한한다. 다만 업계의 규제 준수 부담을 고려해 제도 시행 후 1년 동안은 미정산자금의 60%, 2년 후부터는 80%, 3년 후에는 100%로 관리 의무를 단계적으로 상향할 계획이다.
PG사의 건전 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관리·감독 장치도 마련한다. 현재는 법령상 PG사가 경영지도기준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PG사가 경영지도기준이나 별도관리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 시정요구, 영업정지, 등록취소 등 단계적 조치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별도 관리 자산을 정산 목적 외에 사용하거나 계약기간으로 정한 정산기한 내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제재·처벌도 가능해진다.
PG사에 대한 범위도 명확히 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유통업계에서 벌어지는 내부 정산도 PG에 포함했지만, 앞으로는 계속적·반복적으로 타인 간 대금 결제를 대신하는 업무만 포함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커머스, 백화점, 프랜차이즈 등은 PG 규제 대상에서 제외, 전자금융거래법이 아닌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적용받게 된다. 예컨대 쿠팡과 쿠팡페이와 같이 이커머스와 PG업이 분리된 경우 쿠팡은 PG업을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도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해 정산기한을 줄이고, 판매대금 별도관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로, 업계 우려를 덜기 위해 복수 안으로 제시했다. 1안은 구매확정일로부터 10일∼20일 이내, 2안은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 중에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대금 별도 관리 1안은 판매 대금의 100%를 별도 관리하고 2안은 판매대금의 절반을 별도 관리하는 안을 택할 예정이다. 법 적용 대상 세부 기준 1안은 연 중개 거래수익 100억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금액 1,000억원 이상이며, 2안은 중개 거래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금액 1조원 이상이다. 공정위는 이달 안으로 공청회를 개최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한 뒤 개선안을 매듭짓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형 플랫폼과 달리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플랫폼에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만큼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빠른 정산 도입으로 판매자들의 안정적인 자금 운용을 촉진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중소 플랫폼의 현금 유동성에 악영향 미쳐 경쟁력 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정산 주기를 앞당길 여력이 있는 대형 플랫폼으로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해 국내 온라인 유통 생태계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