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일본이 ‘국내’보다 ‘글로벌’ 디지털 화폐 도입에 관심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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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디지털 화폐’ 도입 놓고 낮은 ‘디지털 거래 성향’으로 고민
국내 대신 국가 간 거래 적용 가능성 주목
프랑스·미국과 블록체인 기반 거래 시스템 구축 참여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일본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도입을 고민 중이다. 현금 사용이 많은 문화와 고령 인구 증가로 디지털 거래 확산이 지연되는 상황, 그리고 잘 갖춰진 전통 금융 시스템을 고려할 때, 일본 중앙은행이 CBDC의 국가 간 거래 적용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은 현명한 접근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화된 금융 거래 환경하에서 일본이 국가 간 거래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일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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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시아포럼

일본, ‘현금 선호 경향’으로 디지털 화폐 도입 놓고 고민

그간 전 세계가 ‘비현금 결제’(cashless payment)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에도 일본은 아직도 현금 사용을 선호하는 거의 유일한 경제 대국으로 자리해 왔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명목 국내총생산(nominal GDP)에서 현금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12%의 인도, 9%인 중국, 8%의 한국과 미국, 1% 이하인 스웨덴 등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물론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상쇄하기 위해 자동 결제 수단 도입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신용 카드와 디지털 결제가 상용화되기는 했다. 작년 일본 국민 소비에서 비현금 결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40%로 2010년의 13%에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도 현금 사용을 선호하는 고령층의 존재와 1%가 안 되는 실질 GDP 성장률로 많은 자영업자와 의원, 병원이 디지털 결제 시스템 설치를 꺼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기도 하다.

일본의 디지털화가 늦어지는 현상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한코’(hanko)라 불리는 도장이 공문서에 널리 사용되고 팩스가 주요 통신 수단으로 남아 있는가 하면, 세금 신고도 종이 서류로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전인구의 1/3을 차지하는 노년층이 보이는 ‘변화’에 대한 저항은 일본에서 비현금 결제 시스템의 확산을 지연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익 없는 국내 도입보다는 국가 간 거래 시스템 구축에 관심

반면 100여 개가 넘는 전 세계 중앙은행은 CBDC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유럽연합(EU) 화폐 통합 강화 차원에서 ‘디지털 유로’(digital euro)를 고려 중인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을 제외하면 금융 인프라가 부족하고 많은 인구가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신흥국들은 CBDC를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중 나이지리아(Nigeria)와 바하마(Bahamas)는 이미 금융 서비스에 접근이 어려운 격오지 주민들을 위해 CBDC 활용을 개시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인데, 잘 갖춰진 은행 인프라와 인구 감소를 이유로 CBDC 도입이 비용 대비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신 CBDC가 국가 간 거래에서 혁신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현재 방식의 국제 결제는 복수의 외환 결제 제휴 은행(correspondent bank, 코레스 은행)과 현지 은행을 거쳐야 해 수수료가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법 거래 방지 차원에서 코레스 은행을 줄여 나가는 추세로 인해 국가 간 거래는 더욱 불편해진 상황이기도 하다.

일본은행(BOJ)으로서는 이러한 비효율이 CBDC의 국가 간 거래 활용 가치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됐다. 더구나 보다 빠르고 저렴하고 안전한 국제 거래 시스템 구축에 일본이 일정 역할을 담당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여 일본은 이미 국제결제은행 혁신 허브(The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Innovation Hub, BIS Hub, 글로벌 금융시스템 개선을 위한 기술 지원 제공 국제기구)가 주도하는 핵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거래 시스템 공헌’ 명분과 ‘국민 편의성 증대’ 실익 함께 노려

이 중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이 함께 하고 있는 ‘프로젝트 엠브릿지’(Project mBridge)다. 이 프로젝트는 분산원장 기술(distributed-ledger technology, 다수의 거래 정보를 연결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CBDC와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지갑’(digital wallet)을 연결하는 공동 인프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트워크에 가입한 중앙은행들은 CBDC와 자국 결제 시스템을 그대로 연결해 대규모 외환 결제에 사용할 수도 있다. 플랫폼 구축에 성공한다면 엠브릿지는 현재 거래 방식보다 낮은 수수료로 신속한 외환 거래를 가능하게 해 국가 간 결제 시스템의 대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BIS 허브(BIS Hub)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앙골라’(Project Angola)에도 프랑스 중앙은행,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비롯한 6개국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토큰(token,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암호 화폐)화된 은행 예금을 CBDC와 통합해 대규모 국가 간 거래에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 하나의 가능성 있는 시도는 싱가포르 소재 BIS 허브 센터(BIS Innovation Hub Center)가 직접 개시한 ‘프로젝트 넥서스’(Project Nexus)로 동남아시아 국가 각각의 ‘즉시 결제 시스템’(instant payment system)을 넥서스 플랫폼과 연결해 가입국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신속 결제 시스템’(fast payment system)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일본이 국내 활용률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CBDC를 글로벌 거래 시스템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 간 거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 국제 무역에 관여하는 기업과 금융 기관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얻는 실익이 국내 활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더 많은 국가가 CBDC 프로젝트에 참여할수록 증가하는 네트워크 효과로 글로벌 금융 거래 양상이 다른 차원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일본은 이를 통해 국제 금융 거래의 혁신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일본 기업과 국민들이 글로벌 거래에서 디지털 화폐 사용으로 더 많은 편리성과 혜택을 누리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CBDC의 국내 도입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화폐 시스템 구축이라는 더 큰 그림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원문의 저자는 시라이 사유리(Sayuri Shirai) 게이오대학교(Keio University) 교수입니다. 영어 원문은 Japan’s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should go big, not go home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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