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술 굴기로 글로벌 공급망 장악, 美·EU 무역 장벽에도 대중국 의존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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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견제 속에 '기술 자립' 선언한 中, 첨단산업에서 약진
특허 등 핵심산업 지적재산권 상위 10개사 중 中 기업이 4곳
中, 반도체·자동차·태양광 등에서 글로벌 공급망 파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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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기술 굴기’를 선언하며 첨단산업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반도체, 자동차, 인공지능(AI) 등 핵심산업에서 중국의 공급망 파워가 확대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을 보유한 중국이 저가 공세 속에 품질 좋은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으면서 폭스바겐 등 주요 기업들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파산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지난 수년간 중국과 무역 분쟁을 벌이며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나서고 있지만 오히려 대중(對中)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中 시장에서 밀린 폭스바겐, 독일 공장 폐쇄

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등 주요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자동차 굴기가 꺽이지 않고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 독일의 자동차 기업들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서 BYD(비야디) 등 현지 브랜드에 밀리면서 최근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에 지난달 초 폭스바겐은 설립 87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2곳을 폐쇄했다. 지난달 3일(현지 시각) CNN비즈니스는 세계 2위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의 독일 공장 폐쇄 소식을 전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중국에서 차량을 생산하면서 누렸던 황금기가 이제 끝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때 중국은 폭스바겐의 최대 판매 시장이었지만 상반기 판매량이 134만대에 그쳤다. 3년 새 4분의 1이상 줄어든 규모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7월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외국 제조업체의 판매 점유율은 33%로, 2022년 7월 53%에서 2년 만에 20%포인트나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저가 공세를 판매량 감소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일례로 BYD 전기차는 최저가 9,700달러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가 모든 중국산 전기차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아직도 유럽산 전기차와 비교하면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러한 상황이 다른 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태양광 산업에서는 이미 유럽연합(EU)의 기업들이 비슷한 일이 겪은 바 있다. EU의 태양광 산업을 주도해 온 독일 기업 큐셀이 중국 태양광 업체의 저가 공세에 밀려 지난 2012년 파산을 신청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도 다르지 않다. 중국 업체들이 서방의 제재를 덜 받는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를 뚫고 고성능 스마트폰 반도체를 개발했다. 실제로 2분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과 애플에서 이어 3~5위는 모두 샤오미(14%), 비보(8%), 오포(8%) 등 중국 기업이 차지했다.

기술 자립 실현하기 위해 ‘특허 강국’으로의 도약 박차

이러한 상황에 대해 CNN 등 외신은 중국의 기술 경쟁력 강화와 소비자 인식 변화에 주목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산 제품은 자국 시장에서조차 품질 신뢰도 측면에서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점차 기술력을 갖추면서 품질이 개선됐고 현재 청년 세대는 알리바바나 징둥닷컴 등에서 자국 브랜드를 소비하며 자랐다.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데 있어 부정적인 인식이 과거보다 옅어졌다. 테무와 쉬인이 아마존을 위협할 정도로 세를 확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중국은 자체적으로도 세계 최대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강점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자국 시장에서만 소화해도 기업은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전기차나 태양광처럼 글로벌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위치를 확보하고 나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해외 기업이나 인재를 빨아들이고 수출 시장으로 범위를 넓히는 전략도 유효했다. 여기에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디지털 경제 등 전략적인 기술 부문에 끊임없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어 서방 국가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이제 ‘기술 자립’을 위해 특허 강국으로의 도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말 ‘특허 산업화 운용에 관한 특별행동 계획(2023~2025)’을 발표하고 그러면서 특허 산업화 촉진, 특허 가치 발굴, 특허기술 발전 촉진 등을 전략적 과제로 강조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리창 국무원 총리가 “지식재산권 강국 건설을 위해 핵심기술 연구에 대한 지신재산권 지원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지난해 국제 특허출원 건수는 6만9,610건으로 5만5,678건을 기록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기업 순위에서는 중국 기업 4곳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美·EU 무역전쟁 속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차이나런’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기업의 공급망 장악을 이끌어낸 국가 주도 경제와 사회 통제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집권한 이후 덩샤오핑이 중국의 경제·기술 성장을 위해 기업 등 민간 분야에 부여했던 자율성과 해외 기업·자본에 대한 혜택이 대폭 사라진 데다 미국 등 주요국이 무역 장벽을 강화하면서 중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대표 사례가 중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의 급격한 감소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지난해 FDI는 전년 대비 80% 급감한 330억 달러(약 44조3,000억원)로 1993년 이후 3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1년 3,441억 달러(약 462조1,600억원)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의 올해 FDI는 사상 처음으로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부상하면서 중국에 대한 FDI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FDI는 -148억 달러(약 -19조8,700억 원)를 기록했다. 외국 기업이 중국에 투입한 자금보다 빼낸 자금이 더 많다는 뜻이다. 분기별 FDI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지난해 3분기 이후 이번이 역대 두 번째다. 금액도 국가외환관리국이 1998년 관련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런 흐름이 올해도 이어진다면 사상 처음으로 FDI가 순유출을 기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외국 기업의 ‘차이나 런(China run)’ 현상도 심각하다. 애플은 중국시장이 전체 매출의 17%를 차지하지만 판매망을 계속 줄이고 있다. 올해는 인도 폭스콘 공장에 아이폰16 프로 라인업 생산까지 맡기는 등 생산기지를 탈중국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GM도 중국 내 R&D 부문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IBM은 중국 R&D(연구개발)센터를 인도로 옮기고 1,000여 명을 감원하기로 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인텔 등도 잇따라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거나 직원 재배치에 나섰다.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중국에 대한 투자 제한과 수출 통제 등 견제 조치가 심화하자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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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커플링에도 對中 의존도 확대, 무역 장벽 무색해져

문제는 미국과 EU가 지난 수년간 중국과 무역 분쟁을 벌이며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나서고 있지만, 오히려 대중(對中)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독일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과 EU의 대중 수입 의존도가 기계·전자 장비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다양한 산업에서 일정 수준의 의존도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약 5,000개 품목 중 532개 폼목에서 중국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2000년과 비교해 4배 증가한 규모다. EU도 2004년에 비해 약 3배 늘어난 421개 품목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은 2000년과 비교해 미국과 EU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대미 수입 의존 제품 수는 116개에서 57개, 대EU 수입 의존 제품 수는 235개에서 120개로 감소했다. 프랑수아 치미츠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중국이 선진국의 핵심기술에 대한 자립이 실현되면서 수입 제품 의존도에서 국가간 비대칭성이 조장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또 연구소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가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산 제품에 대한 EU의 의존도 위험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 효과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상무부는 2022년 △18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급 이하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중국의 올해 1분기 반도체 생산량은 1년 전보다 40% 급증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최신 반도체’ 기술 개발을 억제하는 동안 중국이 ‘범용 반도체’ 생산을 강화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자얀트 메논 선임연구원은 “대중 제재가 중국의 무역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며 “중국은 모든 주요 산업의 모든 공급망에 내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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