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테라폼랩스 파산 승인 “최소 2천억원 상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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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피해액 59조원, 국내 피해자만 20만 명 추산
테라폼 "배상해야 할 손실 추정, 사실상 불가능해"
美 SEC 합의금 6조원 제대로 납부하지 못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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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산법원이 가상화폐 테라·루나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의 파산을 승인했다. 법원이 승인한 파산 계획에 따르면 최소 2,000억원대 보상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앞선 민사소송을 통해 거액의 환수금·벌금 징수에 합의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등 선순위 채권자가 많아 전액이 피해자에게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美 파산법원 “추가 소송보다 나은 해결책 될 것”

19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미국 델라웨어주의 파산법원이 이날 테라폼랩스의 파산 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재판부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파산 계획이 추가 소송보다 나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라폼랩스 측이 법원에 제출한 청산 계획에 따르면 파산 청산금의 일부로 가상화폐 구매자와 투자자, 기타 이해관계자들에게 1억8,450만 달러(약 2,450억원)에서 4억4,220만 달러(액 5,900억원)를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테라는 ‘페깅(pegging)’을 통해 달러와 동등한 가치를 부여받은 ‘스테이블 코인’이다. 페깅은 코인 가격을 알고리즘을 통해 법정 화폐와 고정된 교환 비율을 유지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테라의 가치가 달러보다 낮아져 페깅이 깨지면 테라 투자자는 떨어진 달러 가치만큼 테라를 루나로 환전하고, 기존 테라는 폐기된다. 이렇게 하면 테라는 폐기된 만큼 유통량이 줄고 유통량이 줄어든 만큼 가치가 올라 다시 달러와 동등한 가치를 갖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테라의 가치가 달러보다 높아지든 낮아지든 손실을 볼 일이 없는 구조인 만큼 출시 후 1년도 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후 테라폼랩스는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금융서비스인 ‘앵커 프로토콜’을 만들어 테라를 예치하면 대략 연 20%의 이자를 지급하는 전략을 전개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해 테라의 수요는 급증했고, 테라와 교환되는 루나의 수요도 크게 상승해 약 3년 만에 시가총액이 55조원에 달하게 됐다.

그러나 2022년 5월 갑자기 시장에 막대한 양의 테라가 쏟아지면서 페깅으로는 조정할 수 없을 정도로 테라의 가치가 폭락하는 디페깅 사태가 일어났다. 시스템의 완전성에 대한 의심이 쌓여가면서 대량 매도와 코인런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테라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하락하자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루나를 발행했지만, 테라의 디페깅이 계속되면서 결국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동반 폭락했다. 특히 루나의 가치는 99% 이상 하락해 1루나의 가격이 1원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청산금 중 일부는 美 SEC 합의금 지불에 쓰일 듯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인한 피해액은 전 세계적으로 450억 달러(약 5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테라폼랩스의 파산 청산금이 온전히 투자 피해자에게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팽배하다. 일반적으로 파산법원에서 소위 ‘빚잔치’를 할 때 직원의 임금, 금융기관 대출금 등 투자금보다 먼저 갚도록 하는 선순위 채권이 있기 때문이다. 테라폼랩스 측은 “현재 손실을 배상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투자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추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납부할 환수금과 벌금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서 SEC는 2021년 11월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대표가 테라의 안정성과 관련해 투자자를 속여 거액의 투자 손실을 입혔고, 이에 따른 사기 피해 금액이 최소 400억 달러(약 53조2,400억원)에 달한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배심원단은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에 책임이 있다는 평결을 내렸고, 양측은 손해배상액을 결정하는 2단계 재판이 열리기 전에 합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권 대표는 2022년 4월 SEC와의 합의 전에 한국을 떠나 도피 행각을 벌였다. 권 대표가 체포된 것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여권 위조 혐의가 적발되면서다. 권 대표는 현재 몬테네그로에 구금된 상태다. 그러다 올해 6월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는 SEC와 46억7,800만 달러(약 6조4,200억원) 규모의 환수금과 벌금 납부에 합의했다. 가상화폐 관련한 합의금 중 사상 최대 규모다. 해당 합의금은 권 대표 개인과 테라폼랩스가 나눠 지불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SEC가 권 대표 몫의 합의금과 별개로 테라폼랩스의 합의금을 파산 절차를 통해 어느 정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이 파산하면 파산법원이 정해주는 대로 채권자, 투자자, 직원 등 이해당사자가 남은 재산을 나눠 갖는데 이를 통해 합의금을 확보할 것이란 예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SEC가 파산 청산금으로 가상화폐 손실 배상 청구를 먼저 해결한 뒤 벌금을 납부하는 데 동의한 만큼 SEC가 파산 청산금을 징수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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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피해액 3천억원대 추정, 보상까지 첩첩산중

SEC와의 합의 이후 한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할 만큼 여전히 자금을 은닉 중인지, 또 미국 정부가 그나마 남은 돈을 다 가져가면 한국인 피해자 구제는 요원해지는 것이 아닌지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에서는 파산 절차가 진행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SEC 역시 전액을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 모두 합의는 했지만, 정작 낼 돈은 없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현재 테라폼랩스의 자산이 5억 달러 미만이라고 알려졌다”며 46억 달러가 넘는 합의금을 전부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SEC는 “권 대표가 스위스 은행 계좌에 보유한 자금, 피스네트워크(PYTH) 코인 등을 통해 합의금을 납부할 예정”이라며 “만약 합의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 압력을 행사해 최대한을 받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또 “권 대표가 비트코인 1만여 개를 빼돌렸는데 이에 대해 압수를 추진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 추산으로 국내 피해자는 20만여 명, 피해 규모는 3,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서울남부지검이 ‘부패재산몰수법’에 근거해 권 대표의 재산에 대한 추징 보전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 중 2,333억원을 인용했다. 권 대표가 국내 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을 경우 피해자들이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권 대표가 미국에서의 소송전으로 빈털터리가 될 시 추가로 추징할 재산이 없을 수 있다. 또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재판이 대법원까지 이어진다면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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