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기사 인력난 심각, 신규 충원 없이 해외 이탈 가속화
숙련된 선장은 필리핀 등 해외로 이직
열악한 근무 여건에 청년 선원 부족해
해기 인력 부족에 어선 건조도 어려워
국내 원양어업계가 극심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젊은 구직자들이 힘든 원양어선 일을 기피해 신입 충원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 원양어업의 핵심 인력인 숙련된 해기사의 해외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장기적으로 국내 원양어업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년 국내 해기사 수요의 31.4%가 부족
11일 원양어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인 해기사의 해외 취업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원양산업협회가 필리핀·대만·중국 등 아시아계 선사 10곳이 남태평양에서 조업하는 참치 선망 62척을 대상으로 한국인 취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47척에서 최소 100명의 한국인이 승선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고급 사관인 선장과 기관장은 각각 52명, 28명으로 조사됐다. 참치 선망에 한정해 실시한 조사 결과로 조사 범위를 연승(횟감용 참치), 트롤(오징어, 명태), 봉수망(꽁치) 어선으로 넓히면 인력 이탈 추세는 더 가팔라진다.
해기사는 ‘선박직원법 4조’에 따른 면허를 취득한 자로 선박에서 선장, 항해사, 기관장, 기관사, 운항장, 운항사, 통신장, 통신사의 직무를 수행한다. 선박직원법은 선박의 규모 등에 따라 갑판부와 기관부에 승선해야 하는 해기사의 자격 급수와 인원을 정하고 있는데 2,000톤(t)급 선망 어선의 최소 승선 인원은 선장을 포함해 항해사 4명과 기관사 4명이다. 원양산업협회에 따르면 내년에 국내 원양어선에 승선해야 하는 해기사는 961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퇴직과 신규 임용 등을 감안하면 실제 해기사 인력은 659명에 불과해 302명(31.4%)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됐다.
장기적인 수급 전망도 부정적이다. 한국해운협회가 연평균 해기사 직급별 증감률 및 고용 비율, 미래 선대 증가를 고려해 마련한 ‘한국인 해기사 수급 전망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 한국인 해기사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2,71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공급 부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해 2040년에는 3,605명, 2050년에는 4,426명 부족할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 감소 없이 2022년도 수준의 고용 인원을 유지하는 시나리오에서도 2030년에는 2,048명, 2040년에는 2,279명, 2050년에는 2,509명씩 해기사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60세 이상 해기사 41.9%, 고령화 심각
신입 충원 역시 쉽지 않다. 해기사를 양성하는 수산계 고등학교 9개교와 6개 대학 졸업생 중 해기사 면허를 취득한 뒤 원양어선에 승선하는 비중은 최근 5년간(2018~2022년) 5%에 그쳤다. 한국해양마이스터고는 올해 처음으로 해기사 양성 과정에 인도네시아 학생 4명을 선발했다. 1980년대까지는 입학 경쟁률이 10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청년들이 원양어선 일을 기피하면서 지원자가 감소해 한국인 학생만으로는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이스터고로 전환하기 전까진 6년 연속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젊은 선원의 유입이 줄어들면서 고령화도 심화하고 있다. 2023년 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인 선원 중 40대 미만의 비중은 20.5%(6,517명)인데 반해 60살 이상은 43.8%(1만3,944명)에 달했다. 40~50대는 35.8%(1만1,406명)였다. 취업 중인 해기사를 기준으로 보면 60세 이상 비율이 41.9%(8,247명)로 2014년 27.4%(5,999)명 대비 14.5%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양산업협회 관계자는 “해기 인력의 고령화는 안전사고의 위험을 높이고 생산성을 저하하는 요인이 된다”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점이 되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욱이 해기사 인력난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신입 충원 없이 선장·기관장 등 고급 사관 인력만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팀을 이뤄 일하는 인력들이 한꺼번에 이직하는 동반 이탈 사태가 까지 벌어지기 때문이다. 원양어업계 한 관계자는 “선장, 기관장이 외국적선으로 떠나면서 갑판장, 항해사, 통신사, 기관사에 심지어 견시사, 조리사까지 데려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선장·기관장 외에 오랜 시간 공들여 양성한 초·중급 해기사까지 한꺼번에 이탈하는 사례가 계속되면 국내 원양어업의 경쟁력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이탈 현상은 업계의 투자 의지까지 꺾고 있다. 원양 선사가 배를 늘려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해기사를 구할 수 없어 새 배를 건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술 개발로 친환경·스마트 선박이 상용화되고 있지만 국적 전문 해기사 수급이 어려워 선박 현대화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원양어선은 2000년 535척에서 2023년 201척으로 20여 년 새 절반 넘게 줄었다. 해운협회 시나리오에서도 2030년 국적 선대 약 1,500척 가운데 한국인 해기사가 탈 수 있는 선박은 1,000척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한다.
50%에 육박하는 소득세 등도 기피 요인
해기사가 업계를 떠나는 이유로는 △열악한 근로 환경과 장시간 근무에 비해 적은 급여 △탄력적이고 자유로운 휴가 사용의 어려움 △사회·가족과의 분리 △기상 악화·위험물 운반 등의 고된 노동 강도 등이 꼽힌다. 특히 임금의 경우 2021년 기준 선원의 최저임금은월 236만3,000원으로 육상 근로자의 최저임금보다 23% 높지만 수 개월간 사회와 격리된 데다 불규칙한 선박 운항 일정 등으로 초과 근무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급여 수준이 높지 않다는 목소리가 크다.
여기에 선원 예비 인력이 부족해 1회 6개월 이상 장기간 승선한 뒤에도 유급휴가를 다 사용하지 못한 채 근무에 재투입되는 일도 빈번하다. 더욱이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년층들의 경우 원하는 업무 환경과 차이가 큰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 선원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승선 기간(병역의무 기간)인 3년이 지나면 더 이상 승선하지 않고 있다.
선장의 경우에는 세 부담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선망 어선 선장은 월 360만원 수준의 기본급에 어획량 등에 따른 성과급을 더해 연 5억~10억원을 벌어들인다. 과거에는 외화벌이 일등 공신이라는 이유로 소득의 50%를 세액 공제받았지만 1995년 이 제도가 폐지돼 지금은 연 소득 10억원이 넘으면 45%의 소득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필리핀은 기본급에만 소득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성과급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선장은 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외국인 해기 인력 도입도 골든타임 있어
상황이 이렇자 지난해 7월 해양수산부는 ‘선원 일자리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선원 근로소득 비과세 수준을 월 300만원에서 월 500만원으로 확대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해수부, 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해운협회가 노사정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노사정은 선원의 승선 기간을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하고 유급휴가 일수를 2일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이 외에도 공동선언문에는 선박 내 인터넷 이용 환경 개선 등 선원 복지 증진을 위한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전 산업에 걸쳐 나타나는 추세인 만큼 정부 대책만으로 인력난이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외국인 해기사의 수급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선원 일자리 혁신 방안’에도 △우수 외국인 선원 선점 △외국인 선원 장기체류(E-7 비자) 선발 요건 완화와 허용 인원 확대 △외국인 선원(E-10 비자) 과도한 송출비 징수 등 외국인 선원 공급 정책이 포함돼 있다.
원양어업계도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해기 인력의 국내 원양어선 승선을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국가 간 해기사 자격증의 상호 인정을 위한 ‘어선 선원의 훈련·자격 증명 및 당직 근무 기준에 관한 국제 협약(국제 선원 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아 다른 나라 해기사 자격증을 보유한 외국인의 취업이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한국해양마이스터고와 같이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해기사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국내 원양어선에 승선할 수 있다.
이에 최근 국민의힘은 국제선원협약 가입국의 해기사 자격증을 보유한 외국인의 국내 취업을 허용하는 내용의 ‘선박직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해당 개정안은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노사 간 합의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행법상 외국인 선원 고용 기준을 변경하려면 원양산업협회와 전국원양산업노동조합 간 합의가 필요한데 2015년 원양어업계 노사는 한 척당 외국인 기관사 한 명만 승선시키는 데 합의했다. 이대로라면 선박직원법이 개정돼도 외국인 해기사는 국내 전체 해기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항해사로 일할 수 없다.
원양어업계는 외국인 해기 인력을 도입하는 것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숙련 인력이 일터를 떠나기 전에 기술을 전수받을 세대가 현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원양산업협회 관계자는 “국내 원양어선에서 오랜 기간 승무한 해기 인력이 있을 때 도입돼야 조업에 필요한 기술이 전수되고, 그에 따라 조업을 영위해 갈 수 있다”며 “숙련된 고령 인력이 대거 이탈된 뒤에 뒤늦게 외국 해기 인력이 도입되더라도 조업 핵심 기술을 전수할 적기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